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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로비 Aug 20. 2020

1. 유의미한 최초의 순간

나와 음악

한 권의 책으로 엮이게 될 10편의 글을 네 달에 걸쳐 연재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2007년 12월이라고 대답한다. 물론 그 질문이 음악에 관한 최초의 기억을 묻는 것이라면 훨씬 어렸을 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지만, 그 의도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결정적인 계기와 관련된 것이라면 훨씬 더 유의미한 순간을 떠올리게 된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지금의 나’라고 한다면 앞으로 앨범 커버라는 분야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낼 디자인 학교 졸업 예정자를 말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 분야에 이 만큼의 애정과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앨범 커버’에 대한 내용을 펼쳐놓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앨범 커버 안에 담긴 ‘음악’이다. 결국 ‘모든 것의 시작’은 단순히 음악이라는 대상을 최초로 접했던 기억을 넘어 더 큰 의미를 담고 있는, 음악에 대한 태도가 마치 수면에 물결이 일듯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 결정적인 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유의미한’ 첫 번째 사건이 바로 2007년 12월, 중학교 2학년 겨울 방학 중에 벌어지게 된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가끔 하는 게임을 제외하곤 공부밖에 몰랐던 범생이였다. 그렇다고 그전까지 음악과의 접점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텔레비전 광고나 예능 프로그램 삽입곡, 혹은 부엌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를 통해 원하지 않아도 무심코 듣게 되었던 몇 가지 인기곡들을 제외하곤 뚜렷하게 그 시기와 맞물려 기억나는 음악이 많지 않다. 심지어 2007년은 훗날 아이돌 그룹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는 소녀시대와 원더걸스가 데뷔하던 역사적인 해였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았던 십 대라면 으레 관심을 가졌을 법한 이들의 화려한 등장마저도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야 남의 입을 통해서 알게 되었을 정도로 나는 일반적인 대중문화와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윤하 1.5집 《혜성》


같은 해 12월, 동생 생일을 위해 준비한 윤하의 1.5집 앨범에도 처음부터 큰 의미가 담겨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은 그 계기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마땅히 선물할 만한 것이 생각나지 않던 차에 그 당시 이곳저곳에서 자주 들려오던 윤하의 <혜성>이라는 곡이 떠올랐던 것 같다. 게다가 마침 영어 공부에 사용 중이던 커다란 어학용 CD플레이어 한 대가 집에 있었기 때문에 <혜성>이 수록된 앨범을 선물하기로 마음먹었고 한 집 안에서 사실상 공공재나 다름없던 그 음악 CD를 나도 가끔 빌려 듣곤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유의미한 첫 번째 사건의 도화선이 되었다. 어떤 음악이 그 정도로 귀를 사로잡아 뇌리에 깊게 박힌 것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물론 음악 자체가 듣기 좋았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CD라는 물리적 매체로 앨범 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재생하는 신선한 경험이 함께 어우러진 덕분에 그만큼의 감상을 낳게 되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윤하 피쳐링의 <우산>이 수록되어 있었던 에픽하이 5집《Pieces, Part One》


그렇게 나는 윤하라는 한 음악가의 팬이 되었다. 팬클럽이라는 곳에도 처음 가입해보았다. 참 열심히도 활동했다. 게다가 용돈이 모이면 대부분 앨범을 사 모으는 데 쓰곤 했다. 2000년대 후반은 이미 디지털 시장의 강세로 음반 판매량이 폭락한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으면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에 책꽂이 한 편을 음반으로 가득 채워갔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듬해였던 2008년, 윤하가 피쳐링한 <우산>이라는 곡을 통해 힙합 그룹 ‘에픽하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에픽하이의 음악은 생소한 장르였지만 알게 모르게 계속 듣게 되는 매력이 있었다. 때마침 그 그룹의 멤버 타블로가 MBC 라디오에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호기심에 듣기 시작했던 첫날을 시작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챙겨 들으며 라디오라는 매체에 푹 빠져보기도 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조금 더 다양한 음악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매일매일 만나볼 수 있었고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의 폭도 덩달아 조금씩 넓어져 갔다.


첫 MP3P였던 삼성의 'YP-S5' ⓒ2021. Wallo.B


첫 MP3 플레이어(이하 MP3P)를 산 것도 바로 그즈음이었다. 삼성 브랜드 YEPP의  YP-S5라는 모델이었는데 본체 뒷면에 장착된 스피커를 슬라이드 형식으로 꺼내고 넣을 수 있는 신기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이어폰 없이도 음악을 듣는 것이 가능해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주변 친구들과 함께 들으며 반응을 지켜보기도 했다. MP3P 덕분에 언제 어디서나 음악을 즐길 수 있었고 그 음악들로 차곡차곡 용량을 채워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나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보급이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2011년을 넘어서기 전까지는 거의 모든 내 또래 학생들의 손에 MP3P가 하나씩 들려있었다. 실시간으로 새로운 음악을 추천받고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보니 각자의 MP3P는 말 그대로 그 사람의 평소 취향을 엿볼 수 있는 지표가 되어주었다. 덕분에 종종 친구들과 서로의 MP3P를 바꿔 들으며 각자가 몰랐던 음악을 공유받기도 했다. 단순히 인터넷으로 취향에 맞는 곡을 추천받는 요즘의 시스템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종류의 음악을 의도치 않게 접해볼 수 있는 순간들이었다.


고등학교 진학 후 구매했던 두 번째 MP3P 'YP-Q2'


이 시기의 음악 사랑은 고등학교 3년을 거치며 절정에 이르렀다. 물론 윤하 때와 마찬가지로 음악 자체가 가지는 매력도 분명 있었지만 그 당시 나의 주변 상황을 떠올려보자면 환경의 영향을 훨씬 더 많이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자립형사립고등학교였기 때문에 전반적인 학구열이 굉장히 높았고 그 속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할만한 적절한 창구가 필요했다. 더군다나 앞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나는 내 또래 대부분의 친구가 좋아하는 이런저런 것들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런 성향은 고등학교에 가서도 변함이 없었는데 PC방에 가서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점심시간마다 우르르 나가서 다 같이 즐기는 축구나 농구를 좋아한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전국에서 학생들을 모집하는 학교답게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도 힘들었다. 이런 환경에서 내가 의지할 수 있던 것은 손에 들린 작은 MP3P,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었다. 가장 힘든 시기에 곁에 있어 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이 있듯이 질풍노도의 시기에 음악에게서 받은 영향을 생각해본다면 이공계열 진로를 꿈꾸다 결국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다.


2010년대 초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난 오디션 프로그램


이렇게 내가 한창 음악에 빠져있던 2010년대 초반은 공교롭게도 다수의 오디션 프로그램들과 음악 예능 프로그램들이 흥행하면서 음악이라는 분야가 다시금 전국민적인 주목을 받게 되기 시작한 시점이다. 1990년대 디지털 혁명 이후 음악 말고도 너무나도 할 게 많아진 세상이 펼쳐지면서 음악이 사람들의 여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계속해서 낮아졌지만 다수의 오디션 프로그램들 덕분에 다시 한번 미디어의 중심에 서게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동시대 사람으로서 그 흐름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오히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1990년대 이전, 그러니까 음악이 대중문화의 선봉에 있던 시대의 사람들이 음악을 소비하던 방식과 비슷한 순서로 음악과 가까워졌다. 좋아하는 음악가의 음반을 사 모으고 심야 라디오에 귀 기울이는 것이 일상이었던 나의 10대 후반 시절 음악의 위치는 말 그대로 독보적인 문화생활인 동시에 가장 영향력 있는 미디어였던 셈이다.



첫 스마트폰이었던 '갤럭시 S2 LTE'와 불과 작년까지 사용했던 나의 마지막 MP3P 코원의 'J3' ⓒ2021. Wallo.B


그랬던 나도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스마트폰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다. 햇수로 6년이나 사용할 때까지 딱 한 번 밖에 고장 나지 않았던 갤럭시 S2가 첫 스마트폰이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음악 듣기 방식을 고수하던 나는 당시 주류로 떠오르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음악이 쉽게 쉽게 소비되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마음에  웬만하면 음반을 직접 구매하여 리핑하거나 한 곡 단위로 다운로드받아 MP3P에 넣고 다녔는데 사실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의 신념을 갖고 늘 MP3P를 손에 쥐고 다녔다. 덕분에 나의 MP3P는 모두가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게 되었던 2010년대 후반쯤부터 ‘아직까지 작동하는’ 신기한 골동품 취급을 받으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곤 했다.


네이버의 'VIBE'를 이용 중. 솔직히 훨씬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에 정식 가입한 것은 무려 2020년이 다 되어서다. 싱글 단위의 빠른 발매가 기본이 된 음악 시장에서 그 흐름을 따라잡기가 버거워진 탓이었다. 그전까지 대부분의 주류 매체에서 한 발짝씩 떨어져 뚝뚝하게 음악을 즐겨왔다. 매스 미디어의 절대적인 기준에서 벗어나 독불장군처럼 쌓아온 애정이기에 ‘뚝뚝하다’라는 단어가 딱 어울린다. 그리고 그렇게 즐겨온 음악은 눈 한 번 깜짝할 때마다 여러 번 그 모습과 방식을 바꾸며 나와 관계 맺어왔다. 물론 윤하의 음악을 처음 만난 2007년부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까지의 14년이라는 기간은 햇수로만 따지면 그리 길지 않은 기간이다. 무언가의 흐름에 관해 이야기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음악 시장을 여러 번 급변하게 만든 다양한 매체 변화와 의미 있는 사건들이 이 14년 안에 빼곡하게 담겨있다. 디지털 시장의 본격적인 강세와 스마트폰의 등장, 레트로 열풍으로 인한 물성의 재림, SNS의 발달과 함께 찾아온 K-POP의 세계화까지 전부 이 기간에 밀도 있게 쌓여 지금 우리가 보고 듣고 있는 음악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꾸준히 지켜봐 온 ‘음악’의 모습은 주류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던 나의 행보 덕분에 객관적일 수 있으면서도, 뚝뚝하게 고수하던 개인의 태도가 반영되어 지극히 주관적인 부분 또한 포함하고 있다. ‘나’라는 개인의 시선이 만들어내는 한 발짝 만큼의 차이, 그 간극을 통해 바라보는 ‘음악’의 모습에 어떠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시간’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연결된 무언가일 것이다. 시간의 흐름은 결코 한 겹으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무수히 많은 개인의 역사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가 관통해온 ‘음악’의 흐름은 결국 그 음악을 품은 시대, 사회와 연결된다. 이제부터 풀어낼 이야기들이 지금껏 지나온 시간을 조금 더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바라볼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면, 더 나아가, 아직 오지 않은 앞으로의 시간 또한 조금 더 다채롭게 그려볼 만한 단서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과연 어떤 모습을 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책 장을 넘기듯 서서히 그리고 켜켜이, 각자의 시간을 쌓아 올리며 기대해볼 일이다.



글 월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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