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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May 28. 2020

미숙이와 성숙이

나를 성숙이로 키워준 미숙이들을 위해

무슨 일을 선택하든지 더 나으려고 하지 더 안 좋아지려고 선택을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교를 선택할 때, 직장을 선택 할 때, 배우자를 고를 때도 내가 가진 선택지 내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쪽을 선택해 간다.


결혼을 하고 맘 고생을 한창 할 때 생각했다.

이 때가 지나면 이 때를 그리워할 날도 오겠지. 결혼 전에 더 행복하려고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한 지금 결혼전이 그립네.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가 있으면 더 행복할 줄 알았는데 아이가 없는 시절이 그립네. 그럼 지금 이 불행한 결혼을 지키려 행복을 세뇌시키는 지금을 그리워할 그때는 어떤 상태일까? 이 때를 그리워할 그때는 지금보다 행복할까? 더 좋아지려고 선택했는데 왜 맨날 더 힘들어 졌지?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 인생이 참 길게도 느껴졌었다. 잘못 된 선택으로 현재가 불행하다고 느꼈고 그 이전을 그리워하는 '회한병'에 빠져 살았다.


소주를 숨겨 놓고 잠이 오지 않을 때는 반 병 정도 먹고 잔 적도 있었다. 소주 반 병 만큼의 긍정과 낙관을 주었을 뿐, 다음날의 두통만큼 현실은 아프기만 했다. 아이들 삼촌이 가끔 놀러를 오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곤 했다. 담배를 두고 간 적이 있어서 몇 번 피워보았다. 행여 위안이 될까 싶어서. 하지만 급작스런 설사와 어지러움을 주었지 별 효과는 없었다. 담배를 피우지 않던 전남편이 퇴근을 해서, 집안에 왠 담배 냄새냐고 잔소리를 했다. 자기 동생이 다녀갔다고 하면 몇 마디 궁시렁거리다 말았다.


소주도 담배도 나에겐 신체적 고통만 줄 뿐이었다. 당시 나는 온갖 신체적 증세를 달고 살았다. 귀에서 소리가 들리는 증세, 눈가에서 벌레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증세, 거미줄이 얼굴에 감기는 것 같은 증세들이었다. 이런 증세들만으로도 내가 서서히 죽어가는 느낌인데 굳이 술이나 담배까지 해서 빨리 죽이고 싶지 않았다.


죽을 힘을 다해 이혼을 한 후로는 모든 신경증적 증세는 모두 없어졌다. 이혼후의 삶이 수월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결혼생활이 그립지 않았다. 결혼 생활 중, 가끔은 좋은 날도 있었건만 그립기는커녕 좋았던 날들도 거짓같이 느껴졌다. 진짜로 행복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행복하다고 교육시킨 그림 안에 나를 대입시킨 것 같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외식을 하는 행복한 가족 사진, 아이들과 쇼핑을 하는 평범한 주말 사진들에 나를 집어 넣었다. 나만 그 사진 안에 합성으로 넣어져서 딴 곳을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이혼을 한 후로는 정신 없이 일을 했다. 일을 안 할 수 없어서 했고, 하다 보니 더 잘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돈은 벌어졌다. 그럼에도 인생에 실패했다는 패배감에 불안하고 주눅이 들었다. 그래서 들어간 곳이 교회이다. 동생으로 인해 간 그 곳은 정상적이지 않은 사이비교회였다. 교주가 심지어 성폭행으로 해외 도피를 하던 시기에 내가 들어 갔다. 그러니 나는 교주의 혐의에 대해 모르던 것도 아니었다. 성폭행으로 해외에서 도망을 다니던 교주의 메시지를 통해 나는 무슨 희망을 찾으려 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고 한심하다.


내가 가졌던 정신승리의 프로세스를 생각해보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 이혼을 하려는 사람에게 겁 먹지 말라고 용기를 주고 싶었던 맘이 절반이다. 또 하나는, 이혼 후에 사이비에 빠졌던 흑역사에 대한 수치심과 반성이 절반이다. 이혼후의 불안함에 교회나 다른 요상한 단체에 들어가는 사례가 생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사이비에 빠졌다는 사실이 너무 수치스러워서 누구에게 말도 못했다. 탈 사이비를 한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에서 우리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는 것이 다였다. 안티 J*S카페에 몇 번 글을 쓴 후 협박 문자를 받았다. 그 문자가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했다.


사이비 교회는 보통 교회보다 가혹한 규칙을 준다. 가령 새벽기도, 철야기도, 긴 설교시간, 끊임없는 교리공부, 엄격한 이성교제 제한 등이다. 이런 가혹한 규칙을 지키면서 도덕적 우월감을 갖는다. 이혼을 한 패배감을 도덕적 우월감으로 정신승리를 한다. 잠을 줄이고, 세상에서 좋아하는 여행이나 오락 문화를 못하면서 정신을 교회에만 집중하게 한다. 그렇게 살면 머지않아 보상을 받을 것처럼 희망고문을 했다. 몇 년이 지나도 삶의 질은 점점 낮아지기만 하니, 교리는 살짝 바뀌었다. 죽어서 천국 황금성을 간다고, 육의 세계는 다 부질 없다고 가르쳤다.


나는 이혼을 한 불안과 결핍이 있었다. 시험에 떨어졌다거나 가정의 불화가 있는 경우, 미래에 대해 불안한 수험생이나 취준생도 비슷한 생각의 절차를 가진다. 주변의 모습에 기가 죽어 있다가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나를 ‘특별히’ 사랑해서 그 단체로 불렀다고 가르치는 말을 듣는다. 공부를 잘하는 것, 시험에 합격하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 해외 여행을 가서 멋진 사진들을 공개하는 것들은 누가 봐도 부러워하는 일이다. 이런 일들이 자신에게는 왜 이렇게 멀리 있을까를 원망하며 지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사이비 교회에서 그런 일들은 무의미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신이 특별히 사랑해서 환란을 주고 환란을 통해 그 교리를 만나게 해 주었다고 한다.


이런 말은 나에게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이고 체념을 하게 해 준다. 한 술 더 떠서 이 어려운 일을 통해서 신의 부름을 받았으니, 주어진 상황이 오히려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실제로 돈을 벌거나 취업을 하는 것은 힘이 든다. 내 마음 하나를 바꿔서 그런 것들은 세속적인 것이고, 나는 더 거룩한 가치를 목적으로 산다고 믿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하다. 증명할 수도 없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곤 없다. 남들의 인정이 없어도 내 혼자 정리승리만 하면 슬픔을 덜 슬프게 받아 들이는 간단한 방법인 것이다.


이런 생각의 절차가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다. 적어도 그 당시에는 덜 좌절한다. 가지고 있던 열등감과 소심함을 잠깐이라도 약에 취해 벗어나는 경험을 한다. 주변의 부러운 사람을 부러워하느라 괴로웠던 마음도 덜해진다. 하지만 그런 말로 약해진 마음을 홀려 헌금을 가져가고 저임금 봉사를 강요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물질이 중요치 않다고 하던 사람이 본인은 좋은 집과 차, 명품을 누린다. 전세금 대출까지 받아 교회 건축 헌금으로 내도록 강요한다. 교회는 대리석으로 삐까번쩍한데 내 집은 겨울에도 보일러 한 번 제대로 못 틀고 산다. 이건 뭐가 많이 잘 못 된 것이다.


죽어서 천국에 있는 보석이 가득한 집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이 무슨 희망이 될까 싶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은 믿는다. 진짜 믿어져서라기 보다는 엄청난 지옥 협박 때문이다. 지옥을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세뇌를 하면 지옥 공포에 현실세계에 살기가 힘들어 진다. 수 만가지 죄를 들어 지옥에 갈 것이라 저주를 하니 그 말을 반복해서 듣는 사람은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다. 공포 마케팅은 아주 잘 먹혔다.


그 교회에는 젊은 여자 목사들이 많았다. 나를 전도한 동생도 그 교회 목사였다. 내 여동생과 친한 몇 명이 암이 생겼다. 동생은 난소암 이었고 몇 몇은 자궁암 이었다. 암이 걸린 것도 하나님이 너무 사랑해서 세상으로 나가지 말라고 잡아 준 것이라고 간증하는 것을 들었다. 정신승리도 저 정도면 병이라고 본다.  


사람이 살면서 힘든 일이 고비마다 온다. 그 일들은 살아가는 과정이고 나 혼자만 겪는 일도 아니다. 수월하게 넘어가는 방법은 없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겨내느냐가 팔자이다. 어려움을 겪는 건 비슷한데 오는 난관을 어떻게 대하고 다루는 지는 천지 차이이다. 큰 어려움을 이기면 더 많이 자라고 작은 어려움을 이기면 조금 성숙해지는 것이다. 그걸 모르고, 어떻게 편법으로 넘어가 보려 종교에 빠졌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이혼이 뭐라고 그렇게 겁을 먹었으며 그렇게 주눅들었을까 싶다. 누군가 지금 어려운 일을 겪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처음으로 겪는 일이니 그 때의 나만큼 두려울지도 모른다. 다정하게 다가오는 사이비 유혹에 빠질까 걱정이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보람과 의미를 찾고 싶어 한다. 보통의 사람과 비슷하고 싶은 욕구도 있고 특별하다는 우월감을 느끼고 싶기도 한다. 그런 마음을 잘 이용해서 영업을 하는 것이 사이비이다. 보통 사람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불안을 이용해서 그 단체에 발을 들이게 한다. 기도를 하면 다 들어 준다고 하거나,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고 간구를 해 보라는 말로 시작한다. 우월한 가치를 목표로 산다는 허영심을 이용해 헌금을 갈취한다. 부디 속지 않기를 바란다.


딸에게 종교 강요를 했던 나를 생각하면 ‘내가 미쳤었구나’ 하는 자책이 절로 나온다. 딸이 사춘기 때 했던 만행을 꺼내곤 한다. 그러면 딸은 나에게 사이비 공격을 해 온다. 우린 비겼다며 흑역사 얘기는 하지 말자고 타협을 한다. 웃으며 추억 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때’를 그리워하지 않는 ‘이 때’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지금이 감사하니 지금을 알뜰히 누린다. 훗날 이 때를 그리워하겠지만 그 때는 그때의 행복이 있을것이라 믿는다.


두려움과 어리석음에 선택했던 ‘미숙이’들이 모여 조금씩 ‘성숙’이를 만들어 왔다. 미숙이 때의 어리석음이 부끄럽지만 어쩌랴, 그 미숙이들이 나를 키워 준 것을. 오늘의 미숙이는 내일의 성숙이를 만드니 너무 구박하지 말자.



가을에 씨를 뿌려 겨울을 이기고 초여름에  익어 가는 보리 한단. 식탁에 꽂아 두고 오며 가며  배운다. 겨울동안 멈췄다가  봄을 온몸으로 키워 내는 보리의 생명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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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runch.co.kr/@red7h2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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