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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Dec 12. 2019

온갖 불운이 나만 비껴 가게 하는 법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억울할 땐.

딸이 전화를 잘 안 하다가 연애에 문제가 생기면 밤낮으로 전화를 해댄다. 어느 날은 딸이 환승 이별을 당했다고 난리가 났다. 환승 이별이라 함은 사귀던 사람이 더 맘에 드는 사람이 나타나 마치 환승을 하듯 연인을 갈아타는 것을 일컫는다.


처음에는 위로를 좀 해 주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길래 안 받았다. 난리가 서는 폭풍 문자가 왔다. "엄마, 빨리 전화받아. 엄마마저 안 받아 주면 나는 전 남친한테 '자? 뭐해?' 이런 문자를 한단 말야" 했다.


나는 전화를 받아서 냉정하게 설명을 해 줬다.


"자, 들어봐. 세상에 바람피는 사람, 양다리인 사람, 환승하는 사람이 흔해 빠졌지? 그럼 그 흔한 일이 나에게는 절대 안 일어난다고 믿는 게 상식적이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게 상식적이야?"


"엄마는 이렇게 팩폭을 해야 돼? 할 말이 없네."


사고 이혼, 병이 생기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신을 원망하는 맘이 생길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나는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힘든 일이 한꺼번에 몰려올까 억울했다. 남편의 외도, 이혼, 엄마의 죽음을 겪으면서 정말 그랬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지? 하면서 억울해하다가, 그럼 누구에게 생기면 합당하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힘든 일이 생기면 안 되고 남에게는 생길만하다고 여기는 게 더 잔인하다 싶었다. 내가 이런 일을 겪을 사람이 아니라는 교만과, 어려움을 피하려는 두려움이 나를 사이비에 빠지게 했다는 반성을 많이 했다.


향 동네에  귀향을 한 언니가 한 분 있다. 그 언니의 남편은 언니가 30대 후반일 때 암 선고를 받았다고 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일 때, 그 언니의 남편이 암 선고를 받아서 고3일 때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언니의 아들은 아빠는 아픈 사람,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라는 기억만을 가지게 되었단다.


40도 되지 않아 남편은 암환자가 되었고, 남편 병간호에 아이 양육을 하느라 정신없이 십 년을 보냈다고 했다. 남편을 보내고 다시 10년이 지나고 보니, 친구들의 남편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을 하더란다. 그 언니가 30대 때 남편이 암 선고를 받으니 주변에서 불쌍하다, 딱해서 어쩌냐고, 그렇게 위로를 했단다.


세월이 흘러 50이 넘고 60이 되고 보니 하나 둘 그 '불행'들을 겪더라는 것이다. 같은 일을 나중에 겪은 친구들은 충격을 훨씬 크게 받고 후유증도 심하게 겪는 걸 보았다고 했다. 동네 언니는 조금 일찍 겪었으니 젊은 나이에 준비를 할 수 있었고, 나이가 들수록 강한 사람이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나는 그 당시 이혼을 한 지 6~7년쯤 지났고 30대 후반이 되었을 때였다. 아이들이 한참 사춘기를 지나며 나를 힘들게 했고, 엄마는 7년 누워 계시다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어서였다. 세상에 나 혼자 온갖 불행은 다 뒤집어쓰고 사는 것 같던 시절이었다. 그 언니의 말은 나에게 참 위안이 되었다.


나는 내가 죄가 많아 이렇게 힘든 줄 알았는데,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것이다. 지나고 나면 일찍 예방 주사를 맞았으니 더 힘든 일도 잘 헤쳐나가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삶이 주는 협박을 겁먹지 않고 맞서서 싸울 용기가 생겼다.


아이들을 아빠에게 보내고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간 건 간 키우기 위해서였다. 6개월쯤 지났을 때 내 간이 얼마나 커졌나 테스트를 해 보고 싶었다. 밴쿠버에는 유명한 출렁다리와 번지점프하는 곳이 있다. 친구들과 서스펜션 브리지로 갔다.


3층  베란다에서도 빨래를 널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똥꼬가 간질간질한 고소 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출렁다리가 무척 힘이 들었다. 다리를 후들거리며 아래는 못 보고 하늘만 보며 출렁다리를 건넜다. 간이 제법 커 진 것이다. 다음은 번지 점프였다.


번지점프를 하러 가서 보니, 사고가 나도 본인 책임이라는 서류에 사인을 해야 했고 당시 비용은 13만 원이었다. 바로 현자 타임 모드.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 13만 원을 내서 간이 커진 걸 확인해야 할까? 저거 통과하면 나는 간이 더 커져서 어려움을 잘 이겨 낼까?


결론은, 통과했다 치고 그 담대함만 가지자. 13만 원 안 들이고 간만 키우면 난 더 대단한 사람이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 먹으니 굳이 번지점프를 할 이유가 없었다. 각종 세금고지서가 제일 무서웠던 아줌마번지점프 비용이, 고공에서 뛰어내리는 두려움보다 크게 느껴졌다. 마음 하나 꿀꺽 먹으면 되는 걸.


세상을 살면서 대학을 떨어지는 일, 연인과 헤어지는 일, 취업시험에 떨어지는 일, 이혼을 하는 일, 사고가 나는 일... 무수히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 일들이 나만 비껴가게  만드는 비방이 하나 있긴 있다.


1.남이 불쌍하게 볼거라는 시선을 싹 걷어 낼것(이것만 해도 고통의 반이 준다)

2.불운을 불운이라 여기지 않는 것.

 

협박은 내가 두렵게 여겨야 협박이 된다. 당하는 사람이 겁먹지 않으면 협박한 사람을 머쓱하게 만든다. 불운을 살아가다 겪는 백신쯤으로 여겨야지 삶이 주는 협박으로 여겨선 안된다. 협박을 두려워하는 순간 계속 삥을 뜯기게 되는 것이다. 교회에 헌금을 지나치게 바치거나, 점쟁이에게 돈을 바치는 건, 어떻게든 수월하게 파도를 넘어 보려고 부적을 사는 행동과 같다. 말하자면 내 스스로 삥을 뜯기는 것이다.


환경에서 오는 바뀌지 않는 어려움도 있고, 노력으로 해결 안 되는 난관도 있다. 큰 파도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고, 파도를 넘을 힘을 받고 다시 새로운 파도를 맞이하다 보면 내가 기특하고 이뻐 보이는 날이 온다. 우리 겁먹지 말자. 지구 상 사람들이 겪었던 일이고 앞으로도 다 겪을 일이다.


때 되면 알아서 피는 꽃처럼 , 우리는 우리 색으로 만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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