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etheia

플라뇌르로서 살아가기

by 레드 피터


화각을 바꾸면서 호된 경험을 했다.


눈앞의 세계를 한장의 꽉 짜여진 장면과

잘려진 의미로 보는 습관에 익숙했던 내게

먼 풍경을 눈앞에 가져다주는 망원 렌즈로 바라보니

온갖 사고와 감각의 혼란으로 가득했던 한 주였다.


고민이었다.

어떻게 하면 눈앞의 세계의 파편을 편집적으로 수집을 할 것인가.

그저 그런 이미지가 아닌 적당한 힌트를 지닌 파편들 말이다.

상상은 하지만 결정지을 수 없는 의미의 파편들.


알수 없는 뼈다귀 조각 몇개 모아놓고 이것은 루시입니다.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들이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아마도 맞을 겁니다.)


미끄러지듯이 지연되며 흔들리는

신화속을 걸어다니는 매일의 삶 속에서

부딛히는 세계는 이미지이다.


고착된 상태로서가 아니라,

언제나 영사하며 드러남과 은폐가 교차하는 사건의 막이다.


투사로 말하자면 빛은 표면을 비추지만,

그 표면은 다시 나를 되비춘다.

그리하여 실재는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라

여러 겹의 막으로 이루어진,

끊임없이 흔들리는 장이 된다.


도시의 얼굴들은 늘 불완전한 드러남 속에서 존재한다.

광고 속의 인체는 과도하게 선명하고,

유리창 속 사람들은 지나치게 흐리며,

어떤 흔적들은 너무 미묘해서 꿈의 잔재처럼 느껴진다.


꿈속의 나비가 자신인지,

자신이 꿈꾸는 나비인지 알 수 없던 것처럼

사진 속의 나는 그와 같다.


나는 세계를 본다고 믿지만,

사실은 세계가 나를 흔들며 또 다른 나를 드러낸다.


그 사이의 떨림을 보기 위해

사라지는 가운데 드러나는 것,

드러나는 가운데 다시 사라지는 것,


알레테이아 그 파열의 틈을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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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틈은,

위에서 아래로 길게 찢어진 채

도시 위에 드리워진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결코 붙잡을 수 없는,

화상을 입을 듯 눈부신 빛으로 채워진 공간.

언제나 신이 현현하던 자리였다.


우리는 그 틈을 찾기 위해 걸음을 옮긴다.

배회하는 플라뇌르처럼,

빛과 어둠 사이를 헤매며

흔적을 더듬을 뿐이다.


그러나 그 흔적 끝에서 마주치는 것은

의미의 도달이 아니라,

의미에 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스스로의 고백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걷는다.

틈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우리를 부르는 듯

또 다른 빛으로 열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