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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Jan 06. 2020

소주 반 병만큼의 긍정

다 잘 될 것 같은 배짱도 술이 깨면 사라지는 불안이 들에 게

열심히 운동하고 외국어 공부하는 걸 자랑하며, 사람 기죽이는 책들이 잘 팔리던 때가 있었다. 새벽이면  헬스장에 가서 뛰고, 저녁에는 어학원을 다닌다는 사람들의 글을 읽고, 의욕이 불끈 솟아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 간 적도 있다.


시간을 분단위로 나눠 쓴다는 사람의 글을 읽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은 그제 같은 반복된 날을 보내던 나는 무척이나 바쁘고 싶었다. 타이트스커트를 입고 출근을 하는 옆집 엄마의 하이힐도 부럽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어느 날부터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을 시켜주는 책들이 많아졌다. 직장을 그만두고 세계로 나가라고 한다. 나답게  살아 보라며, 너무 애쓰지 말라고 한다. 위안이 되었다. 그래, 나를 생긴 대로 사랑하며 살아야지, 길을 잃어도 괜찮다고 하네. 그렇게 위안을 삼다가도, 주말 내내 넷플릭스를 보며, 영어 공부를 한다는 정신승리가 미워진다.


인스타나 블로그에서 본 멋진 풍경의 여행지를 가도, 사진에서 본 것 같은 자유로움이나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나의 감수성을 탓하기도 했다. 모임에서 누군가 여행 자랑을 하면, 감탄만 해 줘야 하는 게 아니라 나도 가 봤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외에는 크게 부심을 느낄 것도 없었다.


여행지에서 본 풍경이나 이국적 음식보다는 함께 그 음식을 먹은 현 남편의 표정이나 딸과 했던 장난들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굳이 그 시간과 돈을 들여 여행을 갈 필요가 있나, 하는 철학적 고민을 하게 된다.


이혼을 하기 전, 나름 새댁 노릇을 즐겁게 할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서정희 씨의 하얀색 인테리어가 방송에 주 나왔다. 심플하고 세련된 느낌의 서정희 스타일을 흉내 내며, 아침마당에 나온 엄앵란 씨가 전해주는 부부 조언을 들었다. 엄앵란 씨가 304호나 405호나 다 같다고 하는 말에 위안이 되었다. 조양희 씨의 <도시락 편지>를 읽고, 전남편의 도시락을 싸고 손편지를 넣어 준 적도 있었다.


나를 가장 기 죽인 책은 최유라 방송인이 쓴 <저, 살림하는 여자예요>였다. 최유라 씨는 수산시장에서 직접 장을 봐와서, 포를 뜨고 술안주를 만들어 남편 동료들이 집에서 술을 마시게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프리랜서라 수입은 남편보다 좀 많다고 했다.


새댁 코스프레를 1년 하고 나니 모든 것이 시시해졌다. 아침마당도 1년을 보고 나니 패턴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집 인테리어는 아무리 깔 맞춤을 해 봤자 전남편은 쓸데없는 짓이라 여겼고, 아이는 순식간에 초토화시켰다.


엄앵란 씨나 조양희 작가가 전업주부를 예찬하고 위로하는 말도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작 그녀들은 주부 노릇만 하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주부 대상으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있었던 것이다.


최유라 씨의 글은 사실 분노까지 했다. 남편이 밖으로 돌지 않게 하기 위해 술안주를 직접 만들어 집에서 회식을 하게 하고, 돈은 남편보다 훨씬 더 번다는 신화 같은 얘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행여 남자들이 이 책을 읽고, 아내에게 좀 닮아 보라 할까  겁나는 책이었다. 그러면서 제목은 <저, 살림하는 여자예요>였으니, 이건 시어머니들이나 좋아할 책이었다.


전남편과 이혼을 고민할 때, 몰래 소주를 숨겨놓고 마신 적이 있었다. 반 병 정도 먹으면, 내 불쌍했던 처지가 말랑말랑하게 보였다. 이혼을 해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냥 살아도 그런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거실에 늘어진 아이들의 장난감도 빨랫줄에 걸린 전남편의 옷도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보였다.


다음 날 아침에 본 우리 집은, 어젯밤 소주 반 병의 긍정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남아있는 두통만큼이나 현실적이고 선명하게 아팠다. 소주 반 병이 주는 낙관은 아주 짧았고 두통이라는 후유증도 있었다.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기 위해선 소주가 아니라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나를 살펴본 결과, 두려움을 약하게 만든 건, 내가 내 몸을 움직여 작은 것 하나라도 성취를 했을 때였다. 당시 나는 한복 공부를 하고 있었으니, 저고리를 만들었을 때, 두루마기를 만들었을 때 긍정의 힘이 생겼다. 아이들 공부시키기 위해 글쓰기나 그림 관련 책을 읽을 때 힘이 났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고, 하다 보면 잘 될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이혼을 한 후 바느질을 할 때, 감기가 심하게 걸린 적이 있었다. 전남편에게 부탁하긴 싫었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어, 전남편에게 감기약 좀 사다 달라고 다. 전남편이 아이들 손에 감기약을 쥐어서 보냈다. 그때 결심했다. 운동해서 절대 아프지 말자. 조금만 아프면 미리 병원을 가자. 그 후 지금까지  20년간 아파서 출근을 못한 적이 한 번도 없다. 20년간 안 아팠던 게 아니라 어지간히 아파선 참고 일을 했고, 조금 아픈 기색이 돌면 얼른 조치를 취해 왔다.


며칠 전 운동을 갔더니 새로운 회원이 늘었다. 1월 첫 주이니 어학원이나 여행사도 바빠졌을 것이다. 새롭게 각오한 리스트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박력 있게 내는 사표도 패기롭게 떠나는 여행도 진짜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쥐가 궁지에 몰려 고양이에게 대적하는 사력을 다해야 가능하다. '게으르게' 나답게 '열심히' 산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열심의 결과 책을 낸 것이다.


나를 생긴 대로 받아들이고 자책하지 않으려면 그 또한 나를 볶아대며 노력을 해야 되는 것이었다. 인스타에 올라온 친구들의 '욜로'적 힐링에도 질투하지 않을 내공이 쌓여야 한다. 책에서 본 '나 답게' '안 열심히' '자유롭게'는  인도 여행을 간다고 저절로 오는 게 아니었다. 


'나 답지' 않은 코스프레를 해 봐야 '나 다운'게 뭔지를 알 수 있다. '안 열심히'는 '열심히' 엉뚱한 삽질의 기간을 거친 후에야, 내 그릇에 맞는 적정 선의 '열심'을 찾는 것이다. '자유롭게'는 노예생활을 오래 한 사람만이 그 자유가 얼마나 달콤한지 안다. 직장인이 평일에 병원 한 번 가는 것도 얼마나 눈치를 봐야 하는 지를 경험 한 사람은 여행지의 자유 체감도는 강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이 찾아 놓은 폼나는 길에 덩달아 갔다가는 실망만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는, 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 방향을 잃게 된다. 내가 새댁 코스프레를 하던 시절에 남의 옷을 입고 자꾸 내 몸을 탓했던 것과 비슷하다. 몸은 좌향 하고 눈은 우향을 했으니 뭔가 신이 안 났던 것이다. '살림만 하지 않는 여자'가 '살림만 하는 여자'들에게 하는 마케팅 전략에 속은 걸 나중에야 깨달은 것이다.


나는 불안이 많아 뭔가를 항상 한다. 그래야 안 불안하다. 자꾸 뭔가를 하다 보니, 내가 지속적으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을 고르는 안목이 생겼다.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부담을 주면 안 된다는 절박함에 운동을 소홀히 할 수 없다. 나이가 들어 학생들이나 학부모가 싫어할까 싶어 더 친절하고 신나게 수업을 진행한다. 지친 내 심신은 바느질과 그림으로 달래 준다. 창작 활동을 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쇼핑을 자꾸 하게 되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소주 반 병이 주는 위안과 긍정은 관절염에 파스를 붙이는 것과 같이 일시적이다. 내가 내 몸을 움직여 얻은 결과는 나를 안심시켜 주고, 가라앉으려 할 때 끌어당겨 주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불안해서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는 우리를 위한  프리지아 한 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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