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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혜성 Nov 14. 2023

인스타그램엔 ‘노닐’만 하고 ‘살’만 한 곳이 넘치네요

21세기의 '인스타그램'과 11세기 곽희의 '임천고치'

1. 대표 SNS인 인스타그램은 2023년 8월 기준 약 20억 명이 사용 중이다. 물론 몇 년 사이에 급증한 유튜브에 밀렸지만, (유튜브사용자는 25억 명, 페이스북은 30억 명) 인스타그램 계정이 없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본’ 계정으로 부족해 ‘부’ 계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다수다.

21세기 인스타그램 피드는 상향평준화된 삶이 넘쳐난다. 산 좋고 물 좋은 곳, 오성급 호텔, 알프스산맥이 보이는 숙소, 화려한 디즈니랜드. 나는 브루마블로도 얻지 못한 도시를 다들 쉽게 누린다.(#갑자기 떠난여행) 각 피드의 평균은 욕망의 상향선이다. '놀고 싶은 곳', '갖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의 목업이다.


2. 11세기 중국 북송시대의 이론가이자 화가인 곽희는 “언덕과 전원에서 심성을 수양하는 것은 늘 처하고자 하는 것이며, 샘물과 바위에서 노래 부르며 노니는 것은 늘 즐거워하는 것이며, … 시끄러운 티끌세상의 굴레와 속박은 사람의 마음이 늘 싫어하는 것이며, 안개와 노을 속의 신선과 성인의 모습은 마음에 늘 그리워하면서도 볼 수 없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는 곽희의 아들 곽사가 아버지의 가르침을 글로 옮긴『임천고치』에 담긴 말이다.(『임천고치』는 산수화 이론서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좋은 곳에서 놀고 싶어 하는 건 똑같나 보다.

곽희는 산수(풍경)의 취사선택에서 가볼 만하고 구경할만한 곳, 즉 유희를 위한 공간보다 노닐만하고 살만한 곳을 그릴 때 더 얻는 것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노닐만하고 살 만한 공간은 몇 되지 않으니, 그것을 얻으려면 그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풍경이 풍족하다. 과장을 조금 보태면 이 모든 모습을 10분 안에 인스타그램 속에서 다 찾을 수 있다. 21세기엔 해시태그 몇 번으로 원하는 풍경을 찾는 건 일도 아니다.


3. 11세기, 그리고 조선 후기까지도 인간은 자신이 속한 풍경, 머물고 싶은 자연을 그림으로 그려 걸어뒀다. 15세기 관료들의 한강뱃놀이를 그린 <독서당계회도>는 얼마 전 보물로 지정되었고, 18세기 겸재 정선은 그의 벗과 함께한 임진강 뱃놀이를 그림(<연강임술첩>)으로 그려 나눠 가졌다. 연강임술첩은 여행을 함께한 관찰사 홍경보의 글의 덧붙여져 있는데 언제, 어디서, 누구누구와 무엇을 했다는 글은 우리가 장소를 태그하고 친구를 태그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모르긴 몰라도 겸재 정선의 인스타그램에 <연강임술첩> #관찰사 홍경보 #현감신유한 #임술년뱃놀이 업로드되었다면 좋아요가 몇백만은 되었을 테다.

우화등선 (연강임술첩 중) _겸재정선

4. 각 시대의 공기는 다르게 존재한다. “임천에 뜻을 두고 … 묘수를 얻어서 생생하게 그려낸다면, 방을 나서지 않고도 앉을 채로 시내와 골짜기를 다 접할 수 있다 … 이것이 곧 사람들이 산수를 그리는 일을 귀하게 여기는 본래의 뜻이다.” 나의 SNS 속의 풍경들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쉽게 찍고, 쉽게 잘려나가는 요즘의 이미지는 곽희가 말한 가세와 형질을 취하고 있진 않다. 그저 즉흥성이 반 이상이고 여러 장의 사진들 중에 가장 잘 나온 사진을 옮겨 이리저리 보정하고 업로드한다. '인증'의 문화 속 인스타그램은 알고리즘만 잘 탄다면 '방을 나서지 않고도 앉은 채로 전 세계를 다 접할 수 있다'


11세기에 살았던 곽희의 주장들이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에서 보이는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사각형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 가세와 형질, 뜻이 보이지 않더라도 그 시대와는 다른 이 시대에 어울리는 뜻은 존재한다. 오늘도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한 채 『임천고치』의 한 구절을 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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