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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Jul 29. 2020

엄마의 마지막 17일

첫째날, 두 발로 걸어서 병원에 들어갔는데.

안녕하세요, 저는 다녕님 딸 률이예요.

엄마가 돌아가신지 2주가 넘게 조금 흘렀습니다. 항상 엄마차를 타면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놓고 따라부르곤 했는데 며칠 전 브래들리가 운전하는 차에서 저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노래를 따라부르기는 커녕 듣지도 못하던 때가 겨우 한달전인데 벌써 이렇게 감정들이 정리되어가고 있다니, 덜컥 겁이났습니다.

엄마와 병원에 있던 17일간의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던건 사실이지만, 그 때의 순간과 함께 엄마의 마지막 순간까지 옅어지는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의 인생 중 마지막 17일의 시간을 최대한 자세히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아직도 믿을 수 없는 엄마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스스로와의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아직 엄마의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도 실감이 안나실텐데, 함께 엄마의 마지막 순간들을 기억해주시고 추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020.6.23-첫째날, 응급실로 들어간 날


  엄마가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하기 2주 전인 6월 둘째 주 주말, 나는 서산(엄마가 사는 곳)에 갔다. 내가 사는 서울과 그리 멀지 않아 나는 자주 왔다 갔다 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중간고사 시험 감독을 하고 바로 서산으로 내려간 터라 피곤했고, 엄마가 과외를 마치고 퇴근하는 시간까지 기다리는데 잠이 쏟아졌다. 평소 같으면 엄마에게 나가자고 졸라서 ‘맛있는 거’ 타령을 하며 끼니와 관계없이 식사와 디저트를 무한반복 했겠지만 너무 피곤해서 계속 집에만 있었다. 엄마는 병든 닭 마냥 자고 있는 나를 보며 ‘직장인 모드가 다 되어서 이젠 주말에 꼼짝도 못하는 거냐’고 나를 놀렸다. 


  다음 날, 어제 먹지 못 한 맛있는 것을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위염 약을 먹고 있어서 나름 엄마를 배려해서 메뉴를 골랐다. 자극적인 것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나는 마라탕이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한식이 좋다고 해서 한식으로 골랐다. 엄마는 칼국수, 나는 콩국수 그리고 만두를 하나 시켜서 먹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엄마는 약봉지를 꺼내서 먹었다. 평소 병원도 잘 안가고 약 챙겨먹는 것도 참 귀찮아하는 엄만데 꼬박꼬박 약을 먹는 것을 보니 많이 아픈 건가 싶었지만 주말 내내 침대에 붙어 나랑 노닥거리는 동안 통증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없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주말이 한 번 더 지났다. 지난 2주간 가벼운 위염으로 시작한 엄마의 복통이 아무리 약을 먹어도 잡히지 않자 엄마는 서산에서 가장 큰 병원에 가서 씨티를 찍어보게 되었고, 부신 쪽에 혹이 보인다는 소견을 받았다. 그 병원에서는 엄마에게 ‘외래를 잡으려면 2~3달이 걸리니, 응급실로 들어가서 입원실까지 바로 올라가라’는 편법을 권장했고, 엄마는 소견서를 들고 서울로 오는 버스에 올랐다.


 ‘랑구야, (엄마가 나를 부르던 애칭. 딸랑구를 귀엽게 바꾼 것)엄마 1시에 도착해. 근처에 사람 없는 미용실 좀 예약해 놔’

 ‘미용실은 왜?’

 ‘입원하면 머리가 제일 애물단지야. 숏컷으로 자르게.’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한적한 미용실을 예약했다. 엄마가 오기까지 약 20분 정도 남아서 미용실에 앉아 엄마를 기다렸다. 그 때 나는 친구들에게 이런 카톡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 배 아파서 지금 응급실 가는데 입원하면 머리 감기 힘들다고 지금 숏컷 하러 옴ㅋㅋ진짜 엄마답지’   

 

그 날 미용실에서 찍은 사진. 사진 속 엄마가 입고있는 옷은 아직도 '삼성병원 응급실'이 적힌 비닐가방에 담겨있다. 혹시나 엄마 냄새가 날아갈까 열어보지도 못하겠다.

  

  내가 기억하는 한, 엄마는 짧은 머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엄마는 열심히 숏컷 관리법을 배웠다. 머리를 털어서 말리라는 둥, 드라이는 뒤에서 앞으로 하라는 둥 하는 것들이었다. 기분 좋은 마음으로 계산을 하는데 직원이 회원등록을 하면 앞으로 방문할 때 마다 20퍼센트 할인이 된다고 했다. 엄마는 터미널과 가까워 자주 올 수 있을 것 같다며 선뜻 회원 등록을 했다. 그 때는 당연히 엄마가 이 미용실에 자주는 아니더라도 종종 방문할 것이라 생각했고, 내가 보기엔 미용사의 실력이 썩 좋지 않았는데 마음에 들어 하는 엄마가 의아하기도 했다.    


  미용실을 나와 병원으로 발길을 돌리니 엄마가 '우리 랑구 배고파서 어떡하냐'며 밥을 먹어야되지 않겠냐고 했다. 지금은 엄마가 진통제를 먹어서 하나도 안아픈데, 밥을 먹는 순간 속이 뒤틀리는 것처럼 아프기 때문에 밥을 먹어야 진짜 환자 행세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가면 나랑 응급실 침대에서 장난만 치고 아무리 봐도 환자처럼 보이지 않을까봐 걱정이 된다는 말도 했다. 나는 엄마에게 아픈게 거짓말도 아닌데 굳이 더 힘들게 아픈 상태로 입원할 필요는 없지 않겠냐고 말하며 서둘러 병원에 가자고 했다. 한 시라도 빨리 가고 싶었다. 마음 속 어딘가에서 불안한 마음이 샘솟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삼성병원으로 향했고 응급실 앞에 내려 병원으로 들어갔다. 끙끙 앓아야 응급환자 취급을 해 줄텐데, 엄마는 너무 멀쩡했다. 응급실로 들어가는 엄마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엄마, 지금 많이 아파?’

  ‘...아니. 어떡하지ㅋㅋㅋ?’

  우리는 그렇게 그냥 평소와 같이 장난을 치고, 킥킥댔다.   

응급실에서 우리는 그냥 재밌게 놀았다.

  


  이렇게 들어간 병원에서 엄마는 다시는 나올 수 없었다. 마치 병원에서 엄마를 그렇게 만든 것 같이 엄마는 그 날 이후 하루가 다르게 ‘진짜 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 모든 순간이 아직도 너무 생생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 겨우 한 달 전의 일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엄마의 긴 머리가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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