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재개발을 앞둔 소형 아파트를 전세로 얻어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얇은 현관문과 오래된 보일러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평소 추위를 많이 타기에 겨울을 버텨줄지 걱정이었다. 그렇지만 세월이 머물고 있는 색 바랜 놀이터, 5층 높이까지 자란 나무들, 경비 아저씨와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정다운 분위기를 알아 보고는 마음이 기울었다. 어릴 때부터 친구였던 남편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던 아파트의 풍경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전세 살이는 첫날부터 난관이었다. 계약 날, 집주인은 대뜸 저당 잡힌 대출금을 몇천만 원 더 올려야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어려 보이는 우리에게 소리를 치고 삿대질을 했다. ‘좋은 날이니 좋게 넘어가자’는 부모님의 점잖은 응대 덕에 간신히 계약을 마쳤다. 그럼에도 신혼집은 각별했다. 퇴근 후 들러 낡은 집을 손봤다. 뒤틀린 창틀을 바로잡고 구멍 난 방충방을 수리했다. 밋밋한 벽지 위에 화사한 색으로 셀프 페인트칠을 했다. 아담한 집인 만큼 마치 블록 쌓기를 하듯 공간에 맞는 가구를 들였다. 주로 쓰지 않을 때는 밀어 넣을 수 있는, 좁은 집에 딱 맞는 실용적인 가구들로 채웠다.
우리 집이라 생각하며 열심히 꾸몄지만, 이삿날부터 집주인의 뜻밖의 횡포에 마음에 남은 생채기가 쓰렸다. 이삿짐센터 직원도, 가족들도 돌아간 뒤, 비로소 집에 남편과 나, 우리만 남았다. 긴장이 풀리니 허기가 몰려왔다. 아직 정리가 덜 되었지만, 뭐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싶었다. 낯선 동네를 돌아다닐 기분도 아닌데다, 나갈 힘도 없었다. 서로 표정을 살피던 중 비슷한 마음을 눈치채자마자 동시에 외쳤다.
이삿날에는 짜장면이지!
배달 앱이 없던 시절, 경비 아저씨께 배달 음식점이 실린 책자를 얻어 왔다. 엇비슷한 메뉴였지만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꼼꼼히 살펴봤다. 우리 집에서의 첫 끼니,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주문을 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딩동’ 하고 초인종이 울렸다. 말 그대로 신속배달이었다. 오늘의 메뉴는 짜장면과 탕수육. 갓 뽑은 면이 가진 온기는 두 손으로 감싸 쥔 그릇 바깥에 그대로 전해졌다. 남편이 비닐을 벗기는 동안 나는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볶은 양파의 달큼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아, 맛있겠다.
짜장면을 야무지게 비빈 뒤, 갈색 소스를 두른 면발을 젓가락으로 돌돌 말아 크게 한입 넣었다. 달달 짭짤한 춘장의 풍미와 쫄깃한 면의 식감. 전세살이의 설움을 밀어내는 익숙한 맛이 입안에 꽉 찼다. 다음은 탕수육. 부어 먹을까, 찍어 먹을까 따질 겨를도 없이 서로 더 큰 고기 조각을 앞 접시에 밀어주며 웃었다. 수고한 사람이 더 많이 먹으라며. 연애할 때는 입가에 검은 칠을 하는 게 쑥스러워 짜장면 먹자 소리도 못하던 새침데기였는데. 이제는 바닥에 철퍼덕 앉아 입안 가득 탕수육을 넣고, 입술 언저리엔 짜장면 먹은 티를 잔뜩 내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한집에 사는 ‘가족’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 집에 산지 어느덧 1년을 훌쩍 넘겨, 슬슬 재계약 혹은 이사에 대해 상의를 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법원에서 온 두툼한 봉투가 집으로 날아왔다. 가압류라니? 체납으로 이 집 앞으로 가압류 서류가 온 것이고, 시일이 지나면 경매 대상이 된다는 것. 당시 집주인은 중남미의 낯선 나라에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집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시차가 있어 새벽에 일어나 전화를 걸었지만 몇십 통을 해도 묵묵부답이었다.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불면증에 걸릴 즈음 겨우 연결되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한 우리 부부와 달리 집주인의 목소리는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
가압류는 막았지만, 이사를 하기로 했다. 열심히 꾸며놓은 덕이었을까, 집은 금방 나갔다. 구축 아파트에서의 불편함을 상쇄하기 위해 도시의 외곽이지만 신축 아파트로 이사했다. 다행히 좋은 집주인을 만났고 집도, 동네도 좋았다. 그곳에서 두 해를 살고, 반년인가 더 살았다. 그다음 전셋집은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얻었다. 딱 한 번인가 낡은 보일러가 문제를 일으켜 하룻밤을 덜덜 떨었지만, 다행히 집주인이 신속히 교체해 주었다. 이사를 할 때마다 기합을 넣어 짜장면을 쓱쓱 비비며 새 마음을 다졌다. 이 집에서도 엉겨붙는 짜장소스와 면처럼 끈덕지게 잘 살아보리라.
이 무성한 아파트 숲에서 ‘설마 우리 집 하나 없겠어.’ 라고 말했지만, 꽤 오랫동안 떠돌았다. 아끼고 모아, 드디어 우리 집을 구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 이사갈 집과 동네에 대한 윤곽이 잡혀가던 중, 어느 날 남편의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관심을 두던 동네의 부동산이었는데 오늘만 볼 수 있는 매물이 나왔다는 것. 당시 부동산 정책 변화로 2주택자들이 세금 부담을 피하려 지정 기한 안에 집을 내놓던 시기라 급매로 나온 집이었다. 퇴근 후 남편과 부랴부랴 집을 둘러보았다. 거짓말 같지만 한눈에 알았다. 여긴 우리 집이구나.
인테리어를 마치고 마침내 짐이 들어오는 이삿날. 오랫동안 여러 집을 거치며 통일감 없이 사들인 가구가 집 여기저기에 성기게 놓였다. 당분간 이사는 할 생각이 없고 이 집에 오래 살 생각이라 집에 맞게 가구를 새로 갖췄다. 책장과 테이블이 없는 거실은 텅 비어 있어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 떠나고 둘만 남은 우리 집. 우리는 목장갑을 벗고 우리 집에서의 첫 끼니를 먹기 위해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았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이삿날엔 짜장면이니까.
[커플북] 주말부부는 그 뭐냐, 그거다. 서울 편 - 남편의 이야기
https://brunch.co.kr/@mag-in/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