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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Feb 21. 2024

눈물 젖은 붕어빵

2화

태호는 혀를 내밀어 마른 입술을 적셨다.  손에 든 커피잔이 빙글빙글 돌아갔다.


“무슨 말인데 이렇게 뜸을 들여?”


세 잔 째 라테를 마시는 수연이 말을 꺼냈다. 더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간신히 커피로 때우고 있었다.

 

“.. 별건 아니고...”

“응. 그러니까,... 뭔데?”

“…”


수연은 무슨 드라마 속 정지화면을 보는 것 같았다. 태호의 꾹 다물어진 입이 답답했다.


“무슨 말인데? 그냥 좀 해!”


그만 언성이 높아져 소리를 지른 꼴이 되었다. 그 시점, 누군가를 위한 에스프레소가 진한 크레마를 뽐내며 내려지고 있었다. 그녀의 높은 데시벨은 위이이이 잉 하는 커피 머신 소리에 가려졌다. 수연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이쪽을 쳐다봤다면 창피했을 것 같았다. 다혈질도 아닌데 왜 이럴까, 수치심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실은 약속 잡을 때부터 긴장되었다. 만나자는 이유가 있겠지. 전화나 톡으로 할 수 없는 말. 그러니까 꼭 얼굴 보고 해야 하는 말이 있을 거야. 밥을 먹고 카페까지 오는 내내 수연의 머릿속에는 이 생각이 맴돌았었다. 그가 할 말이 있다고 했을 때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적중하니까. 

 

더 이상 침묵의 긴장감을 견디어 낼 수 없었다. 문제는 인내심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 입 밖으로 꺼낸 말은 되돌릴 수 없다. 그건 감당해야 할 사실이 되니까. 해처가야 할 현실로 돌아올 테니까. 답답함을 감내하는 것이 어쩌면 진실을 아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았다.


“저.. 어… 그러니까….”

“됐어. 지금 와서 해봤자 뭐가 달라지겠어? 뭐 래던 이제와 끊어진 인연 다시 붙일 수 없는 거야.”

 

수연은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왔다. 


최대한 냉정하게 쏘아붙이듯 말하려 애쓴 덕에 이마에는 땀이 송글 송글 맺혀있었다. 차가운 공기에 땀을 식히며 발걸음을 옮겼다. 머릿속은 복잡했다. 왜 그렇게 말했어? 그냥 튀어나갔어. 아니잖아. 무슨 말을 할지 두려웠잖아. 이미 그때 헤어진 걸로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 누더기가 되었는데 뭐가 더 무서울게 남아있는데? 끝난 사이잖아. 아니. 이번에 얼굴 보자고 할 때 기대했었어. 다시 만나자고 하지 않을까? 이런 말 안 할 거라면 왜 보자고 하겠어? 연락조차 안 하겠지. 이런 기대가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잖아? 태호를 몰라서 그래? 갑자기 그런 말 하는 거. 또 당하고 싶지 않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더니, 삼 년 전 일방적인 태호의 이혼 선언은 수연에게는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아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여기가 어디지. 이런 자각이 들 때쯤, 수연의 손바닥이 욱신거렸다. 꼭 쥐어진 주먹이 낸 생채기였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아니었을 거야. 내가 한 말에 후회하지 말자. 이렇게 합리화하며 다짐까지 하느라 두 주먹을 힘 있게 쥐었다. 


길가에는 갈색 낙엽들이 나동그라지고 있었다. 스산한 기운이 들었다. 해도 지고 있었다. 수연이 걷는 걸음마다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졌다. 어두운 발끝에 환한 불빛이 내리쬐자 외로움이 밀려들어왔다. 집에 가면 좀 낫겠지. 마침 주황색 택시가 횡단보도 앞에 섰다. 얼른 뛰어가 차문을 열었다. 한쪽 다리를 넣으면서 뒷좌석에 앉으려는데 누가 낚아채듯 그녀의 백팩을 움켜쥐었다.


“잠깐만!”

태호였다. 땀이 뒤범벅된 그가 뭔가를 내밀었다.

“이거…”


뭐냐고  묻고 싶었지만, 차문이 닫히는 통에 택시는 출발하고 말았다. 꼬깃꼬깃한 봉투는 묵직하니 따뜻했다. 얼마나 꼭 쥐었는지 윗면이 동그랗게 말려있었다. 겨울에 집에 바래다주지 못할 때면 그는 따뜻한 뭔가를 늘 수연의 코트 안에 품어주곤 했다. 어느 날은 군밤이었고, 어떤 날은 캔커피였고, 또 언젠가는 손난로였다. 집까지 가는 추운 길, 그를 대신한 그 온기들이 그녀를 따뜻하게 데려다주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연인을 위한 그의 배려였다. 수연은 그의 마음을 새끼 병아리라도 된 품에 안아 주었다. 태호의 사랑은 그렇게 발이 달려 수연의 집으로 아니 마음으로 갔다.


종이봉투를 열자, 수연의 얼굴에 따뜻한 김이 서렸다. 작은 붕어빵들은 할 말이라도 있는지 서로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피식하니 웃음이 났다. 올망졸망 한 붕어들이 너무 귀여웠다. 우리 집은 붕세권이 아니네 하며 실망했던 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그가 또 귀여웠다. 하여튼 스윗 남이라니까 하면서 붕어빵을 하나 꺼내 물었다. 팥은 슴슴하게 달았고, 빵은 바삭하고 쫄깃했다. 또 하나 물었는데 슈크림이 들어있었다. 크림이 쫀득하고 달달해 빵반죽과 잘 어울렸다. 겨울에는 역시 붕어빵이야!


맛있었다.

분명 맛있는데…

와락 눈물이 났다. 갑자기 쏟아지니 속수무책이었다. 입에 문 붕어빵이 점점 촉촉해졌다.

 

‘나도 이러려고 했던 게 아닌데…..’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던 참을성 없는 제 자신에 화가 났고, 끝내 들을 수 없는 제 두려움에 연민을 느꼈다. 무엇보다도 용기를 내었던 그에게 미안해졌다.


“기사님, 차 좀 돌려주세요”


수연은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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