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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오이

by 발광머리 앤

안강장에 가면 꼭 꽃집을 들른다.

옥천식육식당 옆집에서 제일 많이 사는데

남편은 꽃집쪽으로는 얼씬도 안한다.



모종 파는 집이 엄청 많은데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산 약초도

때때로 있다



남편은 실용적인 인간이라

꽃보다 상추

꽃보다 오이

꽃보다 당귀

가 모토이다.



내가 꽃 쇼핑을 마치니

남편이 오이 모종을 세 포트 샀다



작년에도 수박을 샀지만

우리집 마당이 척박해서

수박이 손톱만하게 열리다 찌그러들었다.



뽑으면서 뿌리에서 수박 냄새만 맡았다.



남편에게 퇴비도 주고

더구나 덩쿨이니 돌보아야 한다고 했다.



언제나 내 말은 콧등으로도 안 듣는

남편은 심어놓기만 하고

나몰라라다.



남편이 저지른 일 처리 전담으로

살아온 나날이 어언 29년!



이제 엔간한 일에는 나도 몰라라 한다.

그러나 오이 덩굴이 내 귀한 백합에게

치근덕거리고

아이리스에게 엉겨붙고

문그로우에게 추근댄다.



이건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더구나 오이는 내 손가락 반만한

상태로 얼음땡인데

조금있으면 누렇게 찌그러들것 같다.



심어놓기만하고 나몰라라하는 참외를 보며

동병상련을 느낀다.



결혼만 하면 되는 줄알고

마누라는 나몰라라 하는 인간과

30년 가까이 사는 내가 장하다.



이혼하는 심정으로

두 포기는 뽑아버리고

(남편은 모른다)



한포기는 손가락 두마디만한

오이 하나만 남기고 뚝 잘랐다.



그랬더니 오이가 하루가 다르게

크더니

오늘 아침 먹을만해졌다



얼른 따다가



뚝 잘라서 남편 주고

반은 내가 먹었는데



엄첨 맛있다.



지금 다시 안강장에서

오이 사다 심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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