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결혼 전과 후, 추석의 풍경이 완벽하게 달라졌다.
결혼 전에는 추석이란 곧 ‘연휴’로, 머릿속에서 자동 번역되어 그렇게 읽히곤 했다. 연초가 되면 달력을 보며 추석 연휴가 며칠인지부터 세어봤다. 3일 이면 일본이나 중국, 5일 이상이면 조금 더 먼 나라의 도시로 행선지를 골라잡아 비행기 티켓부터 우선 예약해 놓는 게 습관이었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의 추석도 떠올리면 좋은 기억뿐이다. 부모님이 운전하시는 차 뒷자리에 앉아 과자를 먹고 노래를 부르다 보면 큰집에 도착했다. 가서 하는 일이라곤 어른들이 부치시는 따끈따끈한 전을 손으로 주워 먹고, 사촌들과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거나 오락실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그러다 다 함께 거실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선산에 가서 성묘를 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고등학생 무렵부터는 추석과 맞닿은 시험을 핑계로 언니, 동생과 함께 집에 남아 있고, 부모님만 큰집에 다녀오실 때가 더 많아졌다. 추석 연휴란 학업과 손잡고 쟁취한 간만의 자유 시간! 부모님이 안 계신 집에서 형제자매와 해방감을 만끽했다. 적당히 뒹굴거리다 보면 부모님께 주차장으로 내려오라는 전화가 온다. 차 트렁크에 잔뜩 실린 명절 음식 꾸러미를 옮기러 마중을 나간다. 남은 연휴는 외갓집에 다녀오거나 시내에 나가 추석 대목에 개봉하는 가족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고 외식을 하는 것쯤.
추석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그저 살던 대로 ‘나’로 살뿐, 나 이외에 다른 역할은 없었다. 일상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던 추석이 결혼하고 나니 완벽하게 달라졌다. 아니, 엄청 강한 존재가 되어 내 삶을 흔들 줄이야.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제 추석 연휴는 3일도, 아니 5일도 짧게 느껴진다. 남부 지방에 계신 시부모님을 뵙기 위해서는 최소 1박 2일을 꼬박 들여 다녀와야 한다. 수도권에 살고 계신 나의 부모님 댁은 무박으로 마무리한다. 일정도 남편네 집을 다녀오고 나면 맞추는 것으로 배려해 주신다. 매년 추석마다 이렇게 일정 상 우선으로 배려를 받는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배려해주고 있음을 아는지는 모르겠다.
시부모님 댁에 가면 근처에 계신 친척 어르신 댁의 순방을 돌곤 한다. 입가에 기름을 번지르르 묻힌 채 맨손으로 전을 주워 먹던 꼬마에서 마을 순방이라니. 대단히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 시부모님이나 남편과 함께 가지 않으면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할 분들을 뵈러 가는 것이니. 제대로 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다. 나의 요즘의 일상, 일과 직업, 건강 등에 대한, 그러니까 개인적인 ‘안부’에 관해 물어보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 내가 ‘진짜’ 누군지 보다는 누구의 ‘아내’인지, 누구의 ‘며느리’인지로 정의되는 사람이 된다. 나는 아마 간첩만 아니면 되지 않나 싶다.
추석은 익숙한 사람들의 틈 아무 곳에나 끼어 앉아 있어도 어디든 내가 있을 곳이었다. 나의 어제와 내일에 대해 묻는 이들의 관심을 받고, 연신 입에 넣어 주시는 맛있는 음식이나 씹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제는 매년 봐도 낯선 사람들과의 자리에서 적당히 귀퉁이에 앉아 있는다.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어색하지 않게 분위기를 맞추고 엉덩이는 세상 가벼워야 한다. 누군가 일어나 주방으로 향하면, ‘뭐 필요하세요?’라 외치며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야 하니.(김수영의 풀처럼. 물론 바람보다 먼저 누울 순 없다ㅠㅠ) 익숙지 않은 음식을 먹고, 누군지도 모르는 사촌 어르신 딸 유학 소식, 외삼촌네 아들네 이사 소식, 육촌 아저씨 개업 소식 따위를 들으며 딴생각하는 걸 들키지 않으려 표정 위장을 해야 한다.
본가에 가면 한결 편하다. 잠시나마 역할 놀이를 내려놓고 그저 나로 돌아갈 수 있으니. 아무것도 못 하게 하는 아빠의 큼직한 그늘 아래, 배가 터지게 먹을 걸 챙겨주시는 엄마를 닮은 촘촘한 해먹에 누워 잠시 잊었던 ‘명절의 감각’을 되찾아간다. 물론 결혼 후 남편과 형부라는 새 가족이 생겼으니 결혼 전처럼 온전히 퍼질러 있는 둘째 딸의 모습은 아니다. 언니와 내가 각각 결혼을 하며, 새로 부여된 아내와 처제의 역할로 어른으로서의 1인분의 몫을 해야 한다.
표준 대국어사전에서 ‘어른’을 찾아보니 뜻이 다섯 개였다. 그중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과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에 이은 세 번째 뜻이 무려 ‘결혼을 한 사람.’이었다. 결혼한 뒤 어른이 되어 그런가, 이젠 추석마다 각 집안에서 1인분의 어른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2인분이 되어버린 추석.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아 1인분만 해도 감지덕지하던 결혼 적, 혹은 어린 시절의 추석이 그립기만 하다.
올해 추석은 과연 어떠하려나. 다 모르겠고 송편이나 2인분 배불리 먹고 싶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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