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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Aug 09. 2020

둘째날, 췌장암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얼싸안고 이제 살았구나, 벌써 다 나은 것 같다 외쳤지만


6.24 둘째날, 췌장암 아니라면서요.

  엄마가 자기의 증상을 네이버에 검색해보더니 아무래도 췌장 쪽 문제 같다고 했다. 가벼운 소화불량으로 시작해 등 쪽이 아프게 쥐어짜듯이 아프고, 밥을 먹으면 통증이 더 심해진다고 했다. 엄마가 나에게 ‘엄마 췌장암이면 어떡하지?’라며 말을 꺼냈다. 난 그 때 췌장이 뭔지, 췌장암은 또 뭔지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췌장암이 많이 위험한거래?’하고 물었다. ‘응. 스티브잡스도 그걸로 죽었잖아. 돈도 다 필요없나봐.’ 

  그 때부터 췌장암이라는 병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네이버, 구글 등 온통 무섭고 절망적인 말 뿐이었다. 나는 무서웠다. 엄마는 진심 반, 농담 반으로 가볍게 ‘엄마 죽으면 어떡하지?’하며 내게 물었고 나는 그런 소리 말라며 엄마를 끌어안았다. 그 때 까지만 해도 ‘죽음’이라는 사실이 너무 멀게 느껴졌기 때문에 우리는 그 말을 꺼낼 수 있었고 나도 엄마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날 이후 우리는 다시는 ‘죽음’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았고 나도 엄마 앞에서 울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로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응급실 의사는 CT상으로 보이는 것으로는 혹의 양상을 정확히 알 수 없다며 보다 정확한 모양을 알 수 있는 MRI 검사를 진행했다. MRI가판독 결과는 응급실에 들어가고 하루가 지나 24일 자정쯤에 나왔다. 밤이 늦어 엄마는 자고 있었고 가슴이 두근거리던 나는 간호사에게 먼저 가서 혼자 결과를 들었다. 암 보다는 염증에 가까운 것 같다고 했다. 자는 엄마를 깨우고 싶지 않았지만 좋은 소식에 엄마를 깨워서 이 사실을 전했다. 엄마와 나는 부둥켜안고 행복해했다. 이 얘기를 듣자 엄마는 이제 다 나은 것 같다고 했다. 다음 날 출근 때문에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던 나는 마음을 놓고 집으로 가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길, 나는 내일 내가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을 줄도 모르고 택시 아저씨에게 이 좋은 소식을 전하며 ‘꼭 건강검진을 미리 해보시라’는 말도 다정하게 덧붙였다.     



6.26

이 카톡을 보고 나는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 MRI 정식 판독 결과를 듣게 되었다. 췌장 꼬리 쪽에 악성종양이 보이며, 3기 이상으로 이미 많이 진행이 된 것 같다고. 그 때는 내가 아니라 브래들리가 엄마와 함께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한 번에 딱 한명의 보호자만 환자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만나러 가는 택시 안에서 엄마의 얼굴을 어떻게 마주해야할까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하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각종 암 카페, 오픈채팅, 네이버 밴드, 다음 카페에 가입했다. 검색 해 보니 보호자는 환자 앞에서 절대로 울거나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했다. 보호자가 무너지면 환자도 무너진다고. 

  하지만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리자 택시 아저씨가 누가 아파 암병원에 가는 것이냐며 걱정스레 물어봤다. 엄마가 많이 아프다고 답했다. 그랬더니 당신의 부인도 작년에 뇌출혈로 쓰러져서 병원에 있는데, 정성을 들이면 1년 살 것도 10년 살고 10년 살 것도 20년 산다고 환자 살리는 것은 의사도 돈도 아니고 정성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희망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엄마를 사랑하고, 나의 정성이라면 하늘도 감동해서 엄마를 다 낫게 해 줄 거라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결심으로 엄마 병실로 올라가서 울지 않고 씩씩하게 말했다. 엄마는 내가 무조건 살릴 거니까 걱정 말라고, 내가 오늘부터 엄마랑 항상 함께 하겠다고. 통증 때문에 똑바로 눕지도 그렇다고 꼿꼿이 앉지도 못해 어정쩡하게 머리를 기대고 있는 엄마의 오른 쪽 눈에서 천천히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얼른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말 했다.     

“지금 아파서 우는 거야?” 

엄마가 대답했다. “아니.” 

“밥도 못 먹는데 울 힘이 어디 있어. 앞으로 아플 때 말고는 절대 울지 마. 엄마, 오는 길에 택시 아저씨가 환자 살리는 건 의사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정성이래. 내가 하늘도 감동할 정성으로 엄마 무조건 살릴거야. 나 믿지?” 

“응. 우리 랑구 최고.”    



6.27

이불부터 출근할 옷 까지 모두 챙겨와 본격적으로 엄마의 병원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엄마는 점점 더 심한 통증을 호소했다. 전날에 비해 진통제를 찾는 횟수가 늘어났고 진통제를 찾기 직전의 통증도 더 심해지는 것 같았다. 진통제를 맞고 통증이 사라졌을 때 나는 엄마 침대로 올라가서 우리 집 침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엄마를 끌어안고 누웠다. 글을 쓰는 이 순간, 엄마가 몸을 비켜 내가 올라올 자리를 만들어주던 그 몸짓이, 엄마의 체온이, 엄마의 냄새가 너무 그립다. 


나는 끊임없이 췌장암 완치 사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앞으로 어떻게 엄마를 간호 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이야기했다. 불안감이 들 때마다 내 옆에 있는 엄마를 보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대로 영원히 내 옆에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눈에서는 삶에 대한 불꽃이 튀었다. 그것이 나를 더 희망차게 했다.


엄마 머리를 감겨주고 미용사가 알려준대로 손질을 했다. 엄마가 궁금하다고 사진 한 번 찍어보라고 해서 찍었는데 동영상으로 찍을걸 후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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