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남편은 대학생이고 나는 사회초년생이던 시절. 우연히 평일의 휴가가 맞아떨어졌다. 간만에 맞이한 느슨한 여유를 바다를 보러 가는 것에 쓰기로 했다. 마침 휴가철 피서객들의 들뜬 열기로 가득했던 해변이 다시금 고요해지는 초가을이었다. 강원도의 손녀였던 나는 7번 국도와 오랫동안 안면을 트고 지냈었기에 그 길에 맞닿은 바다들과도 친했다. 그중 강릉을 콕 찍었다.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타면 2시간 27분 만에 도착하는 가장 가까운 바다였고, 이응으로 결탁한 도시의 이름 속에 이미 동그란 설렘이 잔뜩 일렁이고 있기도 했다. 우리는 기다란 등에 바다를 이고 있는 도시를 느적느적 걸으며 반나절 정도 머물다 달이 뜨기 전에 돌아오기로 했다.
이른 아침, 버스 터미널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더 먼 곳에 사는 자의 초조함은 서두름과 손을 꼭 맞잡는 법. ‘나 도착! 메인홀 시계 아래 서 있을게.’ 뒤로 둘러맨 배낭의 묵직함이 양어깨에 골고루 머문다. 혹시 모를 멀미를 대비해 입에 넣을 작은 씹을 거리와 우리가 좋아하는 과자, 변덕을 부릴 것이 분명한 바닷바람을 막아줄 카디건을 챙겨 넣었다. 가방을 싸며 소풍 가기 전날의 마음을 상기했다. 그때는 학교 운동장에 집결한 전세버스를 탔다. 이젠 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기다린다. 수십 개의 플랫폼에는 저마다 낯선 도시의 이름이 적혔다 사라지고 있다. 버스는 맨몸의 여행자를 먼 도시에 내려주고는 반가운 마중도, 뜨거운 배웅도 없이 홀연히 떠난다. 나도 이젠 마중과 배웅 없이도 길을 떠날 수 있는 어른이 된 걸까. 알고 보니 터미널은 어느 곳보다 어른스러운 장소였구나 라는 생각을 하던 중, 그에게 메시지가 왔다.
‘어디야?’
‘나 시계 아래.’
‘너 없는데?’
초짜 여행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두리번거리지 않으려 애썼던 노력은 허사가 되었다.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눈에 익은 실루엣을 찾았다. 명동 한복판에서도 그의 재채기 소리, 헛기침 소리만큼은 귀신같이 알아채는데. 멀리 걸어가는 뒷모습의 걸음걸이만 봐도 그임을 확신하는데. 어디에도 없다. 전화를 걸었다.
(머리 위로 한 손을 좌우로 흔들며) “여기 나 안 보여?”
“안 보이는데. 시계 말이야 빨간 시계 말하는 거 맞지?”
이곳에 빨간 시계는 없다. 설마, 너 진짜 어디야?
나는 동서울종합터미널에, 그는 남부터미널에 가 있었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그가 오는 동안 나는 급히 티켓 창구에 가서 다음 차편으로 티켓을 바꿨다. 멋쩍어 보이는 남편은 나처럼 설렘을 가득 채운 듯한 빵빵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어째서 남부터미널에 갔냐는 말을 하면 바보라는 단어의 유혹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괜히 가방에 뭘 넣어 온 거길래 그렇게 빵빵하냐부터 물었다. 야무지게 가방끈을 꼬집고 있던 밸브를 쭉 당기니 팽팽한 입구가 느슨해졌다. 벌어진 틈새로 식빵과 딸기잼이 보였다. 신촌에 살던 그의 집 근처에는 제과 명인이 자신의 이름을 상호로 건 빵집이 있었다. 우유식빵으로 유명세를 치른 곳이다. 마침 전날 사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단다. 아침에 출발하려다 보니 식탁에 있는 식빵 한 줄. 그대로 가방에 넣어왔단다. 우리는 매점에서 사 온 뚱뚱한 바나나 우유와 식빵을 먹으며 강릉으로 향했다.
경포대 산책길도 거닐고 야무지게 찾은 원조집에서 순두부도 먹었다. 로스터리 카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테라로사에서 커피도 마신 게 이때였나 그다음 여행에서였나 그건 가물가물. 경포 해변을 거닐 때 역시나 찬 기운을 실은 바닷바람이 다가왔다. 조금은 홀쭉해진 가방에서 카디건을 꺼내려던 찰나, 그의 가방에서 가늘고 길쭉한 것이 쑥 나왔다. 사시사철 열이 뻗치는 그는 필요 없는 머플러, 순전히 나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껏 그는 나를 보고 '맨날 춥게 입고 나와서는 춥다고 하는 사람'이라며(멋 부리다 얼어 죽는다고 말하는 우리 엄마의 말을 순화한 표현) 데이트마다 머플러나 카디건을 챙겨 다닌다.
나는 투박한 식빵 한 줄, 멋대가리 없게 둘러주는 머플러 같은 것에 속절없이 마음이 기우는 사람이다. 동서울과 남부 같은 정확한 방향을 몰라 잠시 헤매는 사람이지만, 그만의 따뜻함은 늘 내 마음에 제시간에 도착할 만큼 반듯하다. 며칠 전, 친구가 반포 쪽, 그러니까 고속버스터미널(고터라고 줄여서 말하곤 한다) 쪽으로 이사를 했다고 하자 남편은 화들짝 놀라 ‘고속버스터미널은 또 어디야?’란다. ‘고터’라고 하자 안심하는 건 또 뭐람.
우리 부부의 결혼 생활은 여전히 어설픔과 다정함 사이의 버스 정류장 어디쯤에서 다음에 올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지난번엔 강릉행, 이번에 올라탄 버스는 제주행이었다.
다음 버스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까.
https://brunch.co.kr/@mag-in/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