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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이 Mar 16. 2023

집 없는 강아지가 있다는 걸
믿지 않았던 7살 조카

구조견 임시보호 10일 차


2021년 여름.

가족 모임 중 유치원생 조카 다민이가 당시 임시보호 중이던 아이 달이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달이!


“우와ㅡ 이모! 얘는 누구예요?”

“얘는 달이야. 이모 집에 잠시 살고 있는 아이야.”

“달이~ 엥? 근데 왜 자기 집에 안 가요?”

“아! 달이는...... 그러니까 달이는...... 집이 없어.”

“네????? 집이 없다고요? (매우 놀람)”

“응. 집을 찾고 엄마아빠를 찾을 때까지 이모집에 있을 거야.”

“허얼. 엄마 아빠도 없다고요?!!!!"

"아!...... 응."

"왜요?”

"....... 왜? 글쎄다. 잃어... 버렸다고 해야 하나?"

"말도 안 돼!!!!"


7살 다민이의 아름다운 세상에는 집이 없는 것도 모자라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는 강아지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모가 사는 비정한 세상에서는 집과 부모가 없는 개에 대해 "대체 왜?"라고 물어본 게 언제였는지도 잊었을 만큼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는데 말이다. 


다음날 아침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다민이가 나와한 대화가 적잖이 충격이었는가 보다며. 자기 전 동화책 읽는 시간에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책과는 관련 없는 달이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엄마, 달이는 정말 집이 없어요? 엄마 아빠도?"

"집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 


언니는 너무 걱정하는 다민이를 일단 안심시켜야 할 것 같아서 이 세상에 달이와 같은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이모와 같은 사람들도 많아서 괜찮다고 했는데 이게 좋은 설명이 된 걸까 물었다. 다민이와 닮은 얼굴로 비슷한 표정을 지은 채 한숨을 폭 쉬고 있을 전화기 너머의 언니 얼굴이 떠올랐다. 자랄수록 아이가 물음표를 찍고 서 있는 지점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곳에 함께 서면 어른의 눈높이에서는 보이는 현실감 가득한 폐허를 과연 아이에게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묘사할지 언니의 고민이 클 것 같았다. 유기견 달이의 이야기도 그렇다. 나 역시 그 순간 다민이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설명하라고 해도 맑은 달이 눈 한번, 뽀얀 다민이 얼굴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말문이 막혔을 것이다.  


그날 언니와 앞으로 다민이에게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 줘야 할 지에 대해 꽤 긴 대화를 나눴다. 또렷한 결론에 닿지 못한 채, 유기견 아이들에 대해 아쉽고 속상한 이야기만 한참 맴돌았던 것 같다. 다민이에게는 한 생명이 탄생하고 나면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 있고 따뜻한 보금자리가 있는 게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왜 그 당연한 일이 당연하지 않게 된 건지. 이 어이없는 상황을 7살 난 조카에게 설명하기엔 내가 일궈온 유기견에 대한 단어밭이 너무나 거칠고 황량했다. 



두 번째 임보견 펠라. 그녀는 얼굴천재


달이는 모두의 바람대로 따뜻한 가족의 귀여운 막내가 되어 우리 집을 떠났다. 그 후 우리 집의 두 번째 임시 보호 강아지 펠라가 왔다. 다민이는 이모의 두 번째 임시보호 펠라를 알게 되었을 때는 처음처럼 크게 놀라지 않고 '그렇구나.'라고 쿨하게 받아들였다. 8살이 되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야기는 안 했지만 달이의 사연을 기억했던 걸까. 다만 이번엔 달이 때보다 펠라에 대해 더 세세히 물어보았다. 이를테면 펠라가 장 좋아하는 장난감, 펠라가 우리 집에서 잠을 자는 자리, 펠라의 짖는 목소리, 펠라의 친구들. 때때로 다민이와 영상 통화를 할 때면 펠라가 어디 있는지 보여달라고 했다. 여러 말 없이 '안녕!'하고 인사하고는 펠라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펠라는 여러 모로 완벽한 아이였기에 한 달가량 후에 역시나 좋은 가족을 찾아갔다. 

라이스! 보통 라이쮸라고 불려요.

한 해의 끄트머리. 세 번째 임시보호견 라이스를 데리러 가기로 한 전날 가족 모임이 있었다. 다민이에게 이모와 이모부는 오늘 다민이네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아침 일찍 근처에 있는 라이스를 데리러 갈 거라 말해주었다. 라이스의 사진과 영상도 보여줬다. 이모가 또 이 친구의 집과 가족을 잘 찾아줄 거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했다. 내일이면 9살이 되는 다민이는 라이스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펠라는 엄마랑 잘 있어요?”


흠칫 놀랐다. 한 번도 묻지 않길래 스쳐 지나간 일일 줄 알았는데,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 펠라의 이름을 또렷하게 부르는 나의 다정한 조카. 여전히 마음속에 각인되어 있을 만큼 작은 가슴에 큰 파장을 일으킨 일이었을까. 펠라는 너무 행복하게 지내는 것 같다며 펠라의 인스타그램에서 최근 신나게 뛰어노는 동영상을 보여줬다. 다민이는 까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가며 꼼꼼히 영상을 본 후, ‘다행이네.’라고 혼잣말을 하더니 블록놀이를 하던 곳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라이스가 우리 집에 온 지 어느덧 2달이 넘었다. 2학년은 역시 바쁜 모양인지 예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가끔 영상 통화로 라이스가 걷는 모습, 밥을 먹는 모습을 보여줬다. 여전히 라이스가 짖을 때는 어떤 목소리인지, 어떻게 걷는지, 무서울 땐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해서 이야기해 줬다. 다민이에게는 라이스가 구조되기 전의 배경, 그러니까 라이스의 과거보다는 지금 현재의 모습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노즈워크 하는 게 힘들까봐 간식이 있는 곳의 입구를 넓게 벌려주는 스윗한 조카

9살 형이 된 다민이는 더 이상 '엄마 아빠가 없다고요???'라고 놀라지 않지만 언젠가는 가족이 없는 개, 학대받고 방치된 개, 길에서 아픈 개, 집이 아닌 곳에서 마지막을 맞이하는 개들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다민이가 달이와 펠라와 라이스가 어디에서 왔는지 자세히 알게 된다면, 혹은 언젠가 동물 복지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이런 아픔에 분노와 책임감을 동시에 느낄 ‘어른’이란 게 된다면, 그때는 좀 더 나아졌을까. 


정말 언젠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과 가족이 없는 개들을 보면 다민이처럼 "뭐라고? 집이 없는 개가 있다고?"라고 놀라는 게 정상인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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