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울면서 잠들었어요. 밉고 서럽고 서운하다면서요. 누구냐고요? 바로 아빠입니다. 주말에는 같이 놀 거라고 기대했는데 그 기대가 와장창 무너졌거든요.
세 달 전쯤인가, 그날도 아이가 우는 날이었어요. 그러더라고요.
"아빠는 물에 빠져 죽어도 물귀신이 아니라 일귀신이 될 거야!"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마음이 찌릿하니 아팠습니다. 얼마나 마음속에 응어리졌으면 만 7세 아이가 이런 소릴 다 하나 싶었고 말이죠. 사실 그 순간에는 밖에서 고생고생 일하는 남편보다 내 자식이 더 짠하더라고요. 참 엄마 마음이란 게 그래요. 밖에서 일하는 남편도 미워요. 내 딸이 우니까요.
대한민국 어떤 부모가 안 그러겠어요. 내 자식 편하라고 열심히 일하고 주말까지 바쳐가며 일하면서도 욕은 욕대로 먹죠. 하지만 눈물 그렁그렁한 아이 앞에서 딱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요. 그냥 미안해. 미안하다. 할 뿐입니다.
오늘 딸아이는 일기에다 그 울분을 토해내더라고요. 밉다. 서운하다. 섭섭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들을 총동원해서 마음을 표현했죠.
그런데 말이죠. 일기의 결말이 어떻게 났는지 아세요? 아빠에게 선물을 주고 싶대요. 아빠가 미운데 너무 보고 싶어서 선물을 주고 싶대요. 세상에나. 제가 다 눈물이 핑 돌았네요.
전에 유퀴즈에 의사 선생님이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은 매 순간 부모를 용서한다고. 아마 대부분은 모를 거예요. 수많은 날을 용서받고 있다는 걸요.
아이들은 바라보고 있어요. 밖에서 일하다 지쳐 들어와 집에서 쉬는 부모를요. 이제나 저제나 날 봐주고 놀아줄까 하면서요. 5분 쉬고 나면 놀려나? 10분 쉬고 나면 놀려나? 저 손에 들린 핸드폰 끄면 놀려나?
눈이 빨개진 채 잠든 아이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 아이가 우리에게 기대를 거는 이 순간을 좀 더 소중히 해야겠다. 나이가 두 자릿수가 되고 사춘기가 찾아오고 지네들의 그룹을 만들어 부모보다 중요한 순간들이 찾아올 테니까요. 불과 몇 년 남지 않았어요. 아이가 만 7살이니까 글쎼요... 5년? 아니 4년? 그런데 그 시간을 피곤하다고, 바쁘다고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겠더라고요.
일단 집에서 쉬더라도 핸드폰은 보지 않겠다 규칙을 정해볼까 해요. 아이가 하고 싶은 놀이가 끝말잇기라고 하니 몸을 움직여 피곤할 일도 없죠 뭐. 아이가 웃으며 잠들 수 있다면 뭐라도 하는 게 부모 아니겠어요?
일단 오늘은 저도 마음이 핑 돌아서 일기 쓰고 잘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