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녕 Dec 06. 2019

남자가 자기의 이혼사유를 말할때

왜이리 바람 핀 아내가 많은지.

내 편협한 의견이니 남자들은 열받지 마시길.


한 번 이혼 했다고 범죄라도 지은 듯이 ,  다시는 연애도 못하고 결혼도 못한다면 너무 불공평한 일일 것이다. 누구나 넘어지고 깨지는게 인생이지만 그 실수를 통해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오히려 실수는 성장의 거름이 되는 것이다.


이혼을 한 후 같은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전남편이 말하는 이혼사유를 건너건너 들을 수 있었다. 처음 몇 해는 전남편이 곧 재결합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기에 나를 대놓고 까지 않았다. 곧 며느리로 들어 앉힐 생각이었으니, 주변에다 자기가 '실수'를 좀 했다고 말했다. '실수'로 몇 달간 거짓말을 하며 바람을 핀 것이다. 둘째를 임신해서 큰애를 데리고 마트 한 번 가는 것도 벅찼던 나에게 말이다.


저녁을 먹고 바람쐬러 나간다더니 바람을 피고 온 것이다. 몇 달간이나.실수로.


그래, 실수라 치자. 자기 탓이라고 인정했으니 그나마 나았다. 내가 친정 옆으로 이사를 가자 전남편은 좀 안되겠다 싶었나보다. 전 남편은 이혼사유를, 내가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이혼을 했다고 퍼트렸다. 그래도 그냥 참았다. 지도 살려고 나를 싸이코로 만들었나보다 싶었다.


전처가 사이비에 빠졌다고 하는 사유는 참 유용했다. 전처가 바람을 폈다고 하면 본인의 자존심도 좀 상할 것이고, 전처가 도박이나 쇼핑 중독이었다고 하면 혹시나 빚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을 준다. 그런데 사이비에 빠졌다고 하면 모두가 납득한다. 더이상 의심을 안하는, 손에 코하나 묻히지 않는 안전한 이혼 사유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전남편이 선을 봤다는 말을 몇번 들었다. 상당히 젊은 여자랑 선을 봤는데 전남편은 그 쪽에 애가 어려서 퇴짜를 놨다고 들었다. 근데 나는 다른 게 걱정이 되었다. 누군가 전남편이 말하는 이혼사유를 그대로 믿고 속아서 결혼을 하면 어쩌지, 하는.


전남편의 재혼을 나는 간절히 기다렸다. 그럼 나는 아들도 데리고 올 계획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전남편이 말하는 '전처가 사이비에 빠져서 이혼을 했어요'하는 거짓말에 속는 일이 없길 바랬다. 다행히 전남편은 아직도 재혼을 하진 않았다. 지금에 와선 법적으로 상속이 꼬이지 않게 해 줘서 참 고맙다.


전남편의 장점만 얘기하자면 꽤나 멀쩡하다. 내 입으로 주워 섬기기 싫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일단 외모도 준수하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다. 술, 담배도 안 안한다. 가끔 웃기는 재주도 있다. 이혼 후 전남편이 "나 정도 되니까 이런 진보적인 이혼을 하는거지." 해서 큰 웃음을 줬다. 자상해서 집안일도 잘하고 요리도 잘하며, 애들 목욕이나 장을 보는 일은 항상 도맡아 했다. 어른들한테 싹싹하게 굴어서 고기 한 쪽이라도 더 얻어 먹을 상이다. 이쯤 되면 왜 이혼했냐 할거다.


그렇게 멀쩡한 남편을 두고, 전처가 사이비에 빠져 이혼을 했다고 하면 내 전남편은 맞선 시장에서 꽤나 시세가 좋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을 해보자. 남편이 의사라 치자. 어느 정도 사유가 되면 이혼을 할까? 대한민국에서 이혼녀의 위치가 어떤지를 안다면 금방 계산이 나온다. 의사가 아니라 평범한 가장이라 해도, 애들의 아빠이고 최소한의 범주안에 들면 한국의 엄마들은 이혼까지 안가는 사람이 훨씬 많다고 본다.


그런데 어째서 주변에 보이는 이혼남들은 이혼사유가 그리도 단순한지 모르겠다. 아내의 외도, 지나친 과소비가 가장 쉬운 사유였다. 내가 너무 내 세계에 갖혀 있는지는 몰라도 정말 그렇게 멀쩡하게 잘 살던 아내가 바람이 날까 싶다. 전남편과 바람이 났던 그녀의 부부는 이혼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아내의 외도에도 냉큼 이혼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혼이 단순히 한가지 이유만으로 성사되기는 쉽지 않다. 성격, 돈, 가족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도저히 어떤 놈이 암까마귀이고 어떤 놈이 숫까마귀인지 구분이 안 갈때 이혼이 이루어진다. 상처를 받았다지만 주기도 했을 것이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같은 싸움을 무한 반복하면 답이 없어 하는 게 이혼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를 들여다 보고 뭐가 문제인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 이혼은 성장하는 이혼이 된다. 남자가 자신의 이혼사유를 말할때 단순하게 한마디로 퉁치면 그건 성찰이 부족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혼으로 결론이 나기까지 무수한 싸움이 있었을텐데 전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또한 자신의 분노나 실망의 정체를 잘 모를 가능성이 높다. 상대방의 말도 곱씹어 보고, 나의 마음도 들여다 보고 뭐가 문제였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군가와의 갈등을 찬찬히 돋보기를 가지고 들여다 보며 풀어가는 사람은 꽤나 괜찮은 사람이라고 본다.


사람의 안에는 여러 면이 있고, 그 다중이는 오래 겪지 않으면 잘 모른다. 특히나 힘든일을 겪어봐야 그 사람의 숨겨졌던 다중이가 나온다. 숨겨왔던 다중이를 드러낼 어려움이 없으면 그 인생은 참 복이 많은 경우다. 하지만 길게 살다보면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상황이 사람을 나쁘게 만들 수도 있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하지만, 인간이니 바람도 필 수 있고, 보증도 서주고, 실직도 할 수 있다. 좋은 사람, 안 좋은 사람을 구분하는 쉬운 길은 자신의 실수를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넘어지고 부셔졌을 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 그 때야 말로 진짜 어른이 될 수 있는 시간이다.



부셔져 보면 니 성분을 알 수 있지, 이제는 쑥쑥 자랄 시간.

https://brunch.co.kr/@red7h2k/5

https://brunch.co.kr/@red7h2k/12


작가의 이전글 드라마엔 동백이, 브런치엔 피드백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