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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Mar 13. 2024

예기치 못한 방문

5화

지혜였다.


한참을 보고서야 수연은 겨우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검은색 롱패딩에 모자까지 쓴 그녀는 얼굴마저 목도리로 칭칭 감고 있었다. 


수연의 이년 대학 후배인 변지혜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많고 남에게 도움이 주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다.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남에게 관심이 있는 만큼 시시콜콜한 아니 불필요한 정보마저 여기저기 전하고 다녔다. 대학 시절 내내 그녀에게는 가십걸이라는 별호가 따라다녔다. 가끔 장난이 심한 남학생들이나 지혜에게 악감정을 품은 아이들은 가씹걸이라며 뒤담화를 하곤 했다. 대학 때도 아닌 땐 굴뚝에서 연기를 피웠는데 직장생활에서도 그 버릇 개 주지 못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지혜는 회사를 그만두는 형식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다. 대학 졸업한 지 오 년째, 이직했다는 얘기만 대여섯 번 들었다. 최근에 또 회사를 옮겼다. 수연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싫지도 반갑지도 않은 방문이었기에 수연은 얼른 문을 열지 못한 채 현관을 서성이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다. 가디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전화기를 집었을 때였다.


“언니 안에 있네, 얼른 문 열어봐”


지혜의 톤 높은 목소리가 복도를 쩌렁쩌렁 울렸다. 당황한 수연의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다. 열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리는 망설이고 있는데 손이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현관문 가운데 검정 버튼을 눌렀다. 띠리릭. 지혜가 문고리를 잡아당겨 문을 열었다. 수연의 손이 현관문 손잡이에 닫기도 전이였다. 지혜는 수연의 얼굴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현관으로 들어와 바로 신발을 벗었다. 조금 헐거워진 가죽 구두가 한쪽은 신발장 앞에, 다른 한쪽은 현관문 앞에 나동그라졌다. 수연은 뒷 발길질로 급하게 벗은 구두 두쪽을 나란히 정리하고서는 지혜를 따라 들어갔다. 그녀에게서는 눅진한 기름 냄새가 풍겼다.


"네이버 예약하고 갔는데도 50분이나 기다려야 한대잖아. 언제 그걸 기다리고 있어. 아휴~~ "


가슴까지 쾅쾅 치며 지혜는 소파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포장은 금방 된다고 해서 언니네로 왔지. 알잖아. 여기서 우리 집 한참 먼 거. 식으면 맛없으니 뭐 별 수 있나. 참, 이 집 일미향이 서울 탕수육 삼대 맛집인 거 아나?"


평소 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먹스타그래머인 다운 말이었다.  


"근데 나 회사 요 앞으로 옮긴 건 알지?”


쉴 새 없이 말들을 쏟아내느라 지혜는 말라붙은 입술을 혀로 훔쳤다. 쭈그리고 앉아 소파 탁자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고서는 가져온 음식들을 꺼내 놓았다. 하얀색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중국음식들이었다. 지혜는 급하게 패딩을 벗고 목도리를 풀러 소파에 던져 놓았다. 단무지와 젓가락을 동여맨 고무줄을 풀러 머리를 묶었다. 두 다리도 포개 양반다리로 고쳐 앉았다. 이제야 먹는다. 얼굴은 기대로 상기되어 있었다.

 

지혜는 급하게 젓가락을 푹 찔러 짜장면 용기의 랩을 찢었다. 깔끔이 벗겨지지 않은 비닐이 가운데 부분만 뚫렸다. 큰 구멍 난 듯 보였다. 짜장면에는 삶아진 면위에 채 썰은 오이와 완숙 계란프라이가 올려있었다. 그녀는 딸려온 짜장 소스를 다 붓고 젓가락으로 연신 면을 비비며 말을 이었다.


“언니 그거 알아? 요새 서울도 간짜장 시키면 계란 프라이 주는 거? 첨에 서울 왔을 때 달랑 메추리알 두 개만 들어있어서 야박하다 했거든. 이제 서울 인심 후해지는 건가? 맞나?”


경상도 억양이 약간 섞인 어색한 서울말을 이어가며 지혜는 연신 짜장면을 삼켰다. 숟가락으로 면 바닥에 있는 짜장 양념을 듬뿍 떠서 잘 비빈 면을 올리고 그 위에 프라이를 올려 먹었다. 땀까지 흘려가며 바삐 먹다가 갑자기 멈췄다. 잠시 멋쩍어하더니 나무젓가락 하나를 뜯어 수연에게 내밀었다.


“언니도 먹어. 이 집 찹쌀 탕수육이어서 촉촉하니 맛있어. 그리고 말 좀 해라마. 입이 붙었나?”


수연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면서 탕수육 쪽으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크게 시장하지는 않았지만 먹지 않고 있으려니 심심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해서였다. 정말 찹쌀을 입혔는지 튀김옷은 노릇하면서도 투명했고 두툼한 고기가 살짝 밖으로 비쳐 보였다. 수연은 탕수육을 하나 들어 옆에 있는 소스에 찍었다. 갈색 빛이 살짝 도는 소스는 목이버섯, 자른 당근과 양파가 들어있었다. 고기는 부드러웠고 찹쌀을 졸깃했다. 정말 3대 맛집인가 수연은 잠깐 생각했다. 미각에 사로잡힌 그녀를 깨운 건 지혜의 전화벨이었다. 큰 화면에 익숙한 전화번호가 뜨고 있었다.


태호선배라고 저장된 그의 번호가 그녀의 핸드폰에서 울리고 있었다. 기름이 묻지 않은 손가락으로 지혜가 얼른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6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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