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당장 먹기 무서우면 내가 먼저 먹어볼게.
6.30-강아지 구충제를 먹으면 암이 낫는다던데.
암환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것이 있다. 그 이름도 유명한 강아지 구충제. 내 나이 25살, 암환자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해볼 일도 없고 집에 딱히 암환자도 없었기에 뉴스에서 언뜻 강아지 구충제에 대한 내용을 스쳐본 것이 전부였다.
앞선 글에서 엄마가 하루하루 더 안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자세한 양상을 설명하자면 이렇다. 먼저 밥을 삼키지 못했다. 밥을 딱 한 숟가락만 삼켜도 잔뜩 과식을 한 것 같이 배가 불러 더는 못 먹겠다고 했다. 밥을 먹으면 활동을 시작하는 소화기관인 췌장에 문제가 생기니, 음식이 몸에 들어오자마자 그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다. 더 강력한 진통제를 먹을수록 장운동은 더욱 비활성화 된다고 한다. 그렇게 장이 운동을 멈춰버리면서 가스가 차고 아랫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즈음에 나는 췌장암 환자가 겪는 복수에 관한 글을 읽어서 배가 불러오는 원인 중 복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 예상은 맞았다. 당시 의무간호기록지를 보면 복수는 아니고 가스인 것 같다고 적혀있었지만 바로 다음날(30)부터 복수가 차기 시작했으니 아마 29일부터 조금씩 복수가 진행 중이었던 것 같다.
복막과 뼈에 암이 전이 되면 통증이 상당하다고 한다. 눕지도 앉지도 못하고 등 쪽이 아파오는데, 엄마 또한 그런 증상에 시달렸다. 최대한 편한 자세를 찾아 비스듬히 기대있었는데, 뼈 전이로 인한 극심한 통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사실들은 모두 시간이 흘러 내가 관련 정보와 사례를 더 찾아보면서 이제야 그 원인을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고 당시에는 그냥 일분일초 정신이 없고 그저 ‘우리 엄마 어떡하지’ 하며 발만 동동 굴렀을 뿐이다.
하루 사이에 복수가 계속 차올라 심박수는 널을 뛰고 혈압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배 안에서 출혈이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간호사실 옆에는 집중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임시적으로 1인실처럼 활용할 수 있는 ‘관찰실’이라는 곳이 있는데, 새벽 내내 씨티와 심전도 등 각종 검사를 해보고도 복강 내 출혈 원인을 찾을 수 없어 결국 엄마는 관찰실로 옮겨졌다.
생각 해 보니 관찰실에서 먹었던 음식이 엄마 생에 마지막 음식이었다. 어제부터 먹고 싶다고 했던 수박과 행복방 언니가 가져다 준 선식. 차가운 수박은 속이 불편하다고 해서 전자레인지에 수박을 데워 작게 잘라 먹였다. 씻은 요구르트 병에 선식을 담고서 빨대를 꼽아 엄마 입에 물려주며 ‘엄마, 딱 이만큼만 다 먹자’ 했었는데... 아, 갑자기 또 눈물이 난다.
병원에서는 엄마의 각종 상태에 이렇다 할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저 항암을 진행하기 위해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미 MRI로 췌장암 4기라는 것을 90% 이상 예측하긴 했지만, 조직검사 결과로 진단되는 ‘C-코드’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있어야 항암 치료를 할 때 보험 처리가 되고 치료를 진행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답답했다. 진통제와 수액 그리고 매 시간 뽑아가는 피. 일주일동안 병원에서 한 것은 그것 뿐 이었다. 그 때 강아지 구충제가 나의 머리를 스쳤다.
처음에 그 뉴스를 보고 터무니없는 말이라고만 생각했고 또 그걸 하는 사람이 진짜 있는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저런 것이 뉴스에 나올 거리나 되나?’ 했다. 그런데 내 상황이 되니 달랐다. 병원에서는 아무것도 해주는 것이 없었고 구충제 까짓 거 먹어도 위험하고 안 먹어도 위험하면 뭐라도 해보고 위험해야 후회가 없지 싶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효과를 보고 있었고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며 체계적으로 구충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그 때부터 나도 구충제 공부를 시작했다. 각종 유튜브, 논문, 오픈카톡방 등에 가입해서 하루를 꼬박 공부했다. 엄마에게 구충제를 먹어보겠냐고 물었을 때 반응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내가 잘 설득하면 될 것도 같았다. 엄마 친구분과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 자신의 친구 중에 구충체를 먹고 있는 암환자가 있다며 직접 통화를 해보겠냐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고민 할 것도 없이 바로 하겠다고 했다.
구충제 부분은 많이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 자세히 적을 수는 없지만 결론적으로 엄마는 약을 먹지 못했다. 받은 소포를 풀어보기도 전에 중환자실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엄마 친구의 친구 분과 전화통화를 하게 되었다. 구구절절 나의 사연을 이야기 하고 또 한바탕 같이 울었다. 그 분께서는 최대한 빨리 구충제를 시작해보라며 복용법을 알려주셨고 당장 먹을 만큼의 약을 퀵으로 병원에 보내주셨다. 그리고 나는 신이 나서 소포를 들고 뛰어 올라갔다. 희망찬 발걸음으로 왔는데.. 엄마는 아까보다 더 많이 안좋아져 있었고 중환자실 의사들도 와 있었다. 한 시간만 더 경과를 지켜보고 심박수와 혈압이 잡히지 않으면 중환자실로 병실을 옮겨야 한다고 했다.
엄마에게 소포를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엄마, 이거 먹으면 나을 수 있어.” 엄마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지금은 먹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래, 지금은 복강 내 출혈도 있고 컨디션도 좋지 않으니까 엄마도 조금 겁이 나나보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먹자 싶었다. “엄마, 그러면 내가 먼저 먹어볼게. 그리고 괜찮으면 엄마도 먹자. 알았지?” 하고 얼른 구충제를 하나 까서 입 안에 넣고 삼켰다. 엄마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엄마는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그 날은 정말 많이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