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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승 Mar 20. 2024

전남편의 내연녀

6화

지혜는 어깨를 움츠려 휴대폰을 얼굴 옆에 꼈다. 두 손은 연신 짜장면을 비비고 있었다. 어색하게 벌떡 몸을 일으킨 수연이 부엌 쪽으로 걸어갔다. 엿듣는 것처럼 오해사기 싫어서였다. 그러나 지혜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자, 귀 옆으로 안테나가 길게 올라가고 있었다. 뭘 먹을까. 뭐가 있지. 자연스럽게 보이려 중얼대면서 냉장고를 열었다. 지혜의 쩝쩝대는 소리와 음성이 합쳐 저 대화 내용은 들을 수 없었다. 그녀의 커다란 웃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술 없어?”


금세 전화를 마친 지혜의 큰 목소리가 수연의 귓가에 쩌렁쩌렁 울렸다. 수연은 맥주를 꺼내 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잔을 기울여 따랐다. 피자도 에어프라이기에 데웠다.  맥주와 피자를 들고 거실로 가는 수연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그러나 지혜와 태호의 대화가 궁금했다. 그런 자신을 숨기기 위해 마음은 더 바빴다. 술과 안주는 이 궁금함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적절한 눈속임이었다. 쿵 소리가 날 정도로 부산하게 쟁반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식겠다. 어서 먹자” 코멘트까지 붙여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이뤘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지혜은 목말랐다는 듯 차디찬 맥주 한 캔을 원샷으로 끝내버렸다. 그리고 윗입술에 남은 거품을 소매 끝으로 문질러 닦았다. 크윽~ 하는 트림소리가 뒷 따라왔다.


“방금 전화 온 거 태호 선배야. 언니네 집에 잘 도착했냐고. 실은 선배가 여기 주소 알려줬거든. 내가 동호수가 기억이 잘 안 나서. 그전에 언니한테 전화했었는데 안 받더라고, 그래서 뭐 제일 잘 알 것 같은 사람한테 물어봤지. 궁금해 죽을 뻔했지? 말해주는 센스 하고는 역시 난 착해.”


지혜는 찡긋 웃고서는 어깨까지 으쓱 올렸다. 수연은 지혜를 속이는데 실패했다는 사실 보다 태호가 어떻게 자기 집 동호수를 알고 있었는지에 더 놀랐다. 이혼 후 그들은 삼 년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여기 살게 된 게 고작 삼사 개월 되었을까, 아까 만났을 때도 이사 이야기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지?  수연의 의아한 표정에 관심 없다는 듯 지혜는 피자를 열심히 먹어댔다. 노오란 치즈 기름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혀를 내밀어 입가에 묻은 기름을 닦았다. 피자에 열중한 지혜의 모습을 보며 수연은 안심했다. 놀란 제 표정을 이번에는 알아차리지 못했겠지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둘이 왜 헤어진 거야?”


지혜가 물끄러미 수연을 바라보았다.


“어, 그게.." 


수연이 입을 떼는 순간, 지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이런 얘기는 소주 없이 못하지”


부엌으로 가더니 그녀는 찬장에서 소주를 한 병 꺼내 왔다. 피자는 느끼한데 소주 안주는 뭘 먹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수연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건데? 표정 보니 고해성사라도 할 모양인데?”


지혜가 피식 웃었다. 웃음의 이유와 상관없이 수연의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고해성사라니 네가 신부님 이냐? 톡 쏘아 주고 싶었지만 멋쩍은 웃음만 지었다.


“말하기 어려워? 괜찮아. 나중에 해” 


지혜는 가볍게 일어나 소주잔을 찾았다. 수연은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하지 말라고 하니 해버리고 싶었다. 입을 뗐다. 그때였다.

 

‘띵동’ 현관벨이 울렸다. 절묘한 타이밍에 열린 입은 다물어졌다. 수연은 받아 든 봉지를 들고 주방 쪽으로 갔다. 말하려고 했는데.. 내가 차였다고, 이유는 모른다고, 분명 뭐가 있는데 말을 안 해준다고, 정말 답답하다고. 목 끝까지 말이 차올랐다. 하지만 수연은 침을 모아 삼키며 누르고 있었다. 지혜가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니까.


막 배달된 곱창은 김이 모락모락 났다. 지혜는 버무린 부추무침에 곱이 통통하게 든 곱창을 올렸다. 그리고 술잔에 소주를 가득 채웠다. 그러곤 한숨에 털어버렸다. 묵묵히 곱창도 씹었다. 수연의 말을 기대하지 않는 낯빛이었다. 대체로 젓가락질 두세 번에 소주 한잔의 비율이었다. 술기운이 올라 얼굴이 불그스름해졌다. 지혜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물기가 어린 듯 눈가가 촉촉해지고 있었다.


“언니랑 태호선배는 헤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오래 살고 볼일인가. 결혼한 지 삼 년 만에 이혼이라니. 말도 안 돼…”


고개를 저으며 지혜는 소주잔을 채웠다.


“완벽한 커플이 있다면 바로 언니네였는데. 다들 부러워했었지만,  난 솔직히 언니네가 부러운 건 아니었어. 금슬 좋은 사람들이 뭐 한둘인가. 근데 태호선배가 언니를 쳐다볼 때 그 눈빛. 그게 부러웠지. 새끼 병아리가 행여나 넘어질까 살피는 어미 닭의 눈빛이라고 할까. 아 이것밖에 표현이 안되네..”


이빨로 소주잔을 잡은 그녀는 고개를 꺾어 단숨에 잔을 비웠다.  


“왜 눈에서 꿀 떨어진다 하잖아. 완벽한 표현은 아니지만은. 어쨌든 선배 눈이 딱 그렇더라고. 근데 그걸 보는 내가 왜 신경질이 나는지. 그래. 정확히는 질투지. 여자로서 시샘. 누가 나도 저렇게 봐줬으면.. 언젠가 저런 사랑받고 싶다 그랬지.”


지혜는 계속 소주잔을 채워갔다. 오랫동안 가슴속에 담아둔 말이 실타래처럼 엮어져 나왔다.


“언니가 뭐 그리 특출난건 아니었잖아. 쭉빵이야? 얼굴이 이뻐? 이도저도 아니면 공부라도 잘하던가. 내가 볼 땐 성격도 꽁해가지고 별론데. 근데 태호선배는 인기 많았잖아. 언닌 그거 몰랐을 거야. 하도 선배가 언니만 쳐다보니까. 애들이 얼마나 선배를 따라다녔는지 원.  도서관 자리라도 비우면 음료수며 쪽지가 막 옆에 쌓여. 같은 과라고 하니까 후배인 나한테도  연락처를 가르쳐달라고 하고. 모델 같은 외모에 아버지가 MG화학 사장이라니 뭐 말 다했지. 그 잘난 선배가 선택한 게 고작 언니라니. 좀 실망도 했지만 희망도 생겼지. 나 같은걸 누가 봐주나 했는데 언니를 보니까 저런 사람도 선배한테 사랑을 받는데 나라고 왜 못 받을까 했지. 그런 착각 같은 희망이 생기더라고.”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지혜는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암튼 복잡해. 나중에 둘이 같이 살고 그러니까 화도 나더라 누구는 저 외모로 저렇게 사랑받으면서 행복한데 난 왜 이렇게 불행할까 이 세상 모든 연인이 헤어졌으면 좋겠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하면서. 근데 막상 언니가 헤어졌다고 하니까 그날 밤에 한숨도 못 잤어. 세상에 완벽한 커플이 있다면 저 사람들일 텐데 헤어졌다고? 아니 왜? 근데 지수한테 물어보니까 선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거야…”


수연의 기다란 눈이 동그래졌다. 선미?... 난생처음 들어보는 여자이름이었다. 정말 여자 때문이었나? 설마 설마 했는데… 수연은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은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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