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녕 Dec 11. 2019

비싼 결혼 해서 헐값에 이혼하니

이혼에 돈이 더 많이 든다면 쉽게 허튼짓을 못하지

아이들을 떼어놓고 어학연수를 간 건 순전히 내 간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발견해서 경제적 독립을 해야만 하는 사명을 띠고 떠났다. 다행히 내 간은 잘 컸고, 경제적 자립도 되었다. 뭘 해도,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낙타처럼 살아 낼 자신이 있다. 간을 조금만 더 키웠으면 좋겠는데 주변에선, 배 밖으로 넘칠 지경이라고 말린다.


밴쿠버 시내에 있는 어학원을 다녔고 거기서 몇몇 흥미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나는 30대 초반 아줌마였으니 나이가 들어서 오는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나이의 티나라는 대만 친구를 만났다. 티나는 캐나다 이민남자 친구를 만났고, 그 남자 친구의 집에서 산다고 했다.


얼마 후, 티나는 집으로 몇몇 친구를  초대했다. 남자 친구랑 산다고 하니 시내 조그만 아파트라 생각을 했는데, 교외 주택가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잔디가 깔리고 큰 정원수가 드문 드문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티나의 남자 친구가 음식을 차려 놓고 우리를 맞이 했는데, 그는 50대 초반의 아버지 뻘 아저씨였다.


초대받은 모든 친구가 당황한 얼굴이었고, 마지못해 편안한 웃음을 지으며 식사를 함께 했다. 나중에 티나의 얘기를 들어 보니 사연은 이랬다. 그 남자는 티나의 고향 사람이고 일찍 이민을 가서 캐나다에 정착을 했단다. 허름한 주택을 사서 수리를 하고 다시 파는 일을 했다고 한다.


돈을 꽤나 모았는데 두 번의 이혼으로 거의 거지가 되었다고 했다. 따라서 자기는 그 남자의 돈 때문에 빠진 게 아니라는 거였다. 티나의 부모님도 처음에는 반대를 했으나 지금은 받아들인다고 했다.


내가 관심을 가졌던 포인트는 티나의 아빠 뻘 되는 남자와의 사랑이 아니었다. 두 번의 이혼으로 빈 털털이가 되는 시스템이었다. 첫 번째 와이프에게  20이 넘은 자녀가 둘 있었고, 두 번째 와이프에게는 초등학생 아이가 둘이라 했다. 위자료와 양육비로 나간 돈이 거의 전 재산이었고, 그 당시에도 양육비는 계속 나간다는 것이었다.


이혼은 그래야 마땅하다. 물론 이혼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있긴 하겠지만, 자녀를 양육하는 쪽에 자본이 가야 하는 건 자녀의 교육과 미래를 봤을 때 당연한 처사이다.


자녀를 인질로 잡아 아내, 며느리를 굴복시키려는 한국 남자, 시어머니는 아직도 많다. 경제력이 없는 엄마가 아무리 억울함을 당해도 쉽게 이혼 결심을 못할 때, 남편 쪽에서는 아이의 양육권을 절대 줄 수 없다는 카드 내민다. 그것은 아이를 사랑해서, 자기가 더 잘 키울 수 있다는 신념 때문이기보다는, 네가 이래도 나한테 안 꿇어? 하는 오기인 경우가 더 많다.


아이의 양육도 포기하면서 이혼을 하면, 자식도 버린 독한 어미라는 비난과 죄책감을 감당해야 한다. 이러니 한국의 엄마들은 범죄에 가까운 남편의 행동도, 드라마에서 배운 듯한 막장 시어머니도 참고 견딘다. 독하게 이혼을 해서 양육권을 가졌다 해도 그때부터는 양육비는 못 받고 혼자서 돈 벌랴, 아이 돌보랴 그야말로 고단한 싱글맘이 되는 것이다.


결혼할 때 드는 그 준비 기간과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면 외도나 폭력 같은 유책을 그렇게 쉽게 할 수 있을까? 거지가 될 정도로 전 재산을 주고, 자녀가 독립을 할 때까지 양육비도 철저히 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외도를 하고 싶다면 하라고 해라. 그건 아마 진정한 사랑 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결혼이 정치적 사회적 행동이 아닌 적이 역사상 없었다. 결혼에 진정한 사랑이 필수 조건인 건 굉장히 역사가 짧다. 정치적 이유로 아버지들끼리 결혼을 결정하거나, 돈 때문에 팔려가다시피 결혼을 하는 사례는 지금도 볼 수 있다.


그럼 이혼도 정치적으로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남자가 이혼을 원하면 법을 바꿔서라도 이혼을 하는 사례를 영국 왕에게서 보았다. 여자가 이혼을 원하면 노예가 도망치듯 달아나는 방법밖에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제 시대가 달라졌으니 도망도 치지 말고, 빈 손으로 애만 데리고 나오지도 말자는 것이다.


나는 전남편의 외도를 동네 시끄럽게 알게 된 후 3년 6개월간 준비를 했다. 그 당시 나는, 지금 이혼을 다면 난 뭐부터 할 건지를 생각해 봤다. 당연히 경제적 독립이고, 내 인간관계를 만들고 내 영역을 찾는 것이었다. 전남편과 살고 있었지만 이혼을 각오하고, 이혼을 했다는 마음으로 독립 준비를 했다.  결정적 이혼 사유가 전남편에게 있었으니 나는 그에 합당한 위자료도 받고 싶었다.


애들을 재워 놓고 무 뽑듯이 몸을 빼고 나가서 독립신문이라도 만드는 냥 쓴 비밀일기가 나에게 위자료를 받게 해 줬다.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증세. 눈가에서 날 벌레가 맴도는 증세, 얼굴에 거미줄 같은 게 감기는 듯한 증세... 온갖 신경증이 나를 죽이겠다 싶을 때 이혼 소송장을 썼다. 이혼이 이렇게 목숨까지 걸고 할 일인가 말이다.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했으니 증거를 기록하고 모아 소송서를 혼자 작성할 수 있었다. 다행히 전남편이 어리숙해서 위자료까지 받았지만, 돈도 많고 독한 남편을 가진, 글쓰기 싫어하는 여자는 어쩌란 말인가? 남편이 재산을 빼돌려도 아내는 당장 변호사 상담을 받으러 갈 비용도 없어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이혼율이 높아진다고 걱정을 하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도 참지 말아야 할 사례를 너무나 많이 참아내고 있는 착한 한국 엄마들이 많다. 이혼에 책임이 있는 남자들이 위자료나 양육비를 안 주고 이혼을 할 수 있으니 겁이 없는 것이다. 네가 할 테면 해봐라 하는 태도가 바뀌지 않고 있다.


법이 허술하다면 법을 바꾸고, 법은 있는데 시행이 잘 안되고 있다면  강제성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캐나다에서 어학원을 다닐 때 영어 독해 본문에 이런 게 나왔다.  한 아빠가 딸에게 줄 바비 인형을 사러 갔는데 인형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단다.


 바비-나이트클럽 가기 세트 Barbie goes dancing

 바비-피크닉 가기 세트 Barbie goes on a picnic


그런데 별 특별할 것도 없는 바비인데 가격은 두 배인 게 있더란다. 아빠는 주인에게 이건 왜 가격이 두배냐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주인이,

 바비-이혼하기 세트 Barbie getting divorced인데, 이혼하는 바비는 위자료를 줘야 해서 가격이 두배라고 하더란다.


말만 들어도 통쾌했다.

정의란 위자료와 양육비를 당당히 받는 것_ from  pinterest



https://brunch.co.kr/@red7h2k/4

https://brunch.co.kr/@red7h2k/7





작가의 이전글 불쌍한 여자보다 불편한 여자가 나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