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동안 3번의 부고
1. 수요일, 친구 아버지의 부고를 접했다.
오랜 기간 투병을 하셨고, 그 기간 동안 가족 모두가 병마와 싸웠다. 몇 번의 고비를 지나며 준비했던 헤어짐은 ‘준비’가 무색할 만큼 힘들어 보였다. 원치 않은 상황 속에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친구를 보며, 슬픔보다 더한 아픔을 목격했다.
2. 토요일, 동료의 부고를 접했다.
4월에 떠난 동료의 부고를 12월에서야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생이랑 무엇인지 죽음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봤는데, 도통 모르겠다. 그래서 동료와의 첫 만남을 떠올려봤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저 나지막하고 차분한 목소리, 막 첫 전시를 끝낸 꼬마작가인 나에게 주던 응원의 말과 미소만 선명해진다.
집에 돌아와 책장에 꽂힌 나의 첫 개인전 방명록을 꺼내봤다. 두 번째 장에 그녀의 이름이 있더라. 고맙다. 사실 마주한 횟수로 보자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지만, SNS라도 가끔 오래 소식 주고받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닿지 못할 글만 쓰게 됐다. 25살 아무것도 모르던 예비작가인 나에게 해준 따듯한 응원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겨울처럼 뽀얀 당신, 그곳에선 아프지 말아요.
3. 수요일. 나의 10대 한성, 20대 영수, 30대 동훈
단체카톡방이 울렸다. 가짜 뉴스이길 바랐지만, 그러진 못했다. 근 두 달 동안 그에 관한 기사는 2700여 건이라고 한다. 경찰조사는 시시각각 생중계되고, 사생활녹취까지 알 권리 운운하며 퍼 나르는 인간들. 그를 옹호하는 기사들이 이제야 나오지만, 기자이름을 타고 본 이전의 기사들은 다른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그에 대해 악의적이고 자극적이다.
좋아하는 배우였다. 미술학원을 끝마치고 집 가는 버스에 dmb로 챙겨본 <커피프린스 1호점>과 대학시절 기숙사에서 본 <달콤한 나의 도시>, 30대 늦게 본 <나의 아저씨>까지. 나는 그의 필모 중 18편의 영화, 9편의 드라마를 봤더라.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영수는 은수에게 세로 쓰기가 된 책을 읽는 법을 알려준다. 그리고 운전이 서툰 은수에게 왼쪽 발 밑에 바퀴가 있다 생각하고~ 라 조언한다. 난 그때부터 운전을 하면 그 말이 생각이 나고, 오래된 책에서 세로 쓰기를 만나면 그 장면이 생각난다.
4. ‘인생은 금물’
‘언젠가 우리 별이 되어 사라지겠죠’로 시작해
‘어느 누군가를 향해 별이 되어주려 떠나게 될 걸’로 끝나는 노래.
부고를 들으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 멀리 있어 보이는 소멸은 너무나 가까이 있고, 아무리 자주 마주하여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는 건 순서 있어도 가는 건 순서 없다지만 그래도 신이 있다면 순서를 지켜 데려가면 좋겠다.
p.s 모두 평안에 이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