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알아가는 시간
2022년 퇴사 후, 14개월이 흘렀다. 그땐 몰랐지. 나는 백수라이프가 잘 맞는 사람이라는 걸.
퇴사 일주일 만에 삶의 지루함에 못 이겨 ‘난 역시 바쁘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가 봐’라 말했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요 이렇게나 적성에 맞다니!
당시엔 몇 개월은 기필코 일 하지 않고 쉬리라 마음먹었었다. 대학입학부터 방학, 학기마다 아르바이트, 졸업 후엔 몰아치는 전시에 쉬지 못했고 숨 쉬기 위해 들어간 대학원에서 시작한 인턴은 논문보다 힘겨웠다. 그리고 졸업도 전에 취직을 하게 돼 일과 동시에 졸업전시, 석사논문을 병행했다. 게다가 맡은 직무는 신사업이었다. (일에 대해선 특정될 수 있으니 거두절미하고!) 회사생활은 바쁘고 피곤했지만 적성에도 잘 맞고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사업이 자리 잡고 힘든 것들이 다 끝날 때쯤 퇴사를 결심했다.
우습게 들리겠지만, 쉬고 싶다거나,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싶다거나, 꿈을 펼쳐보고 싶다거나 한 이유는 아니었다. 문득 ‘나를 알아봐야겠다!’라는 생각에 백수생활을 시작했다.
‘불안한 마음 해소용’으로 이력서를 내기도 하고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뭐랄까… 취준생의 바이브는 장착했달까.
여름이 다가올 때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 떨림이었다. 학창 시절 미술을 시작하고 원하는 대학의 홈페이지 속 실기실을 보며 느꼈던 두근거림. ‘아! 이런 일이라면 박봉이어도 좋겠다!’라는 꿈 꾸는 사회초년생의 마음가짐으로 4개월을 준비했다. ’백수 탈출‘이라는 제목을 보고 ’얘 원하던 곳에 합격한 그런 해피엔딩이구나~‘라고 생각하신다면 실망을 드리게 되었네요. 그렇다. 난 무려 두 번의 두드림과 두 번의 탈락을 맛보았다. 솔직히 아직 좀 쓰다. 일주일은 시련당한 사람처럼 입맛이 없어 자동으로 다이어트를 했더랬지. 나의 체지방감소에 도움 준 인사팀 땡큐.
그래도 나에겐 무더운 여름부터 가을까지 밤을 새우며 준비한 포트폴리오들이 남았다. 그리고 그 시간을 떠올리면 (오글거리지만) 행복했던 내가 기특하게 느껴진다. 도전해 봤기에 나의 부족함을 인지하고, 내가 무슨 일을 할 때 행복하고 어떤 상황에서 불행한지 배웠다. 이 시기 전에는 ’ 자신을 설명해 보세요~‘라고 하면 고작 MBTI나 학교 직업 취미에서 맴돌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꽤나 단단하고 디테일한 나를 들여다보며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이쯤에서 ‘얘 그럼 아직 백수인 거냐?’라 생각하신 분들, 아닙니다. 저 이제 밥벌이합니다.
긴 자기 탐구가 끝나고 내린 결론은 ‘원래 잘하던 일 하자! 그리고 이제 제대로 커리어를 쌓자!‘ 그렇게 두 군데 시험과 면접을 봤고 둘 다 합격 후 별 고민 없이 새 보금자리를 선택했다. (선택에 왜 고민이 없었는지는 다음에)
조금은 민망했다. 줄곧 이 도시와 이 분야를 떠날 거라고 노래를 부르다 못해 자진모리 타령을 불렀던 터라 주변인들에게 알리긴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 소식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 ‘너 그럴 줄 알았어’였다. 에? 그럼 미리 말해주지 이 사람들아!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이 결과를 말하는 게 아니라 과정을 뜻한다고 대답하더라. 내가 이 일에 잘 맞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내면의 동기가 약했었다고, 그걸 찾고 돌아올 거라 생각했다고.
자 각설하고, 난 14개월 동안 약간은 불안했지만 늘 입에 ‘요즘 너~~~~~무 행복해’를 달고 살았다. 이제 이런 자유가 4일 남았다. 아마 다음 달부턴 ‘출근 너~~~~~무 하기 싫다’를 달고 살겠지. 그래도 14개월의 행복했던 기억을 연료 삼아 출근하리라! 나를 알아갈 수 있던 시간들 땡큐!
p.s. 대학원까지 졸업한 다 큰 자식이 긴 시간 백수로 지내는 상황에서도 단 한 번도 재촉하지 않고, 심심하면 집에 오라는 말 해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다. 그리고 우리 부모님께 ‘쟨 지가 알아서 사니깐 걱정하덜 덜 마’라고 말해준 점쟁이 아주머니도 감사해요, 세 사람의 정신건강을 지켜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