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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새벽 비행기를 탄다는 건

by 레드카피

정말 오랜만에 여행을 가게 되었어요. 베트남 무이네로 말이죠. 한동안 너무도 추운 나날들이었는데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땀 흘릴 생각 하니 저절로 콧노래가 나와요.


그런데 보통 동남아 여행은 밤비행기를 많이 타잖아요. 하루라도 아끼려고 말이죠. 그런데 아이들을 데리고 비행기 타는 일정을 잡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어요. 아이들 컨디션을 생각해서 정오 가까운 시각을 예약하자니 비행기값이 확 올라가는 데다 베트남에 도착해 깜깜한 밤하늘만 보게 되고. 밤비행기나 새벽비행기를 타자니 요 땅콩만한 녀석들을 흔들어 깨워 달래 가며 공항까지 갈 생각에 겁이 나고. 하여간 예약 전에 엄청나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침 7시 30분 비행기에 오르려면 새벽 4시에는 집에서 출발해야 해요. 아이들을 아마 공항에 도착해서야 간신히 제정신을 차리게 될 거고요. 새벽공기를 가르는 모든 긴장과 기동력은 결국 부모의 몫이라는 결론을 내리자 비행기 티켓 끊기도 전에 겁부터 나긴 했어요.

그리고 그 마음은 곧 새벽비행기를 지켜라 이런 타이틀의 미션을 수행하는 비장한 마음으로 변했죠. 혼자, 또는 어른끼리 여행을 갈 때보다 몇 배는 더 철저히 짐을 챙기고 잊어버린 건 없나 또 들여다보고...


하지만 전 믿기로 했습니다. 제 아이들의 생존력(?)과 책임감을 말이에요. 엄마, 아빠가 가야 한다고 흔들어 깨우는데 안 가고 배기겠어요? 저네들도 비행기 탄다고 신나 있으니 나름의 긴장을 하고 있을 거란 말이죠.

그래, 전쟁통이라도 아이들이라도 지들 몫을 다했다고 했어! 아제 6시간 후면 아이들을 깨워야 해요. 졸린 눈을 부비면서 아이 신난다 할 표정을 상상하니 선뜻 행복한 기분이 듭니다. 긴장감 따위는 발로 멀리 차버렸어요.


아이들과 타는 새벽 비행기.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굉장히 낭만적이에요. 코를 스치는 차가운 새벽 공기, 출국 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 캐리어를 끄는 소리. 그리고 그 뒤에서 비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엄마. 아직 공항에 도착도 하지 않았는데 너무 웃기네요. 그저 무사히 비행기에 타고 또, 내리길 기도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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