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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Dec 10. 2019

불쌍한 여자보다 불편한 여자가 나아

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들어갔다. 직장을 잡고 아파트를 구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올 계획이었다. 친정에 산지 몇 달 되지 않아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그리고는 우리 애들 신경 쓰랴, 아기가 된 엄마 돌보랴 정신이 없는 삶이 시작되었다.


아버지는 평생을 무서운 가장으로 살아오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가 쓰러진 후로 너무나 자상한 남편이 되었다.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지 1년도 안되어 온 동네 사람들에게 지고지순 헌신적인 남편으로 인정을 받았다.


나는 아버지께 감사하기도 했지만 나의 노후가 더럭 겁이 났다. 엄마는 아버지가 간호를 해 주시지만 나는 누가 간호를 해주지 하는. 엄마를 간호하면서 나는 내 몸 관리를 해야겠다 싶었다.


그때부터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차에 수영 가방과 헬스 가방을 항상 싣고 다니며, 틈만 나면 운동을 했다. 헬스장을 다녀도 시간이 충분치 않아 러닝머신에서 몇 분 뛰고 웨이트 몇 세트 후딱 하고 출근하기 바빴다.


 동네 헬스장이 그렇듯이 아주머니들은 늘 음식을 싸와서 먹는 시간이 많았고, 간식을 함께 먹자고 권했다. 동네 아줌마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던 나는 간식을 거절하기도 힘들고, 같이 먹기는 더 불편했다. 어색하게 거절은 해도, 나름 싹싹하게 인사를 하고 늘 쌩하니 나가는 패턴이었다.


어느 날은 샤워장에서 한 사람이 날보고 대뜸 하는 말이, "언니 남편이랑 사이 안 좋지?" 한다.  동네 언니들한테 쌀쌀하게 대하는 사람들은 백발백중 남편과 사이가 안 좋더라는 나름 근거 있는 통계를 들이대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이 그런대로 맞으니 기분이 나쁘기도 하면서, 은근 예리함에 뜨끔했다.  동네 아줌마들과 인사를 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순간 그들은 가정사를 물을 것이고, 그럼 나는 거짓말을 하던지 이혼녀라는 불쌍한 취급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그게 싫으니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도 싫고 특히나 말 많은 동네 헬스장은 더 싫었나 보다.


나는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갖지 않으려면 약점을 먼저 드러내고 인정하라고 얘기했었다. 내 입으로 내가 이혼한 걸 먼저 얘기하자는 주의였는데 제일 무서운 게 동네 아줌마들의 입이었나 보다. 그 벽을 뛰어넘지 못함에 속이 상했다. 끝내 그 헬스장 사람들에게는 '부부 사이 안 좋은 여자'로 남겨두었고, 해명도 거짓말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시골학교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차가 고장이 났다. 보험 회사를 통해 SOS기사 아저씨가 도착했다. 근처 카센터로 가서 임시로 고치기는 하겠지만 정식으로 수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임시로 고치는 값은 그 값대로 치르고 정식 비용은 따로 내야 된다고 했다. 그럼 임시로 고치지 말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식 수리를 해 달라고 했다. 딱 맞는 부품은 아니지만 고쳐 준다고 해서 기다렸다.


수리를 하고 계산을 한 후, 딱 맞는 제 부품이 아니라는 말이 걸려서 다시 한번 확답을 받고 싶었다.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 달라고 했더니 그 아저씨 말이,

"아가씨인 줄 알았더니 사람 말 잘 못 믿고 따지는 거 보니 아줌마인가 보네요. 알았어요. 문제 있으면 오세요. 손 봐 줄게요."


나 참 어이가 없어서. 하는 말 곧이곧대로 믿으면 순진한 아가씨이고, 조목조목 따지면 아줌마인가 보다. 아가씨면 뭔가 속임수를 쓰고 아줌마라서 속임수를 못 쓴 건지.


 헬스장에서 눈인사만 한다고 부부 사이 안 좋은 아줌마 취급당한 거만큼이나 황당했고, 사실상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 우습기도 했다.


이혼 초기에는 어떻게든지 불쌍한 취급당하기 싫어 각을 세우고, 포장하고, 혼자 상처 받아 속상해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여유가 생겨 부러운 친구를 얼른 부럽다고 말로 뱉어버리는 지혜도 생겼다. 내가 갖고 싶은 많은 것을 가진 친구를 부럽다고 말도 못 하면, 내가 초라해져서 싫었다. 부러움이 지나치면, 그 친구가 미워지니 내 맘도 편치 않았다. 얼른 부럽다고 좋아 보인다고 얘기 해 주면 내 배포가 좀 커진 것 같아 살기 수월했다.


공부 잘하는 착한 아이들, 철마다 가족 여행을 가는 모습, 심지어 반찬을 해다 주시는 친정 엄마, 정말 부러웠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주변 사람들에게 "엄마 있어 좋겠다, 난 엄마도 없고 남편도 없네. 애들은 엄마 겸손해지라고 자랑거리라곤 밥 잘 먹는 거밖에 없다. 우리 아들 젓가락질 잘해. 1학년 때부터 젓가락으로 콩도 잘 집었어." 내 입으로 먼저 다 얘기하니 속이 편했다.


기쁨을 나누면 질투가 오고 슬픔을 나누면 흉이 되어 온다지만, 나는 내 흉을 나누고부터, 뒤에서 뭐라 할지언정 내 속은 편했다. 엄마가 돌아 가신 후로 고추장, 된장, 장아찌 종류들이 무척 아쉬웠는데 철마다 여러 사람들이 한 단지씩  챙겨주어 감사했다.


동네 친구들 모임을 일 년에 한 번씩 하는데, 한 번은 친구가 옷을 갈아입는 나를 보며 말했다." 가슴도 예쁜데 쓸데없어서 어쩌냐?"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남편 있는 너는 쓸데 많아 좋겠다"


친구는, "남편 있는 나도 쓸데는 없네." 해서 같이 웃었다. 상처 없이 농담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좋았다.


불쌍한 여자 취급받기 싫어 '불한 여자'를 선택해서 살기도 했고, 불행을 많이 거치고 보니 기운도 다 빠져서 불쌍한 걸 이용하기도 했다. 엄마 없어 불쌍하니 김장을 안 해도 김치가 생기고, 남편 없어 불쌍하니 자기들 남편과 싸우면 나를 찾아 수다를 떨어줬다.


혼자 집안일을 처리하자니 불편하게 따지는 사람이 되기도 했지만, 결국은 내 생긴 대로 속 편하게 산다. 내가 겪은 불행들도 지나고 나니 조금 일찍 한꺼번에 겪었다 뿐이지 사람이 겪을 법한 일이었고, 한 고비 지날 때마다 어지간한 일에는 호들갑을 떨지 않는 담대한 사람이 되어갔다.


전에 보이지 않던 다른 사람의 아픔이 헤아려지니 어른이 된 게 분명하다.


가시가 있는건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요, 내 안에  있는 수분은 나를 견디게 함이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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