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서울 용산구 신계동 장군보쌈
2년이라는 시간은 어떤 보쌈집이 5000원의 가격을 올리고 메뉴 구성도 바꿀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어떤 집은 2000원만 가격을 올리고, 맛은 더 훌륭해지는 경우도 있다. 물가가 요동치는 상황에서도 같은 가격으로 더 나은 맛을 만드는 건 어떤 비법일까.
오늘 소개할 집은 3년 가까운 시간 방문하지 못했던 용산구 신계동에 있는 '장군보쌈'이다.
장군보쌈은 2022년부터 꽤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이다. 그때마다 아쉬움이 조금씩 남았었는데, 이유는 고기가 퍽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김치가 유별난 것도 아니었으며 쟁반국수가 특별하지도 않았다. 그저 손님을 모시기 좋은 노포 정도에 그쳤다.
그러다 보니깐 자연스럽게 다른 곳으로 발길이 가게 됐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내 마음을 뒤흔든 '원보쌈'이라든지 숙대입구와 삼각지의 다른 보쌈집들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오랜만에 어딜 갈까 찾아보던 중 장군보쌈이 눈에 들어와서 이곳을 선택했다. 역시 교통편이 불편한 터라, 이 집을 선택해 놓고 가기 전까지 상당히 후회했다.
이 집은 어떤 지하철역에서도 가깝지 않다. 그나마 용산역에 내려서 노보텔 쪽으로 걸어오거나, 효창공원역에 내려서 남정초등학교 방면으로 하염없이 걷는 방법이 있다. 그래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좋은데, 버스에서도 내려서 좀 걸어야 한다.
어쨌든 음식점 하나 없을 것 같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장군보쌈의 오래된 간판이 우리를 반겨준다. 놀랍게도 이곳을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 덕인지, 저녁이 되면 괜스레 장군보쌈만 밝아 보인다.
장군보쌈은 시간이 흘렀어도 간판이 그대로다. 저 옆에 팔지도 않는 족발은 언제 지우시려나... 어쨌든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갑자기 노트에 이름을 적으라고 한다. 웨이팅이 아니다. 메뉴 주문이다.
이유는 고기가 6시에 딱 나오기 때문이다. (예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이 날만 그랬을 수 있지만, 6시까지 안에서 대기하다가 6시부터 주문을 받기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매우 정신이 없었다. 이모들도 주문을 헷갈려하고, 나와야 할 음식이 나오지 않고 그런 혼선이 있었다. 아마도 이 날만 고기가 덜 삶아졌던 거라고 생각해 본다.
어떤 집은 보쌈 정식이 1만 7000원인데, 여기는 보쌈 정식이 1만 원이다. 2~3년 사이에 딱 1000원 올랐다. 하지만 오늘 먹을 건 보쌈 정식이 아니라 장군보쌈. 굴을 먹고 싶어서 모듬보쌉을 시키고 싶었지만, 일행이 굴을 꺼리기에 굴이 없이 고기와 김치만 있는 장군보쌈으로 골랐다.
사람이 4명이니 넉넉하게 시키자는 취지로 장군보쌈을 2개 시켰다. 아마 1개만 시켰으면 2.5인분 정도 되는 듯하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내부 분위기를 조금 견디다 보면, 갓 삶은 고기와 보쌈김치가 담긴 그릇이 나온다.
이제부터 고기와 김치의 시간이다.
모양으로 보면 이 집은 보쌈의 정석 그 자체다. 아마도 이날 우리는 특별히 부드러운 부위를 요청하지 않았는데, 앞다리살 중에서도 비계의 비중이 높은 부분이 걸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살코기와 비계 비율이 3:7 내지는 2.5:7.5의 비율을 이뤘다.
먼저 고기부터 살펴보자면 비주얼처럼 상당히 부드러웠다. 3년 전 느꼈던 고기는 살코기의 비중이 높아서 퍽퍽헀는데, 이 날은 엄청 부드러웠다. 고기 부위의 특징도 있겠지만 아마도 갓 삶아서 나온 영향이 컸던 것 같다. 커다란 솥에다가 쪄낸 앞다리살은 정말이지 입에서 녹아내릴 정도로 맛있었다.
3년 전에 느껴졌던 약간의 돼지 잡내는 또 어떨까. 완연한 육향으로 변모해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줬다. 고기 한 입, 한 입 아껴먹고 싶을 정도로 상당한 맛을 자랑했다.
놀라운 점은 어떠한 양념의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고기에 된장, 커피, 월계수 같은 걸 넣고 끓인 느낌이 아니었다. 그냥 일반 물에다가 삶았나 싶을 정도로 고기 본연의 향만 남아서 신기했다. 비법이 뭐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3년 사이에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이곳이 발전한 건지. 정말 맛있었다.
아쉬운 점은 고기의 양이 이전보다 줄었다는 점이다. 많이 줄어든 것 같진 않지만, 이전보다 줄어든 게 좀 느껴져서 물가 상승은 어쩔 수 없나 싶었다.
다음은 김치다. 김치는 정말 갓 담근 게 확 느껴졌다. 왜냐하면 어떤 김치는 짜고, 어떤 김치는 괜찮았으며 또 어떤 부분은 양념이 과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며칠 전 또는 당일에 담가서 내놓은 '보쌈김치'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모양은 당연히 보쌈김치 모양이니 합격인데, 양념이 많이 묻은 무김치 부분은 조금 끝맛이 짰다.
하지만 김치가 맵지 않고, 고춧가루가 감칠맛이 나서 먹기 나쁘지 않았다. 고기와 같이 먹으면 짠맛도 덜 느껴져서 꽤나 괜찮은 맛이었다. 상추에 싸 먹어도 괜찮았고, 배추에 양념을 묻혀 먹어도 나쁘지 않았다.
3년 전 김치의 양념이 과도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조금은 양념이 그때보단 진해진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김치가 너무 과하게 양념이 돼 있거나 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이 집에는 막국수가 있고, 쟁반국수가 있는데 여럿이서 먹을 거면 쟁반국수를 나눠먹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쟁반국수는 이 날 특성인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려서 나왔다. 이모한테 장난으로 "고기 다 먹었어요~" 할 정도로 고기를 다 먹은 후에야 나왔다. 하지만 우리는 고기를 추가했기에 고기와 같이 먹는 맛도 느낄 수 있었다.
쟁반국수 양념은 비빔국수 느낌이었다. 그래서 맛있었다. 심하게 맵거나, 심하게 달지 않고 적당한 맛을 겸비한 양념이었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고기와 같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럿이서 와서 고기를 넉넉히 시키고 쟁반국수를 덜어서 같이 먹으면 꽤 괜찮은 조합이라고 느껴진다.
이렇게 배부르게 먹고 나면 행복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3년 사이에 이렇게 맛이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걸 느끼면서, 꼭 시간이 지난다고 나빠지는 것만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보쌈집들도 이럴까? 오랜 기간 안 찾은 곳들이 있는데 부쩍 가보고 싶어 지는 오늘이다. 내년에는 오래 못 찾았던 곳들을 하나씩 재방문해봐야겠다는 목표도 생긴다.
어쨌든 오랜만에 찾았더니 더 맛있어진 보쌈집, 장군보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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