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내 강아지가 미치도록 귀여운 순간,
아내가 찐 웃음을 터뜨리는 찰나.
휴대폰 사진 어플을 켜고 촬영 버튼을 누르는 사이 어차피 최고의 순간은 늘 휘발되어버리고 마니까. 그럴 바에야 지금 내 앞에 놓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최선을 다해 즐기는 게 몇 장의 사진을 건지는 것보다 나은 거라고. 열심히 주장해 왔지만 사실은, 그저 게을렀던 것 같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겹겹이 쌓일수록 기억은 서로 꼬이고 해져서 이도 저도 아닌 것들이 된다. 그나마 휴대폰 위젯이 알려주는 '5년 전 오늘'이 있으면 그 끄트머리라도 붙잡고 가끔 추억에 젖을 수가 있다. 5년 전 오늘의 나와 지금 거울 속의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를 반복적으로 깨닫고 나면, 지금의 나와 나의 것들을 부지런히 캡처해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그래도 사람 성격이 쉽게 변하는 건 아니어서, 우리의 외출은 늘 '찍어달라는 아내'와 '말은 안 하지만 귀찮아서 뚱해진 남편'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굳이 사진을 뒤적거리지 않아도 아내는 우리가 갔던, 보았던, 먹었던 것들을 차곡차곡 모아 기억하고 있다가 "우리 그때 그랬잖아..."를 시전 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랬어?" 또는 "그랬구나..."로 아내를 맥 빠지게 한다.
매 순간 사진을 찍으면서 아내는, 사실 마음속에 도장을 콕콕 찍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을 데이터로 저장하는 행동이 지금을 즐기는 것과 상충되는 게 아니라(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페이지 끝을 접어 놓는 행위였던 거다.
그래도 사람 성격이 쉽게 변하지는 않겠지만(나는 내일도 모레도 게으를 테지만), 마치 다이어트를 앞두고 일부러 주변에 다이어트 계획을 소문내는 것처럼... 이 글이 일종의 공개적 다짐이나 서약이 될지 모르겠다.
'저장 공간이 부족하여 1,634개의 사진과 212개의 비디오가 icloud에 저장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부터 핸드폰 사진첩 하단에 뜨고 있는 저 메시지. 1,846개의 추억이 공중분해 될지도 모른다. 거대한 위기다. 이미 핸드폰의 기본 용량을 넘겼기에 유료 결제를 해서 클라우드 용량을 사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또 초과라니.
클라우드의 저장 공간을 잡아먹고 있는 범인은 온전히 사진 들이었다. 2009년 겨울에 출시한 아이폰 3gs을 시작으로 자발적으로 애플의 노예가 된 지 어언 10년이다. 이젠 클라우드 용량을 1TB 추가해야 하고 한 달에 만원 조금 넘는 금액을 내야 한단다. 아이클라우드 속 세계는 마치 잠결에 휘갈긴 자서전의 초고와 닮았다. 찍은 기억은 없지만 나의 행적, 시선, 인간관계, 습관까지 촘촘히 쌓여있다. 글도 아닌 사진으로 기록한 총천연색의 자서전.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다. 그러면 절대 안 되지만, 만약의 만약에 내 아이클라우드 사진첩이 해킹된다면 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도 남을 것이다. 치기 어린 사회 초년생의 자기소개서, 나도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보정한 증명사진, 정리했다고 해도 사진 귀퉁이에 남겨져있을 구남친 혹은 구구남친 혹은 구구구남친의 흔적. 비밀과 거짓말로 점철된 혼돈의 카오스. 그 속엔 그야말로 나의 모든 것이 다 있다.
누군가와 이별을 한 뒤 함께 찍은 사진과 주고받은 편지를 쭉쭉 찢어버리고 태워버리는 퍼포먼스는, 동전을 넣고 사용하던 길가의 공중전화만큼이나 지금과 어울리지 않는다. 컴퓨터 모니터와 핸드폰 액정 속에 담긴 사진이 원래 알고 있던 사진의 모습처럼 익숙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클라우드 공간에 쌓여있는 사진 중 남길 것, 버릴 것을 선별하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지울 수 있음에도 쉽게 지울 수 있다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다시 아이 클라우드에 들어가 봤는데도 도대체가 지울 사진이 한 장도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