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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Aug 27. 2021

콩나물국이 쉬어 버렸다

어제 콩나물국을 끓였는데 오늘 아침 뚜껑을 열어보니 쉬어 있었다. 어제 낮은 덥지 않았기에 냉장고에 넣지 않고 밤새 가스렌지에 올려 두었는데 콩나물국이 쉬어 버렸다. 냄비 한가득 남은 콩나물과 두부를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는데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찾아왔다.  

   

우리 집은 2인 가족인데도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 다 먹지 못하고 계속 냉장고에 버림받고 있던 음식이 결국 음식물 쓰레기가 될 때도 있고 다 먹지 못하고 남긴 반찬이나 밥, 찌개 건더기가 음식물 쓰레기가 되기도 한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할당량은 배불러도 꼭 다 먹는 편인데 남편은 마지막 한 숟가락을 남기는 편이다. 처음에는 그게 참 싫었다. 억지로 먹으라고도 했지만 이젠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걸 알기에 억지로 먹는 걸 본 이후로 그냥 남기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는 건 왠지 마음이 불편하다.     


모자란 것보다는 남는 게 났다는 게 남편의 지론이다. 나는 먹을 만큼만 만들고 덜자는 게 나의 가치관이었다. 결혼 전 가족들과는 고집을 부려서라도 내 뜻대로 살 수 있었지만 결혼을 하게 되니 무조건 나의 가치관을 강요할 수 없게 된다. 가족이라 해 봤자 2인 가족이라 남편과 나뿐이지만 나의 옳음을 무조건 강요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남편도 일부러 음식을 버리려고 그러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온 날은 알 수 없는 불편감을 느낀다. 가족이 남긴 음식까지 꾸역꾸역 먹던 옛 어머니들처럼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 몸이 쓰레기통도 아니고 ‘좋은’ 음식까지는 아닐지라도 ‘먹고 싶은’ 음식을 먹고 싶다.     


그러고 보니 예전의 나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 중 하나는 폭식이었던 게 생각난다. 결혼 전까지의 나는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어떻게 다 들어갈까 할 정도의 양이었고 곁에 있던 언니는 이러다 죽겠다 싶을 정도였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때의 나는 음식의 맛을 몰랐다. 그냥 ‘넣었다’에 가깝다. 사실 지금도 혼자 밥을 먹을 때면 맛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배가 고프면 생라면도 괜찮다. 맨밥도 괜찮다.      


하지만 남편은 다르다. ‘맛있게’ 먹어야 하는 사람이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요리하다가 당근 하나 입에 넣지 않는다. 한때는 하도 배고파서 밥 먹기 전에 다른 걸 집어 먹다가 남편에게 혼난 적도 있다. ‘싸웠다’기 보다는 ‘혼났다’에 가깝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음식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듯하다.      


맛을 음미하고 느끼며 먹으면 왠지 내 몸을 소중히 여긴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성이 내 안에 들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일까. 생각해보니 결혼 이후 폭식이 사라졌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는 건 대단하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 비싼 명품을 몸에 두르라는 의미도 아니다. 그렇다고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라는 의미도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나만큼 타인도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내 부모, 내 자식이 소중하다면 그만큼 남의 부모, 남의 자식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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