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이어집니다.)
어린 시절 제 눈에 보이는 울 엄마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었어요. 중학교 수학선생님에 교회봉사 많이 하는 집사님. 단 한 번도 빨래와 설거지가 밀린 적 없는 대단한 엄마. 그리고 굉장히 바른생활을 하는 사람.
울 엄마는 원래 그렇게 바른 생활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니 보고 싶은 대로 엄마를 바라봤던 거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엄마는 그저 나와 집을 위해 열심히 사셨던 거였어요. 제가 이 나이가 되어 직접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머릿속에 남아있는 엄마의 말들이 있어요.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
"정원이 있는 예쁜 집을 갖고 싶다. 거기에서 꽃을 많이 키우고 싶어."
"소설을 쓰고 싶다. 책도 내면 더 좋겠지."
"엄마도 네 아빠 만나기 전에 7년 사귄 남자친구 있었어."
등등...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던 엄마의 표정은 항상 두둥실 뜬 소녀 같았어요. 왜 우리 가끔 나이 드신 분을 보고 아직 소녀 같으세요~ 할 때 있잖아요. 왜 그런 표현을 쓰는지 어릴 땐 몰랐는데 이젠 알겠어요. 피부결, 주름 이런 거에 상관없이 얼굴 위에 떠오르는 꿈들은 그 모습을 결코 감추는 법이 없으니까요.
내가 모르는 엄마의 벨 에포크. 지금처럼 술 한잔 마시면 얼굴 빨개지는 게 아니라 2차 가자!라고 외쳤을지 모르는 그때. 10시만 되면 졸려서 푹- 잠들고 새벽같이 일어나는 게 아니라 밤새워 소석책 보고 눈 빨개서 친구 만나러 나가던 그때. 남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이 옷 저 옷 고르고 던졌을 그때.
이제 그 아름다운 낭만의 시절은 울 엄마와 나를 거쳐 내 아이에게로 이르겠죠. 스스로 뭔가를 이루어내었다는 성취감과 도전, 눈물로 뒤범벅될 실패. 그럼에도 다시 시작하는 꿈. 어쩌면 내 아이가 가지게 될 아름다운 그 시절을 곁에서 보게 된다면 나에게도 새로운 벨 에포크가 시작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걸 포기하고 이렇게 빛나는 생명을 키워냈으니 이 또한 새로운 벨 에포크 아니겠어요?
비가 옵니다. 딸아이에게 물었어요.
"비 오는데 차로 데려다줄까?"
"아니. 비 오는 소리 듣는 거 좋아. 우리 걸어가자."
우산을 들고 씩씩하게 뛰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니 이젠 비 오는 날도 정말 사랑스럽네요.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날도 사랑스럽길 기도합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