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통증을 다시 읽는 시간 # 19
우리의 통증은 언제나 이유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그저 뇌가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의미를 부여했는가에 따라 시작된다.
같은 자극일지라도, 우리가 지나온 삶의 배경과 지금의 마음과 뇌의 상태에 따라
그 강도와 의미는 전혀 다른 얼굴을 띤다.
어떤 이는 통증을 만나는 순간,
끝없이 이어지는 부정적 상상에 휩싸인다.
“혹시 이 고통이 평생 계속된다면?”
“다시는 예전처럼 살 수 없다면?”
그 파국적인 생각의 흐름은 통증을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삶을 지배하는 어두운 그림자로 만든다.
그러나 또 어떤 이는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 다시 일어나 바른 길을 찾아 걷는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나쁜 자세를 올바르게 세우며,
그 고통의 시간을 지나온 뒤에는 오히려 더 단단해진 하루를 살아간다.
그에게 통증은 어둠 속 터널 끝에서 마주한 한 줄기 빛과도 같다.
진료실에서도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난다.
긍정적으로 치유의 길을 걷는 이들,
그리고 마지막에 다다를 즈음 다시 한 번 통증을 맞이하는 이들.
통증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를 반복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꿋꿋이 걸어온 사람들.
그러나 오히려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때로는 작은 통증에도 쉽게 무너지는 마음을 경험한다.
나는 이 과정을 “최후의 재발”이라 부른다.
이것은 단순한 후퇴가 아니다.
스스로를 다시 세우고, 내면의 신뢰를 더욱 단단히 다지는 마지막 훈련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넘어선 이들은 비로소 통증 너머의 자유를 마주한다.
때로는 환자에게 나는 위로가 아닌 도전의 말을 건넨다.
“통증에 저항하십시오. 때로는 무시하십시오.
그리고 원래 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가십시오.
통증이 삶을 어둡게 뒤덮도록 내버려두지 마시고,
오히려 더 밝은 빛으로 나아가는 길잡이로 삼으십시오.
쉬운 길은 없습니다. 병원에만 모든 것을 맡기지 마십시오.
마음이 무너질 때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다시 일어나 걷고, 사람들을 만나고, 삶을 이어가십시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언젠가 통증에서 자유로운 자신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말이 전후 과정 없이 던져진다면,
환자에게는 위로와 격려가 되기보다는
때로는 잔인하고 무책임한 말처럼 들릴 수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이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긴 과정 속에서만 비로소 힘을 얻는다.
뇌과학은 이미 말하고 있다.
넘어지고 무너지는 순간에도 꾸준히 길을 걸으면,
뇌의 신경가소성이 작동하여 통증의 역치는 변화한다.
결국 우리는 더 큰 고통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때로는 웃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그 경험은 삶을 성장으로 이끈다.
우리 인생에 고통이 찾아올 때, 선택지는 단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인가,
아니면 고통을 기회 삼아 더 나은 길로 걸어갈 것인가.
고통 없는 삶은 없다.
고통이 다하는 순간은 곧 우리의 마지막 순간이다.
그 여정 속에서 어떤 태도를 선택할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외부의 고통은 통제할 수 없어도,
그 고통을 바라보는 태도만은 언제나 선택할 수 있으니까.
통증은 결코 우리를 약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강해질 수 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다.
그 고통은 무너뜨리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힘이 이미 우리 안에 있음을 드러내는 자리이다.
우리가 걸어온 길은 그 자체로 충분히 빛난다.
그리고 남은 길 또한 통증이 아니라, 스스로의 용기로 채워질 것이다.
“In the depth of winter, I finally learned that within me there lay an invincible summer.”
“한겨울의 깊은 곳에서야, 내 안에 꺼지지 않는 여름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Albert Cam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