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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Aug 27. 2020

엄마가 직접 들은 마지막 자작곡

your my dani, mommy, sweetie.

7.1

  그 날은 7월 치고는 꽤나 쌀쌀했다. 7월 내내 이어질 지리한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듯 날이 흐렸다. 검정색 가디건을 입고 병원에 갔었는데 무슨 7월에 가디건이냐고 엄마가 물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중환자실에는 간이침대도 없고 하루에 30분만 면회가 가능하기 때문에 더 이상 내가 병원에 밤새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거의 일주일 만에 집에서 잠을 자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학교에 출근해서 노래도 부르고 박수도 쳤다. 하필 그 날 수업한 내용이 ‘클래핑 뮤직’이었는데, 가사도, 노래도 없이 박수로만 연주하는 음악이다. 다 죽어가는 엄마를 뒤로 하고 신나게 박수를 쳐대고 있자니 진짜로 인생은 희극과 비극으로 점철된 것이구나 싶었다.

  

  이 날의 기억은 많이 아픈 기억이다. 엄마가 내 앞에서는 씩씩하게 중환자실로 들어가는 것처럼 행동했으나 뒤에서는 많이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서 하루를 보낸 뒤 다음 날 아침 브래들리에게 전화를 해 울먹이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해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기는거냐고,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고.

  엄마가 떠난 후 의무간호기록지를 확인했을 때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첫 날 많이도 뒤척이고 또 적응하기 힘들어 했노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호사님이 커튼을 쳤다가 또 치웠다가, 물을 떠다 줬다가 또 아이스 팩을 줬다가를 반복하며 엄마가 잠들 수 있게 해 주셨다고 적혀있었다. 이 때 엄마의 심리 상태가 많이 불안정한 것 같아 정신과 협진을 요청했지만 정신과 전문의와 따로 외래 진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는 우울증 약을 처방하는 것만 가능하다고 했다. 그리고 정신과 협진의 경우 환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며 엄마에게 직접 우울증 약을 먹겠냐고 물은 뒤, 엄마가 먹기 싫다고 해서 그 약은 처방받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엄마와의 30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내가 피아노 치는 영상, 수업하는 영상 등을 찍어 와서 엄마에게 보여주었다. 엄마는 구제 옷가게를 정말로 좋아했었는데 병원에 가는 길이 하필 그곳을 지나갔기에 들러서 옷가게 영상도 찍어갔다. 누워있는 엄마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더니 30분이 너무 금방 끝나버렸다.     


“엄마, 나 보니까 좋지?”

“응, 벌써 다 나은 것 같아.”    

엄마 들려주려고 찍어간 피아노 치는 동영상 속 까만 가디건이 7월 1일 속 기억을 말해주고 있다.
엄마가 좋아했던 7호선 환승역에 있는 구제 옷가게. 저기 들어가면 1시간은 기본으로 쓰고 나왔다.


7.2

  이 날은 면회를 마치고 정말 신나는 마음으로 브래들리에게 전화를 걸었었다. 엄마가 병원에 입원하고 처음으로 ‘미래’에 대해 설계하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정문을 빠져나와 셔틀버스를 타며 신나게 영어로 말했던 그 날의 날씨와 공기, 햇볕이 아직도 생생하다. 


  면회시간이 되도록 병원에 앉아 기다리다가 정각이 되자마자 중환자실 앞으로 달려가 인터폰을 눌렀다. ‘저 강단형님 보호자예요!’ 조용히 들어가서 앞치마와 장갑을 끼고 엄마에게 인사를 했다. ‘엄마, 나 왔어!’ 엄마는 나를 반기며 활짝 웃었다.


  어제보다 컨디션이 좋다고 했다. 얼른 나가고 싶다는 말도 했다. 나가서 해야 할 일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고 했다. 책이 나오면 강연도 해야 하고, 강연 할 때 입을 한복도 만들어야 하고, 효림이(과외 하던 학생)도 보고 싶고, 기현이네(엄마 친구 아들)랑 조개 잡으러도 가야된다고 했다. 나는 이렇게 병원에 가만히 누워만 있을 수는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앞으로 브런치에는 투병일기를 컵셉으로 글을 올리자는 계획도 세웠다. 췌장암이면 꼭 동반하는 증세가 황달과 체중감량이라는데, 황달도 없고 몸무게 변화도 1kg도 없는데 이게 진짜 암은 맞는 거냐며 농담도 했다. “엄마, 암인지 몰랐을 때는 멀쩡하기만 했는데 암이라는 말 듣고 괜히 이런다. 그냥 암 아니라고 생각하자.” “그런갑다, 이거 암 아닌가봐.” 하면서.  


  엄마의 심장 박동이 계속 떨어지지 않아 심전도 검사를 했다. 젊은 나이라 이 정도 심박수로 며칠씩 버티는 것이지 나이가 들었다면 벌써 지쳐서 당장이라도 멈춰버릴 수 있는 심박수라고 했다. 하지만 누구보다 잘 버티고 있으니 의사선생님은 그 부분에 희망을 가져본다고 했다. 검사 결과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심장에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 날은 30분 면회를 마치고 검사를 받으러 중환자실 밖으로 나가는 덕분에 엄마를 조금 더 오래 볼 수 있었다.     

  엄마에게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엄마가 노래를 좀 만들어 보라고 했다. 이 상황을 잘 팔아서 글로도 쓰고 노래로도 만들어 보라고. 지금 같은 상황에 노래를 하라고? 역시 엄마답다고 생각하면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작사 작곡을 뚝딱 했다. 내일 바로 엄마한테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에 밤에 녹음도 했다. 엄마가 좋아하겠지? 하며 기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우리가 다녔던 여행을 주제로 곡을 만들어보았는데,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전남편 카드'로 여행가자고 꼬시면 금방 일어날 것 같았다.
엄마를 위해 만든 수많은 노래들 중에서 엄마가 직접 들은 곡으로는 마지막이 된 곡이다. 엄마에게 노래를 만들어 줄 수 있는 딸이라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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