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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Dec 13. 2019

재결합, 전남편에게 대차게 거절당함

고구마 멕이다의 원조는 내 전남편

하루 마무리는 82쿡이라는 커뮤니티 글을 후루룩 읽으며 한다. 82에 올라오는, 답도 없고 공감도 안 되는 사연에는 어김없이 '고구마' 멕이지 말라는 댓글이 주르르 달린다. '고구마를 먹인다', '고구마 사연'이란 표현은 최근 6~7년 사이에 쓰이기 시작한 것 같다.


그 표현의 원조는  전남편이 10여 년 전에 나에게 했던 말이다. 나는 처음 인터넷 글에서 '고구마'사연이라는 표현을 보고 빵 터졌다. 전남편의 말이 생각나서.


고구마를 사다가 구워  먹을 때마다 인간이 생각 나는 걸 보면 인연이 질기기도 하다. 전 남편이 한 말을 친구들에게 해줬더니,  친구들도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내 전남편이 오버랩된다고 들었다.


연인과 헤어지면 메모리얼 기간이 필요한데 어떤 이는 함께한 기간만큼 지나야 한다고 하고, 그건 너무 기니 최소한 함께한 기간의 절반은 지나야 새살이 돋는다고 하는 이도 있다. 내가 겪어보니 적어도 함께 산 기간만큼 지나야 어느 정도 그 결혼 터널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같이 산 게 7년이고, 이혼 한 지 7년쯤 지나니 전남편에 대한 분노가 희미해졌다. 약간은 용서가 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고, 아이들에게 한집에서 엄마, 아빠의 상호 보완적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겠다는 맘도 들어서였다. 엄마랑 사는 딸은 아빠를 그리워하고 아빠와 사는 아들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생활이었으니 말이다.


주말이나 방학에 엄마 아빠와 이쪽저쪽에서 보내는 생활은 사춘기가 접어드니 아이들을 어수선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거짓말의 구실이 되었다. 양쪽에서 용돈을 받아 화장품을 사거나, 아빠와 어디 가기로 했다 하고 다른 곳에서 노는 일이 생긴 것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딸아이 간식을 준비해 놓고, 날마다 일하러 가는 내 상황이 고단 했을 수도 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방과 후 영어 수업과 방문 영어 수업을 했었다. 내 아이는 집에 혼자 놔두고 남의 집 아이 달래서 공부를 시키고 있었다. 자기애를 얼르고 달래서 좋은 성적을 받게 해 달라는 엄마들을 상담하며, 나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나도 내 아이 간식을 챙겨 준 후 학원에 태워주고, 끝나면 데려 와서 시험 준비도 같이 해 주는 엄마이고 싶었다. 돈 벌어 오는 남편을 학생이라 생각하고, 학생을 우쭈쭈 해 주며 공부시키듯이 남편을 돈 벌어 오게 하면 될 것 같았다. 시어머니를, 자기애만 1등 하게 특별히 신경 써 달라는 학부모로 생각하면 어머니 상담보다 시어머니 관리가 쉬울 것 같았다. 어차피 돈 벌어 아이를 키우자고 하는 일인데 못 할 것도 없겠다 싶었다.


큰 맘먹고 전남편에게 재결합을 제안했다. 나랑 살던 딸이 중1, 아빠랑 살 던 아들이 6학년 때였다. 나는 전 남편이 대뜸 오케이를 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해서였다.  전남편이 내게 하던 비난이 내가 모성애가 없고 내 생각만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이 번에는 진짜 한국의 엄마들처럼 나는 죽이고 엄마 역할만 보자는 각오였다.


덥석 받을 줄 알았던 제안을, 전남편은 1주일 생각을 해 보겠다는 것이다. 허걱, 일주일이나 뭘 생각해? 네가 그럴 입장이야? 내가 이만하면 살신성인하는 거 아직도 몰라?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만나자고 했다.

"내가 당신 말을 듣고 일주일간 진지하게 고민을 해 봤어. 근데 당신하고 다시 살 생각을 하니 고구마 먹다 멕힌거 같더라."

띠로리~ 나는 보기 좋게 까였다.


나중에 아들에게 들으니 전남편 일주일간 굉장히 들떠 있었단다. 아들에게, 커튼 바꿔야 하지 않겠냐? 침대를 어디로 놓을까? 벽지는 어떠냐? 하며 연신 엄마가 좋아하겠냐고 물었다고 한다. 아들은 아빠에게 대뜸 물었다고 한다.

"아빠 왜 그래? 엄마 좋아해?"

"아니, 좋아하는 게 아니라, 만약에 엄마가 오면 말이야.." 하며 얼버무리더란다.


전남편이 무슨 맘으로 고구마 먹다 맥힌 것 같았다 했는지 나는 안다. 나의 상황이 예전의 자기 아래쯤 사람이 아닌 것이었다. 이혼 후 나는 계속 공부와 운동, 각종 동을 했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 활동으로나 좀 간지가 났던 게다. 나의 제안에 거절을 해서 처음엔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나중엔 참 고맙고 다행스러웠다.


내가 이기심에 더 못 참은 건 아닌가 하는 미련을 가차 없이 버릴 수 있었고,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완전히 벗었다. 최선을 다했다는 안도감이 생겼고 내가 먼저 제안해서 거절을 당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에 현 남편을 만났으니, 여러 면에서 전남편에게 재결합을 제안하고 대차게 까인 사건은 내 인생에 큰 짐을 덜어 주었다.


다시 합쳐서 살았으면, 전남편은 자기가 승리를 한 냥 기고만장해서 더 심한  조선시대 가장이 되었을 것이다. 나야말로 맨날 고구마 먹다 맥힌 듯이 살다가, 암이나 정신병이 걸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82쿡에 '재결합해서 합쳤는데 남편이 예전보다 더 고약해졌어요.' 하는 고구마 사연이나 올렸지 싶다.


지금에 와서 아이들과 그때 얘길 하면 안 합치길 정말 다행이라고 한다. 엄마는 아빠랑 살기에는 너무 멋지다고 해주니 고맙다. 이제 '고구마' 발음을 못해 '모무마'라 부르던 두 꼬맹이가 다 커서, 시집간 엄마 안부를 물어봐 주니 참으로 감사한 날들이다.




하마터면 고구마 멕이는 사연을 쓰며 살 뻔했네.


https://brunch.co.kr/@red7h2k/1

https://brunch.co.kr/@red7h2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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