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이 올라도 변하지 않는 보쌈집

서울 종로구 원서동, 다시 찾은 천하보쌈

by 가위바위보쌈

찾았던 보쌈집을 또 찾는 건, 여러 보쌈집을 탐구해야 하는 내게 쉬운 일은 아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이라면 가능하지만, 약간은 품을 팔아야 하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천하보쌈은 그렇게 멀진 않았어도 방문을 꺼리게 됐는데 이유는 쯔양이 다녀갔기 때문이다. 보나 마나 줄이 길 것이고, 보쌈 맛도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속 순위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가기를 꺼렸다.


그러던 중 안국에서 늦은 저녁 일정이 생겼고, 시간 텀이 나서 홀로 저녁을 때우러 천하보쌈을 오랜만에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최근 이곳을 방문한 친구가 천하보쌈의 줄이 그렇게 길지 않았다고 했기에, 약간의 근거 있는 자신감을 갖고 천하보쌈으로 향했다.


몇 해 전까지 있던 이잌은 사라졌고, 법원이라는 바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https://brunch.co.kr/@redlyy/16) 그 바를 끼고 쭉 올라가면 창덕궁이 보이고, 마찬가지로 창덕궁에 거의 가까워질 때쯤 좌측에 천하보쌈이 있다.

KakaoTalk_20251222_194724938.jpg 서울 종로구 원서동, 다시 찾은 천하보쌈의 전경. 천하보쌈 웨이팅은 없었다.

2년 전 방문 때와 달리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쯔양이 다녀간 탓일까. 과거의 정겨운 간판은 사라졌고, 깔끔해진 간판이 천하보쌈의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고 문에 붙은 정겨운 글자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2년 전 글은 쯔양이 다녀간 후에 올렸지만, 방문 시점은 그전이었기에 나도 쯔양이 다녀간 후로는 처음 와봤다.


유명인이 다녀가면 맛이 변하거나, 서비스가 변하거나, 분위기가 변해야 하는데 다행히 천하보쌈은 그대로였다. 최근에 다녀온 친구들이 서비스가 별로였다는 말을 해서 약간 우려했지만, 예전에 친절하셨던 남자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분은 그대로 계셨다. 약간은 무뚝뚝한 면모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불편함은 안 느껴졌다.


딱 하나 달라진 건 '가격'이었다. 가격이 매우 달라졌는데, 그냥 달라진 게 아니라 상당히 사악하게(?) 달라졌다. 보쌈 정식을 기준으로 2년 전에 갔을 때도 그전에 갔을 때보다 2000원이 오른 1만2000원이었는데, 1만7000원으로 5000원이 올랐다. 보쌈 정식 특도 사라졌다. (가게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메뉴판을 찍을 수가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단은 정식 하나를 시킨다. 사장님이 상추와 새우젓, 쌈장, 마늘을 내려놓으시면서 "정식 하나시죠?"라고 물어봐주신다.

KakaoTalk_20251222_194724938_01.jpg 서울 종로구 원서동, 다시 찾은 천하보쌈 밑반찬

이렇게 세팅된 반찬을 구경하다가 조금 더 기다리면 보쌈과 다른 밑반찬들이 나온다.

KakaoTalk_20251222_194724938_05.jpg 서울 종로구 원서동, 다시 찾은 천하보쌈 밑반찬

밑반찬의 구성은 과거랑 비슷하다. 잡채, 오징어무침(?), 배추 무침, 미역볶음, 달걀찜. 달라진 건 콩나물 무침이 사라진 것과 배추 무침의 종류가 바뀌었다는 점. 그리고 전반적으로 담아주시는 양이 줄었다. 물론 보통 둘이 갔던 것과 달리 이번엔 혼자 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반찬이야 뭐 달라면 더 줄 테니 신경 쓰지 않았다.


밑반찬과 함께 고기도 세팅된다. 사람이 한 명이다 보니 고기와 김치도 한 접시에 담겨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KakaoTalk_20251222_194724938_04.jpg 서울 종로구 원서동, 다시 찾은 천하보쌈 보쌈 정식

우선 이 집의 고기와 김치는 확실히 비주얼이 달라졌다.


비주얼부터 정리해 보자면, 고기는 좀 더 탁해졌다. 고기 종류를 바꾼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양념에 뭔가 다른 게 들어간 것 같기도 하다. 된장이나 커피처럼 갈색류의 것을 넣은 느낌은 아니다. 월계향이나 다른 맛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전히 마늘향이 좀 느껴졌다. 크게 색이 달라지지 않고 전반적으로 하얀색 고기였지만, 이전보다 조금은 탁해졌다.


김치는 확실히 다르다. 맛도 다르기 때문에 김치는 비주얼이 달라졌음을 확신할 수 있다. 더 빨개졌다. 그리고 1인분이라 그런지 돌돌 말아서 나오는 '보쌈김치'의 전형과는 달랐다. 아마 보쌈김치 한 덩이를 반으로 잘라서 줘서 이렇게 나온 것 같다.


맛으로 넘어가 보자면 고기는 거의 그대로의 맛이었다. 아마 크게 달라지지 않은 거로 봐선 만드는 방식을 바꾸진 않았을 것 같다. 색깔이 달랐던 건 고기의 변화 또는 약간의 재료 가미 정도 아닐까. 맛에 큰 차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부위도 앞다리살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부드러움은 여전했다. 달지도 않았다. 하지만 처음 고기를 먹었을 때 마지막 맛에 아쉬움이 남았다. 이전처럼 감칠맛이랄까. 입 안을 가득 채우는 그런 맛이 덜했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맛있었고, 앞서 언급했듯 부드러움이 정말 미쳤다. 단, 비계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은 조금 힘들 수도 있었다. 돼지 잡내는 당연히 없었다.

KakaoTalk_20251222_194724938_02.jpg 서울 종로구 원서동, 다시 찾은 천하보쌈 보쌈 정식

김치는 앞서 말했듯 비주얼이 달라졌고, 확실히 맛도 달라졌다. 그렇다고 맛 없어진 게 아니다. 이전에는 약간 시원한 맛만 있었다면 고춧가루가 달라지면서 매콤함이 추가됐다. 많이 매웠다. 매운 걸 못 먹는 편이 아닌데, 처음 맛이 매워서 "맵다"라고 입 밖으로 외칠 정도였다. 그렇지만 못 먹을 정도로 맵진 않고, 맛있게 매웠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매워져서 오히려 좋았다. 이전에 김치는 고기와 비슷한 종류의 맛이었다면, 이제는 좀 더 감칠맛이 살아나서 고기를 채워주는 느낌이었다. 정말 달라졌는지는 확인이 필요한 영역이지만, 달라졌다면 기존보단 지금이 더 낫다.(내 입맛이 달라져서, 김치가 달라졌다고 느껴지는 걸 수도)


가격은 많이 올랐어도, 이전과 비슷한 맛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고 느껴졌다.


KakaoTalk_20251222_194724938_06.jpg 서울 종로구 원서동, 다시 찾은 천하보쌈의 밥과 된장찌개

이 집의 장점 중 하나인 된장찌개는 여전했다. 감칠맛이 있었고, 고기를 먹다가 중간중간 입을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공깃밥은 과거보단 조금 덜 담아주는 느낌이었는데, 어차피 내게 밥의 양은 별로 큰 요소는 아니었다.


된장찌개를 한 입, 두 입 먹으며 밥을 먹고 고기와 김치까지 겸비해서 먹으면 음식이 쑥쑥 들어간다. 반찬도 너무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된다. 결국 그릇을 싹싹 비울 정도로 음식을 흡입했다.


먹는 내내 5000원이나 올려야 했나 싶은 아쉬움이 남지만, 최근 물가가 많이 올랐기에 어쩔 수 없었겠지 생각해 본다. 5000원이 오른 만큼, 내 기준 김치는 업그레이드 됐으니 뭐. 하지만 1만7000원으로 보쌈 정식을 먹으러 오기엔 주변 직장인들에게 부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웨이팅도 없는 걸까. 어쩌면 가격이 올라서 정말 천하보쌈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좋은 걸 수도... 그래도 여기서 더 오르면 쉽게 먹긴 힘들 것 같다. 가격을 내릴 일은 없지 않나.


어쨌든 최근 계속해서 '이름 바꾸고 초심 잃은 집' '가격 올리고 맛도 바뀐 집' 등을 소개했는데, 가격이 좀 (많이) 올랐어도 맛은 괜찮아진 천하보쌈을 보니 마음이 다행이지 싶었다.


서비스도 논란이 안 나오게 모든 사람에게 좋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 그리고 안 바뀐 게 하나 더 있다. 화장실. 밖에 있었고, 공용이었다.


어쨌든 가격이 올라도 변하지 않는 보쌈집이 있다는 걸 보여준 집, 천하보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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