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누가 청소기를 그렇게 돌려?

청소

by 홍지이

남편은 단정한 사람이었다. 데이트할 때 흘낏 본 옷깃과 소매는 늘 깔끔했다. 구겨 신은 적이 없어 그런지 신발 뒤축도 언제나 가지런했다. 여름이면 면 티셔츠에서 은은한 섬유 유연제 향이 났고, 겨울에 입는 외투와 재킷은 보풀 하나 없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다음엔 ‘머리가 조금 긴 거 아니야?’ 라는 말을 해야겠다 싶으면, 다음 데이트 땐 여지 없이 이발을 한 채 나타났고, 매일 챙겨 다니는 소지품도 비싼 건 아니지만 만듦새가 좋고 손에 익은 정도만큼의 사용감이 있었다. 자신을 잘 돌보는 성숙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 후, 그것 중 많은 부분이 어머니의 야무진 손끝과 부지런한 노동의 흔적이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때 신혼생활 최대의 미스터리가 있었다. 빨래를 한 뒤 정리할 때 보면 남편의 흰 양말 바닥만 금세 까맸다. 저 양말 세탁 효과가 별로인가? 혹은 남자는 여자보다 대개 발바닥에 땀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했다. 알고 보니 남편은 운동화를 빨아 신어야 하는 주기를 몰랐고, 빨지 않더라도 신발 안창이 낡거나 오염되면 새것으로 교체해야 하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헌 속옷을 버리고 새 속옷으로 교체해야 하는 주기도 몰랐고, 땀을 흡수하지 못하는 재질의 상의를 입을 땐 안에 면 소재의 이너를 입어야 하는 것도 몰랐다. 내가 말할 때마다 정말 ‘오 그래?’라며 물끄러미 바라봤다. 마치 세상의 거대한 비밀을 누설한 자를 바라보는 표정을 지으며.


누가 청소기를 그렇게 돌려?

아마 모든 신혼부부의 단골 부부싸움 소재인 그것, 우리도 겪었다. 바로 ‘청소’. 어렸을 때 부모님께 혼났던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남편은 다른 것도 아니고 청소기를 대충 돌려서 아버지께 늘 잔소리를 들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아버지, 그러니까 시아버지랑 아주 오랜만에 마음이 맞았다. 무선 청소기를 돌리는 남편을 봤다. 식탁 아래, 소파 사이, 방문 뒤, 침대 아래는 패스하는 무심한 그와 그의 청소기. 청소기를 돌리라고 한 것에 대한 불만 표시를 위해 시늉을 하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그곳까지 해야 하는지 몰랐던 것이다.


주중에는 둘 다 출퇴근하느라 바쁘니 화장실 청소는 몰아서 주말에 한 번씩만 하자 했다. 그렇게 자주 해야 하는 거냐고 되묻는 남편. 설거지는 꼼꼼하게 잘하지만 끝나면 싱크대 주변에 튄 물을 행주로 훔치지 않고, 하수구 거름망을 비우지 않는 남편. 환기를 좋아하지만, 베란다의 창틀은 저절로 깨끗해지는 줄(그래서 창틀 청소를 해본 적 없는) 아는 남편. 옷보다 신발을 좋아해 나보다 신발이 많지만, 현관 바닥의 흙과 먼지를 빗자루로 쓸어내야 하는지는 모르는 남편. 계절마다 그에 맞는 침대보와 이불 시트를 갈아 끼우고, 보름에 한 번씩은 잊지 않고 침구류를 세탁하고 매트리스 먼지를 털기 위해 침대 앞에서 끙끙거리는 나를 의아해하는 남편. 과연 이 남자, 연애 시절 단정하고 상큼했던 남자와 동일 인물이 맞나 싶었다.


그래, 다른 거지 틀린 게 아니잖아. 그래도 가르쳐주면(리베카 솔닛 선생님, 저는 여자임에도 남자를 자꾸 가르치려 들고 있어요.) 대충이라도 따르려 하는 것에서 한 줄기 희망을 보며 낙관했다. 그것이 희망 고문인지도 모른 채. 청소에 관한 노동의 분담은 서서히 공평함을 잃어 갔고, 청소에 대한 대부분의 책임은 내가 짊어지게 되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제때 정돈하지 않은 남편 몫의 청소거리를 질책하는 나를 보며 남편이 농담을 섞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알려주지 않아서 못 한 거잖아. 제때 알려주지 그랬어.’


그리고 또 하나, 청소는 아니지만, 한집에 살며 알게 된 남편의 행동 중 한 가지 큰 의문이 있었다. 그는 절대 의자를 밀어 넣지 않았다. 그것이 화장대 의자던, 식탁 의자던, 책상 의자던 말이다. 모든 의자는 남편이 앉고 나면 마치 누군가 금방이라도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올 것처럼 늘 준비 상태였다. 청소기 사태 때처럼, 그 이후 벌어진 청소와 관련된 무수한 사건 때처럼, 나는 또 순수한 물음표 살인마가 되어 남편에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왜 의자를 넣지 않는거야?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내가 그랬나?’ 라고 말하며 의자를 넣었다. 하지만 그 때 뿐, 남편이 앉았던 의자는 늘 '언제 돌아오나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의 상태였다. 혹시 내가 학생들에게 주변 정리와 정돈을 가르치는 의무를 가진 교사여서 그런걸까? 그래서 이게 내 눈에 띄나 싶었다. 의자는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된다. 죽고 사는 것의 문제도 아니지 않나. 의자를 넣지 않는다고 누군가 다치거나 아픈 것도 아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의자'가 아니었다. 나의 의문은 이것이었다. 그럼 그 의자는 누가 넣지?


엄마, 미립이가 의자를 단 한 번도 안 넣어요. 그런데 너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화장실 청소 때처럼 진지하게 말하기도 뭐해요. 자신이 쓴 물건을 원 상태로 돌려놓는 건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예의 아닌가? 잘 말하고 싶기도 하고 말하고 싶지 않기도 해서, 의자를 넣지 않은 상태로 두기도 하고 ‘내가 의자를 넣고 있어.’라는 티를 좀 내며 내가 넣기도 했어요. 나 어떻게 해야 해요?


지이야. 미서방의 의자를 넣어주는게 어렵지 않은 일이지? 그럼 앞으로 함께 살며 한 100번? 그 정도 넣어줘봐라. 그렇게 했는데도 미립의 태도, 너의 마음 둘 중의 하나가 변화가 없다면 그때 가서 얘기해보면 어떻겠니.


우문 현답이이었다. 결혼 생활의 지혜를 찾은 듯한 엄마가 멋져 보였다. 그 후 조용히 남편의 의자를 넣기 시작했다. 결과는? 결혼 10년차를 지난 지금도, 난 남편이 사용한 흔적이 남은 각종 의자를 열심히 넣고 있다. 다행히 10번 중 5번은 남편이 '아차' 하면서 혹은 무심결에 넣을 때도 있다. 10번 중 1번에서 5번이 되는 것에 10년이 걸렸으니, 앞으로 10년 더 같이 살면 의자 문제는 해결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잘 맞으니, 그리고 남편도 나에게 '의자'에 해당하는 무언가를 말 없이 묵묵히 티내지 않고 해주고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커플북] 주말부부는 그 뭐냐, 그거다. 서울 편 - 남편의 이야기

https://brunch.co.kr/@mag-in/170


keyword
이전 19화그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달려가야지. 전속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