남자를 좋아한다구

#020 토론토에서 101명 만나기

by reconceptor


Kaya를 처음 만난 곳은

세컨드 컵이었다.


세컨드 컵에서

주로 마셨던 메뉴는

애플 사이다.


따끈한 애플 사이다에

시나몬 스틱을 넣어

계피향을 더한 후

한모듬 마시면...

영혼이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도 역시 나는

애플 사이다를

홀짝거리며 앉아있었다.


2인 혹은 4인 테이블은

자리가 꽉 차서,

중앙의 큰 테이블에 앉았는데,

건너편 자리에는 노트북을 펼쳐놓고

뭔가를 열심히 타이핑하는 여성이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색에

윤기가 흐르는 짧은 곱슬머리,

동그란 눈이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여성을 힐긋힐긋 쳐다보다

말을 걸었다.


"왜? 무슨 일이야?"

"아... 저기..

내가 초상화를 그려주고 싶은데..."


의심쩍은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그녀는

초상화 이야기가 나오자,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뀌었다.


"내 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호호호. 너 화가니?"


프로젝트를 설명하자,

무척 호의적이었다.


"재미있는 프로젝트구나.

근데 내가 지금 미팅이 있어서,

시간이 없어.

혹시 괜찮으면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다시 만나는 거 어때?"

"아~ 정말? 물론이지.

정말 고마워.

혹시 엇갈리거나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연락처를 알려주면 좋을 것 같아."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그 다음날 다시 그 자리를 찾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약속시간이 다 돼 도록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RECONCEPTOR


이렇게 바람맞는 건가...

연락을 해볼까...

고민하던 중에

카페 문이 열리더니

그녀가 헐레벌떡 뛰어들어왔다.


"아~ 미안.

일이 너무 늦게 끝났어.

오래 기다린 건 아니지?"


자리를 잡고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Kaya는 자메이카계 캐나디안이라고 했다.

텍스타일과 인테리어 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부근에 텍스타일 관련 회사와

상점들이 즐비했으므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한국에 가본 적이 있다며

떡볶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정말 흥미롭다며,

자신의 룸메이트인 러시아 친구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고

한번 만나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RECONCEPTOR


얼굴 윤곽을 잡고,

머리카락의 형태와

눈코입의 위치를 표시하고,

눈부터 자세히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다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마치 눈동자 안에

은하를 품고 있는 듯했다.

영화 <man in black>의 갤럭시가

동공을 통해 투사되고 있는 것처럼...


맑고 까만 눈동자 속에

수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와~ 너 눈이 정말 예쁘구나."

"호호. 고마워."


그림을 그리는 내내 나는

감탄사를 연발했고,

정말 눈동자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RECONCEPTOR


그 감탄사가 문제였을까?


그림을 마무리하고,

그녀가 나를 그려주는 내내

나는 그 감탄사를 멈추지 않았고...

그녀의 얼굴은 정색이 되어 갔다.


화기애애하던 대화가 끊기고

우리 사이에는

묘한 어색함이 감돌았다.


작별인사를 나누고

스트리트카를 타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는데...


멀리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계속 눈이 예쁘다고 하는 거 있지?

나 원 참."


그녀는 친구와 통화를 하며

내가 서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는데,

나를 발견하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안녕~ 잘 가~"


잠시 어리둥절해진 나는...

도착한 스트리트카를 타지 않고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호... 혹시

나를 레즈비언으로 안 거 아니야?

내가 작업을 걸었다고?'


맙소사!

Kaya,

나는 남자를 좋아한다구.



©RECONCEP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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