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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Jan 08. 2020

전형적인 한국 남자와 이혼 한 전형적 한국 여자

한남이란 말이 그렇게 모욕적인가요?

누군가 나를 보고 '전형적인 한국 여인 같아요.'라고 말하면 나는 속으로 재미있게 웃을 것 같다. 한복을 만들고 그림을 그린다고 하니 조신하고 순종적으로 보이는구나, 내 작전이 먹혔어. 하면서. 조신하지도 순종적이지도  않은 나는 그런 척을 하고 싶어 한다. 한국 여자, 혹은 동양 여자라는 말이 나에게는 칭찬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한국 여자'는 강인 함과 부드러움의 적절한 조합이라고 내 맘대로 정의하고 있다.


한국 남자에게 '한국 남자구나'라고 하는데 기분이 나쁘다면, 대체 '한국 남자'는 어떤 특징을 대표하는 보통 명사 일까? 물론 '한국 남자'라는 단어보다 '한남'이란 말에는 비난의 감정이 있긴 하다.  어쨌거나 한국 남자의 무슨 특징이 비하의 대명사로 되었는지 성찰을 하게 되었다.


몇 주 전에 올린 글 중, 전남편에게 재결합을 제안했다가 대차게 까인 내용을 쓴 글이 있다. 그 글이 카카오 채널 뉴스로 보내졌다. 카카오 브런치 채널 뉴스로 가기 전에 브런치로부터 공지 알림이 왔다. 나는 카카오 채널 뉴스로 간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잘 몰랐기에, 뭐 이런 걸 공지까지 해 주나 싶었다. 


글이 카카오 채널 뉴스로 간 후에야, 브런치 공지의 의미를 알았다. 미리 글을 한 번 읽어보고 수정할 것을 수정하라는 의미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쓴 글에는 '한남'이라는 단어가 있었고, 이미 '다음'에 걸렸을 때 악플을 좀 받았다. '한남'이란 단어가 나의 수준을 알만하다는 비난이 있었다. 그때, 수정을 할까 망설였지만 하지 않았다. 엄연히 쓰이는 단어이고 비난의 의미가 있지만 일반적 모욕감을 줄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웬 걸, 글이 카카오 채널 뉴스로 나간 후, 내 평생 먹을 욕을 두어 시간 안에 다 먹은 것 같다. 글 전체 흐름에서 전남편을 '한남'으로 비난한 것도 아니고 '한남'이란 단어를 모욕적으로 쓰지도 않았건만, 그 단어 하나에 집착해서 온갖 욕을 먹었다. 결국 나는 '한남'이란 단어를 '조선시대 남편'으로 바꿨다.  내가 생각하는 '한남'의 정의는 '조선시대' 가부장적 남편이라는 이미지였는데, 생각을 해 보니 조선시대 남편이 어떤 남편인지도 의미가 모호 해졌다.


전남편의 성향이 '한남'을 정의하는  특성이라고 보고 진지한 고민을 해 봤다. 우선, 전남편은 경상도 사람이고 대기업을 다녔고 평균의 외모에 부모님도 모두 성실한 분이셨다. 즉, 특수한 환경이나 특이한 분야의 직업군이 아니었다. 장남으로 온 집안의 사랑과 관심을 독차지하고 자랐으니, 열등감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전남편은, 남자가 약간 우월한 위치이고 여자를 자기보다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태도가 있었다. 특히나 부부 사이에는 마땅히 그러해야 정상적인 가정이라 믿는 신념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게 '한남'만의 특징은 아닌 것 같다. 미국의 작가 레베카 솔닛이 쓴 책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의 원제가 <Men explain things to me>인 걸 보면, 남자들이 여자들을 약간 부족한 취급을 하는 것은 보편적인 특성인가 보다.


어느 미드에서 나온 대사에 이런 게 있어 놀란적이 있다. 외모가 예뻐 어릴 때부터 인기가 있었던 멕시코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외모에만 신경 쓰고 지적인 능력은 부족한 캐릭터로 나왔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아주 지적인 말을 하니, 친구가 놀라며 그런 것도 아냐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그 '예쁜' 여자 캐릭터가 하는 말했다.


"나의 어리석은 캐릭터는 고도의 훈련된 어리석음이야. 남자들은 똑똑한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넌 내가 진짜로 바보인 줄 알았니?"


전남편의 특성 중 하나는 효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 모든 것이 코스프레는 아니다. 부모님을 존경한다고 말을 했고, 무슨 날이면 용돈도 드리는 보통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노모가 밥을 차려도 숟가락 하나를 놓을 줄 몰랐고, 양말 하나도 스스로 못 찾아 신었다. 끊임없이 자잘한 심부름을 엄마에게 시키는 사람이었다. 안부 전화를 드리는 일도 없었고 성질이 나면 버럭 소리도 기분껏 잘 지르는 아들이었다. 


이런 특성이 특별히 나쁘다는 게 아니라 보편적인 부모 자식 사이라고 본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세상 효자 코스프레를 하며, 싹싹하고 부지런히 시부모의 시중을 드는 며느리를 강요하는 게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자기 부모와 30분 이상 차근차근할 대화가 없는데 뜬금없이 며느리가 무슨 대화를 그리 살갑게 하느냐 말이다. 


전 시어머니는  우리가 시댁을 방문할 때마다 전남편을 보고는 핼쑥하게 살이 빠졌다고 했다. 당시 전남편은 95kg였는데 말이다. 나에게는 살이 쩠다는 인사를 했고 아이들도 왜 이리 헬쪽하냐고 했다. 첫인사부터 기분을 상하게 하는데 무슨 입안의 혀처럼, 연한 배처럼 살살 녹는 며느리를 기대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는 대표적 '한남'의 특징은 '억지 효도'가 아닐까 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남편을 사이에 둔 삼각관계의 구도이고, 며느리는 아들과 시부모의 어색한 사이를 싹싹하게 웃음으로 풀어주는 재롱꾼이어야 한다. 이런 역할을 기쁘게 할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없었고 매 번 기분이 나빴다. 


내가 이혼 소송을 하기 전 마지막 명절을 기억한다. 집안의 며느리들이 앞치마를 이틀 동안 못 벗고 전을 부쳐 제사상을 차렸고, 남자들이 정장을 입고 제사를 지내는 걸 보면서 맹세를 했다. 이 자리에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고. 이 웃기는 코스프레를 내 딸, 아들에게는 절대 물려주지 않으리라고.


전형적인 '한국 남자'라는 말에 기분이 나쁘다면 그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하며 그 단어가 비난의 의도로 유통되고 있다면 원인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내 전남편이 외도를 한 건 한국 남자의 특성이라 할 수 없다. 외도는 세계 어디에나 있는 흔한 이혼 사유이다. 하지만 기형적인 효도 강요는 한국에만 있는 특성일 것이다.


전형적인 효도 강요를 못 견뎌하는 것은 전형적인 한국 여자의 특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전형적인 한국 여자였다. 하지만 나는 전형적이지 않게 그 틀을 깨고 나와버렸다. 내가 전남편의 확고한 신념에 따바따박 반박할 때마다 말했다. 자기가 내 겉모습에 속았다고, 조신한 줄 알았더니 완전히 딴 판이라고. 


전남편이 내가 읽는 페미니즘 책들을 보고도 말했다. 무 청만 보고 싱싱한 것 같아 쑥 뽑았더니 무에 바람이 숭숭 든 것과 같은 모양새라고.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권위적인 태도와 전형적인 대리 효도를 고수하는 한국 남자가 여전히 많다. 하지만 전형적인 한국 남자를 견뎌왔던 전형적 한국 여자들이 더 이상 참지 않고 있다. 여자들이 바람이 든 무 처럼 허한 것이 아니라 씻은 무처럼 싱싱하게 반짝이고 있는 것이다. 




씻은 무처럼 단단하고 반짝이는 여자들이 많아지길 


https://brunch.co.kr/@red7h2k/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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