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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Aug 27. 2020

하루 중 30분만 엄마를 볼 수 있다니.

짧고 굵은 중환자실 간병일기

6.30 하루종일 병원에 있어도 딱 30분만 엄마를 볼 수 있다니.


  엄마가 중환자실로 들어가고 일반병동, 엄마가 있던 침대는 덩그러니 비고 일주일간 병원생활을 하던 짐만 남았다. 이걸 어떻게 다 빼나 싶었다. 그 때 행복방에서 또 나에게 꼭 필요한 조언을 해주셨다. (혹시나 삼성병원을 이용할 다른 사람들이 이 글을 본다면 이것 또한 꼭 기억해 놓으면 좋을 것이다.) 암 병동 지하 4층에 장기이용자를 위한 대형사물함이 있는데 그 곳에 짐을 넣어둘 수 있다고 했다. 웬만한 캐리어 3개는 거뜬히 들어가는 대형 사물함이고 비용은 하루에 1000원씩이다.

  짐을 정리 해보니 방금까지 엄마가 먹던 수박, 뉴케어, 이불, 각종 세면도구, 엄마가 입원할 때 입고 들어왔던 옷가지와 신발 등등 캐리어와 책가방을 제외하고도 쇼핑백이 5개정도 나왔다. 도저히 내가 다 들고 내려갈 수가 없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세 갈래로 주룩주룩 흘러내려 앞도 제대로 안보였다. 혼자서 엉엉 울며 짐을 정리하고 있자니 같은 병실을 쓰던 할머니가 말을 거셨다. 평소 병실에서 오며가며 마주칠 때마다 나에게 엄마를 꼭 닮아 예쁘다며 칭찬해주셨던 할머니였다.

 “엄마 중환자실 가셨어?”

 “네.”

 “아이고, 딱해서 어떡해.”    


  딱하다는 말이 그보다 더 잘 어울리는 상황이 또 있을까? 낑낑대며 짐을 들고 내려오는데 같은 병실을 쓰는 다른 아저씨 한 분이 도와주셨다. 아저씨는 노모를 간호하는 아들이셨는데, 할머니는 치매기가 있으신지 아저씨를 보고 오빠라고 불렀었다. 아저씨는 괜찮냐는 말도, 울지 말라는 말도 않으시고 그냥 밑에까지 짐만 옮겨다 주셨다.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병원 로비는 이미 불이 다 꺼진 상태였다. 짐을 다 가지고 내려와서 로비 바닥에 주저앉아 짐을 펼쳐놓고 사물함에 넣어놓을 수 있는 짐과 그렇지 않은 짐을 구분해서 정리했다. 예를 들면 수박 같은 것은 사물함에 넣을 수가 없으니 따로 빼 두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멀기에 조금이라도 짐을 줄이기 위해 불 꺼진 로비 의자에 앉아 수박을 먹었다. 시원하고 달았다.    

엄마가 있던 중환자실 앞은 감염내과로 불이 다 꺼지면 이런 풍경이다. 병원 사진을 검색하다 발견했는데 마치 내 집 같이 친근하다.여기서 수박을 먹었다.

  중환자실에서 입원 절차가 끝나고 몇 가지 안내할 것이 있다며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 날 부터 02로 시작되는 번호가 뜰 때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의 시작이었다. 간호사는 안내문을 주며 보호자가 숙지할 사항에 대해 설명했고, 코로나 때문에 딱 1명의 지정보호자만 병실에 출입할 수 있다고 했다. 면회시간은 하루에 1번 정해진 시간에 30분이었다. 그리고 패드형 기저귀, 치약과 칫솔, 물티슈, 빨대가 달린 컵 등 준비물을 구비해오라고 했다. 출입 방법에 대해서도 안내했다. 먼저 인터폰을 누르고 ‘강단형님 보호자인데 면회 왔어요.’ 하면 ‘따님이세요?’라고 확인한 뒤 문을 열어준다. 그리고 들어가서 장갑과 비닐로 된 앞치마를 착용한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녀간 곳에 최근 방문 한 적이 있는지, 열은 없는지 체크를 한 뒤 면회가 시작된다.    


  중환자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니 마음이 착잡했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엄마는 더 세심한 케어를 받기 위함이야. 곧 나올 수 있을거야! 옆 침대들을 보니 다들 혼수상태이거나 눈만 깜빡이는 환자들, 투석기를 비롯한 각종 기계를 온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람들과 비교하자니 엄마가 너무 멀쩡해 보였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중환자실 어때?” 

“침대가 푹신해서 완전 좋아.”


  그동안 등 쪽 통증 때문에 앉지도 눕지도 못했던 터라 엉덩이쪽이 계속 아프다고 했었는데 침대가 편하다고 하니 안심이 되었다.

  면회를 끝내고 밖에 앉아있다보니 칫솔과 치약을 빼먹고 못 드린게 생각이 났다. 혹시나 칫솔 핑계로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싶어 다시 중환자실 인터폰을 눌렀다. 간 김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는지도 여쭤봐야지. 이번에는 간호사님이 직접 나와서 칫솔과 치약을 받아가셔서 엄마를 만날 수 없었다. 하지만 핸드폰에 대해서는 '다른 환자들에 비해 강단형님은 워낙 정신도 또렷하시고 연결되어있는 기계도 적으셔서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다. 다행이었다.

 

  엄마가 중환자실로 들어간 직후, 병원 복도에 쭈그려 앉아 엄마 친구 분과 전화통화를 했다.

  “엄마 중환자실 들어가셨어요.”

  “률아, 나는 왜 이렇게 다 거짓말 같지? 지금 너랑 나랑 울고 있는 것도 다 슬픈 연기하는 거 같아.”

  "저도요.."

  모든 상황이 다 거짓말 같았고, 지금 내가 울고 있는 것도 다 연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누가 '컷' 소리만 외쳐주면 바로 뛰쳐나올 자신이 있었는데..


  면회시간이 끝나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었지만 병실 앞에 가만히 앉아 있다가 막차시간이 다 되어 병원을 나왔다. 하루 중 30분만 엄마를 볼 수 있었지만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병원으로 갔고 막차시간이 다 되어서 병원에서 나왔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했다. 병원을 떠나서는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엄마를 볼 수 있는 30분 빼고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서 보냈다. 암병동과 본관을 잇는 복도로 창이 크게 나 있고 의자가 푹신하기 때문이다. 벽에는 예쁜 그림도 걸려있다.
나름.. 뷰가 좋은 곳으로 늦게 가면 좋은 자리가 금방 다 찬다. 다음번에는 병원에서 노숙하기 좋은 장소에 대해서도 소개 해드려야겠어요.ㅎㅎ아주 꿀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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