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
남편은 입이 무거운 남자였다. 누군가에게 들은 말을 옮기거나 타인을 평가하는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원래 말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둘이 대화를 나눌 때면 말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나였다. 내가 가장 신기해한 것은 내게 해야 할 말을 어느 지점까지 참는 것도 잘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을 위해 좋은 물건을 찾거나 아이디어가 생기면 너무 신난 나머지 기념일을 앞두고도 바로 말해버리곤 했다. 하지만 남편은 몇 날 며칠을, 때론 몇 달도 꾹 참고 있다가 생일이나 기념일에 ‘서프라이즈’ 성격을 띤 이벤트로 발설하곤 했다. 나는 늘 이벤트의 수혜자였다. 남편은 언제나 놀라는 것도 재능이라며, 이벤트를 할 때마다 울먹이거나 펑펑 우는 나를 더 신기해했다.
어느 날의 데이트였다. 평소처럼 남편이 내게 ‘립밤 좀 빌려줄래?’라고 했다. 알겠다고 하며 가방을 열었는데 낯선 봉투가 들어있었다. ‘이게 뭐지?’ 하고 꺼내고는 남편을 보니 빙글빙글 웃고 있다. 열어보니 이적의 콘서트 티켓이었다. 청소년기엔 패닉과 긱스의 노래를 들으며 부조리한 세상의 명암을 훑었고, 김동률과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의 시를 닮은 노래들로 치유되었다. 20대와 30대엔 솔로 가수가 된 이적의 노래를 남편과 함께 들었다. 당시 우리는 그만의 영민한 서정성이 돋보이는 3집 에 한참 빠져 있었다.
그 중 ‘높은 산을 오르고 거친 강을 건너고 깊은 골짜기를 넘어서 생에 끝자락이 닿을 곳으로’ 라는 가사를 가진 <같이 걸을까>는 꽤 오랫동안 나의 눈물 버튼이었다. 남편이 나 몰래 예매한 공연의 타이틀은 ‘숲으로 자란 노래’였다. 난 콘서트 티켓을 어루만지며 엉엉 울었다. 나무로 만든 노래가 숲을 이루다니 라고 말하며.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함께 가는 것의 설렘은 예매를 한 이후부터 공연 날까지 잔잔히 이어진다. 데이트하며 지하철이나 버스에 타면 나란히 앉아서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었다. 공연을 가기 전까지 우리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이적의 콘서트 세트리스트(Setlist)에 있을 것 같은 노래가 가득했다. 패닉 때의 노래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외로운 핀 조명 아래 이적 혼자 기타를 연주하며 부르는 <강>을 다시 듣고 싶다고 했다. 남편은 오랜만에 라이브 코러스로 가득 찬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를 불러주면 좋겠다고 했다. 공연 시간 전에 갈 맛집과 카페도 찾아 두었다. 집에 갈 때 최적의 동선도 미리 짜 두었다.
그런데 남편과 나의 공통점은 둘 다 헛똑똑이 느낌이 있다는 것, 그리고 평소 서로의 말을 의심하지 않고 철석같이 믿는 것이다. 철저하게 준비했지만, 공연 당일날 뭐에 홀렸는지 둘 다 공연 시작 시각을 착각했다. 그래서 늦고 말았다. 다행히 공연장 근처에 있어서 전력 질주를 해 많이 늦지 않았다. 아티스트가 멘트하는 타이밍에 겨우 들어갔다. 늦게 입장해서 듣지 못한 몇 곳이 마음에 걸렸지만, 금세 잊고는 금방 웅장한 사운드와 현란한 조명이 만든 공연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이번 콘서트에는 이적의 음악적 동반자인 김진표와 김동률도 참여했다. 다시 오지 않을 이 귀한 순간을 놓쳤다면? 싶어 순간 아찔했다.
우리는 이적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나와 남편의 마음속에는 이적이 쓴 아름다운 가사가 뿌린 씨앗이 여러 그루의 나무가 되었고, 울창한 노래 숲을 이룬지 오래다. 나의 가수가 가까운 곳에서 노래하고 있고, 익숙한 멜로디가 몸을 감싸는 이 벅찬 순간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하고 있다. 몇 번의 환희를 함께 만끽했고 무수한 함성 속에 함께 서 있었다.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것의 감각을 느낀 곳에서, 문득 이 순간 옆에 선 이에게 무한대의 응원을 주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생각했다. 언젠가 멈추고 싶지 않은데 힘에 겨운 순간이 온다면, ‘아직’, ‘다시’, ‘한 번 더’, 그러니까 앙코르를 외쳤던 힘찬 목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남편과 나는 서로의 곁에서 마지막까지 목이 터져라 앙코르를 외쳐주는 단 한 명의 팬이 되어 가고 있다.
[커플북] 주말부부는 그 뭐냐, 그거다. 서울 편 - 남편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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