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스몰 웨딩을 꿈꾼 커플

결혼식 1 : 투엑스라지 웨딩은 될 수 없어!

by 홍지이

남편과는 20대의 딱 중간 지점에서 연인이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때는 뭘 해도 재밌을 때였다. 홍진호와 임요환에 빠져 스타크래프트 경기를 보러 다녔고, 짧은 휴가를 끌어모아 여행도 많이 다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남자친구를 알아 가는 게 제일 재밌었다. 보통의 친구보다는 가깝지만 가족보다는 조금 먼 일상에 들인 한 사람. 이 사람이 내 삶에 자리한 곳의 모호함 때문에 늘 마음 어딘가가 간지러웠다.


남편을 아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보며 듬직하고 똘똘한 사람이라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엉뚱하고 어리숙한 면을 최선을 다해 감추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 면을 내게 하나씩 툭툭 꺼내 보여줬다. 나도 몰래 감춰둔 삐뚤빼뚤한 마음을 슬쩍 내어줬다. 영원히 풀 수 없을 줄 알았던 엠바고를 서로에게만 풀어 우리는 우리 둘 만의 특종이 되었다. 그런데다 어린 연인에게는 서로를 깊이 탐구할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했다. 우린 열정이 넘치는 데다 때마침 어린 연인이었다. 그가 손아귀에 쥔 것은 다 펼쳐 내 보고 싶었고, 표정으로 감춘 마음은 전부 알고 싶었다. 나는 모든 순간을 나인 채 살며 한편으로는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었다. 우린 서로의 속을 해 집고 다니며 열심히 싸우고 화해했다. 관계의 담금질을 거치며 둘은 더욱 단단해졌다.


어느덧 연애 4년 차, 그 무렵 우리의 소꿉장난은 제법 구체적이었다. 물론 나는 서른이 다 되도록 혼자 운동화 끈을 못 매고 젖은 우산은 제대로 접을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남편은 청약이나 전세가 뭔지도 모르면서 청약 통장에 다달이 돈을 입금하는 사람이었다. 서툰 각자의 삶 곳곳에 서로의 자리를 마련하고는, 그곳에 네가 있다면 어떨까를 이야기하며 자주 키득거렸다. 그럴 때마다 우리의 가정문은 '우리가 같이 산다면'으로 시작했다. 어느덧, 둘이 함께 사는 것을 좀 더 구체화해가며 뒤늦게 깨달았다.


아, 결혼을 해야 하는 거구나.


결혼과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하나도 없는 사람, 바로 나다. 특히 직장인이 되고 나서 결혼, 무엇보다 결혼식에 대한 생각이 또렷해졌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의 결혼식을 제외하고는 초대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끌려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특히 직장 동료가 경조사 참석은 사회생활의 연장선이고, 특히 결혼식은 서로서로 가서 자리를 채워줘야 하는 모종의 거래가 형성되는 현장이었다.


내가 결혼식을 안 하고 싶다고 하니, 남편은 그럴 줄 알았다며 각자의 부모님과 상의해 보자 했다. 양가 부모님 중 결혼식 절대 사수 강경파가 한 분 계셨다. 그래서 절충안으로 '스몰 웨딩'을 준비했지만, 결론은 대실패. 어째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나. 스몰 웨딩은 실제로는 투엑스라지 웨딩이었다. 의자와 테이블의 위치 부처 시작해 꽃장식의 종류와 색, 조명의 각도, 케이터링 메뉴의 구성, 입장과 퇴장 위치 등 뭐 하나 대충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심지어 장소를 이용하기 위해 동원할 최소 인원의 규모도 작지 않았다.




결국 우린 결혼식의 메카 서울시 강남구의 한 웨딩홀에서 결혼을 했다. 밥이 괜찮고, 지하철역과 가까우며, 대부분의 옵션이 결정되어 있는 곳 중 신혼여행 일정을 가장 길게 잡을 수 있는 날짜가 비어 있는 곳으로. 인터넷으로 알아둔 곳 중 처음 간 곳에서 그날 바로 가계약을 하고 예약금을 지불했다. 결혼 준비를 하며 가장 공들인 것은 정형화된 예식장에서 그나마 간소화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보는 것이었다.

어디보자, 우리의 결혼식에서 내쫓을 것이 무엇이 있나!
IMG_4429.JPG

(다음편에 계속)


[커플북] 주말부부는 그 뭐냐, 그거다. 서울 편 - 남편의 이야기

https://brunch.co.kr/@mag-in/165


keyword
이전 14화사랑과 우정과 커피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