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애의 고입과 함께 불면증이 시작되었다.
입학 첫날부터 열시까지 야자를 하고
그 다음날부터 12시까지 앉혀놓는 바람에
아들이 오는 시간까지 안 자고 기다렸다.
아들은 돌아오자마자 대충 씻고(씻었나? 씻었겠지?)
게임을 했다.
하루종일 공부했을(했을까? 했겠지?)
아이가 안쓰러워 게임을 하게 냅두고
한시간쯤 지나면 자라고 했다.
애가 자면 2시 가까이 되었고
그땐 이미 잠이 도망간 후였다.
3년을 내리 못 자고,
대학에 들어간 이후로도 불면증은 계속되어
갱년기의 다른 증상까지 더해져서
자려고 누우면
등에 난롯불이 붙은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웠다 등이 화끈거려
바닥에 누우면 조금 있다가 춥고
다시 침대로 올라가면 등에 난로가 붙은 것 같고
이 짓을 몇번 하다보면 날이 샜다.
어느 일요일 아침
새벽녘에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삼겹살 굽는 냄새에 잠이 깼다
아침부터 삼겹살 구워먹는 사람은
우리집에 남편밖에 없다
삼겹살을 굽고 허옇게 기름낀 후라이팬에
사방팔방 기름이 튄 가스레인지
집안 가득한 냄새는 30년째 뭐라고 해도
대통령 당선인처럼 꿋꿋이 제 갈길을 간다.
그날은 너무 힘들었다.
영어로 욕이 나왔다.
안방 화장실에 앉아 소리내서 우는데
샤워부스에서 샤워하고 나온
딸이 안아줬다.
(그날 너는 왜 엄마 화장실에서 샤워를 한 거니?)
가뭄에 콩 나듯 하루 잠을 푹 자면
곗돈 탄 것 같고
밤새 잠을 못자고 아침 수업을 하러
출근할 땐 명이 짧아지는 기분이었다.
누우려면 온갖 잡생각에 눈이 말똥말똥해져서
노트북을 옆으로 세우고 미드를 보면
생각을 안하게 되니까 스르르 잠이 오는데
부작용은 꿈자리에서도 계속 영어가 들린다는 점이다.
거기다 혹시 좀비라도 나오는 드라마는
꿈자리를 아주 사납게 한다.
이건 갱년기 여성의 공통적인 특성인지
호랑이띠 선배언니네 집에 놀러갔는데
언니는 티비를 켜고 소파에서 자려고 눞는다.
척하면 척이라고 뭔지 알지
울언니도 그러더라.
여튼 큰 애가 올해 스물아홉이니
12년가까이 불면증을 겪은 셈
큰애가 첫 월급으로 내 침대
매트리스를 사줬다.
월급의 삼분의 일을 털어
사준 걸
새로 산 프레임에 얹어 쓰게 되었다.
좋은 매트리스는 두꺼운지
마치 호텔 침대처럼 기어올라가서 누워야 한다.
이상하게 누우면 편하다
비싸서 그런가?
너무 높아서 노트북을 세워서 볼 수가 없다
며칠 노트북 없이 누워서 잠이 들었다.
이제 갱년기 불면증이 끝나는가보다.
아들로 시작해서 아들로 끝나는 불면증인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