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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ha Mar 17. 2018

 #15. 나눔의 1급수, 모로코

제2부 모로코의 쿠리야(Korean) - 12. 나눔의 1급수, 모로코

12. 나눔의 1급수, 모로코     

  

나눔의 시작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말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조금만 더 넉넉해지고 조금만 더 여유가 생기면 나눔을 시작할 것이라고. 충분히 이해가 가는 말이다. 당장 내가 너무 어려워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는 다는 것이 성자가 아니고서야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모로코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마인드를 지난 수개월동안 바라보고, 느끼고, 경험하면서 나는 이러한 생각이 어쩌면 자기 합리화를 위한 핑계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곳 모로코에서는 나눔, 협력, 베풂의 개념이 그저 너무나 당연한 일상생활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호들갑스러운 ‘대단한 선행’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의 ‘자연스러운 나눔’의 의미가 깊숙이 배어 있었다. 내가 생각한 나눔의 의미보다 훨씬 넉넉한 개념으로서 말이다.     


그럼 이들이 과연 넉넉하기에 나눔과 베풂을 실천하는 것일까? 대답은 ‘NO’이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식생활, 교육, 문화 등 모든 생활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뒤쳐져 있는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나에게 나눔과 도움을 베푼 많은 사람들 역시 절대적 기준에서 넉넉하지 않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이 가진 것의 반을 쪼개고, 그리고 또 다른 사람에게 반을 쪼개어 건네주고 있었다. 작은 것도 함께 하자면서 말이다. 이러한 그들의 넉넉한 나눔 문화는 부족함 많은 나를 언제나 감싸주곤 했다. 모로코 생활에 지쳐 툴툴거릴 때도, 오해로 인해 나 혼자 화를 내고 있을 때도, 열쇠가 없어 집에 못 들어가 발을 동동 구를 때도 항상 먼저 손을 내밀고 다가와 주었던 모로코 사람들. 그들의 배려와 나눔의 문화는 이방인으로 모로코를 살아가던 나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었고, 가족과 같은 따뜻함을 전해주곤 했다.      


모로코의 넉넉한 정을 나눠주던 이웃 아주머니 
모로코의 넉넉한 정을 나눠주던 이웃 아저씨

      

조건 없는 사랑과 베풂, 나눔의 모로코      

  

모로코의 작은 시골마을 티플렛(Tiflet)에 살면서 또는 모로코의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아무런 조건도 기대도 없이 함박웃음을 머금은 채 나에게 손을 내밀고 마음을 여는 사람들을 만났다.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을 잘 연다고 자부했던 나마저도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이들의 따뜻하고 넉넉한 모습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았다. 


‘나눔’이라는 단어보다는 ‘형제’라는 단어에 익숙한 이들을 보면서, 오래전 외국인이 한국에 귀하하며 ‘한국의 정이 너무 좋아요.’라고 엄지를 치켜드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들이 말하던 ‘한국의 정’이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 선진국에서 온 이들이 자신의 본국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조건 없는 사랑과 베풂, 나눔’. 이것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아니었을까? 그리고 난 이곳 모로코에서 그들이 느낀 ‘한국의 정’을 ‘모로코의 정’으로 느끼고 있는 것뿐이 아닐까.      


항상 먼저 손을 내밀고 마음을 열던 모로코 사람들

 

‘발전’이라는 이름의 괴물     

  

하지만 이곳에도 자신의 부와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이런 사람들 중에는 관광업과 상업이 발달된 관광지의 상인들이 많은데 그들은 눈빛부터 다르다. 그 눈빛은 마치 ‘나눔? 웃기지마. 나누면 누가 나에게 밥을 주니? 돈을 주니? 그저 나눔은 내가 배가 부르고 난 후에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고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을까에만 급급하여 관광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곤 한다.


또한 나눔에 인색해진 모로코인 일부의 행태는 씁쓸하게도 한국과 다른 선진국에서도 역시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역시 대표적인 나눔의 문화를 나타내는 ‘정’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를 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 존재하던 ‘인정’, ‘나눔’, ‘이웃의 온정’은
어디로 어떻게 사라지고 변해버린 것일까? 


이것이 ‘발전’이라는 이름에 버려지는 현실인걸까? 


마치 오염물질을 마구 방출한 강에서 온몸이 뒤틀려 괴물이 되어버린 작은 물고기처럼, 우리도 발전이라는 대의만 생각한 채 이익만 좇는 괴물로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온갖 생각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따뜻한 나눔의 청정구역 모로코     

  

모로코 또한 개발과 발전을 꾸준히 해나가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이들의 나눔 문화도 발전이라는 이름 속에 점차 퇴색해 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청정구역인 이곳 모로코가, 모로코의 나눔의 생활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고 끊임없이 초대하고, 조건 없이 베풀기만 하는 모로코의 사람들이 너무 좋다. 


그래서 난 이들이 발전이라는 이름아래 ‘괴물’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마음으로 가르쳐준 모로코. 그들의 ‘나눔의 1급수’에서 내가 조금이나마 깨끗해지고 맑아졌으리라 생각한다. 2년간의 봉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간다면, 모로코의 문화와 음식, 멋진 풍경들도 그리울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리운 건 따뜻한 눈빛과 함께 나눔의 의미를 되새겨주었던 아주머니, 아저씨, 친구들, 아이들의 사랑스런 오지랖 넓은 마음일 것이다.      


모로코의 해맑은 아이들 1(기차에서 만난 형제)
모로코의 해맑은 아이들 2(모로코 명절 때 전통의상을 입은 아이)
모로코의 해맑은 아이들 3(솜사탕이 먹고 싶은 꼬마)
모로코의 개구장이 청소년들
 초코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로 주시던 ‘미나’ 아주머니
아르간 오일을 만드시는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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