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다이어리 18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생각이 갑자기 떠올랐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것은 결국 열렬히 뭔가를 하고 싶은 것이라고.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핑계로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다 밀어버리고, 뭔가 내 마음이 끌리는 것에 몰입하고 싶은 거라고. 그래서 가을이 되고 날이 선선해지면서 한껏 가슴에 계절의 바람이 불어닥쳤을 때, 아 진짜 아무것도 하기 싫다, 라는 생각이 들면 나는 생각하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럼 뭘 하고 싶은걸까?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보면 가끔 감정이 들쑥 날쑥일 때가 있다. 대부분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때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좋아진다. 일을 하다가 소모되는 기분이 들 때 짜증이 나기도 하고, 너무 몰려서 바쁠 때면 슬픈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변하거나 적용되지 않을 때 화가 나기도 하고, 어떨 땐 서글프거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 부정적인 마음들인데 아마도 그런 마음들이 더 진하게 기억에 남기 때문에 아닐까 싶다.
마구 차오르는 것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하나씩 적어보긴 하지만, 정작 진짜로 써야하는 글을 앞두고서는 생각이 많아진다. 분명 생각은 했는데 진짜 그곳에 빠져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운동을 하는게 기분 좋은 것도 몸에 좋은것도 알지만, 몸을 일으켜서 옷을 갈아입고 신발을 신고 나가는 것이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앉아서 하기 시작하면 할 수 있지만 사실 하기까지 아주 큰 산을 넘어야만 한다. 어떤 것은 결국 육체에 속할 수 밖에 없는 것, 결국 체력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릴 때는 몸이 건강하다보니, 오히려 정신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몸이 신경쓰이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신이 몸보다 더 숭고하거나 고상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게 몸 너머에 있는 보이지 않는 부분을 탐구하는 것이 멋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형태를 지닌 것으로 돌아오게 되고, 논리나 이성 같은 것보다는 감정이나 감각에 치우치게 된다. 세계는 외부에 있는 것을 수용하며 인식되지만, 그 인식의 기반은 ‘나’일 수 밖에 없고 나는 온전히 내가 느끼는 세계 안에 갇혀있는 존재일 뿐이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면서도 모른다.
어떤 사건은 나에겐 재료가 된다. 인상이 남는 일이 벌어지면 그것이 어떻게 소화되고 스며들어 나에게 무엇으로 피어날지 기대가 되곤 한다.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아무리 계획해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한 국가가 지닌 문화적 차이는 배우고 공부한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인터넷으로 연결되어있는 세상 속에서 모든 정보를 찾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하물며 신호 시스템 같은 것도 같을 것 같지만 미묘하게 다르곤 하다. 그러니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밖에. 하지만 그 ‘다름’을 경험하며 불편함 너머에 것들을 알게 되고 또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사람을 아는 것도 그와 닮았다. 강한 인상이 남고 자꾸만 머릿속에 맴도는 이야기들, 그것은 언젠가 ‘나만의 것’이 되어서 다시 떠오르게 될 것이다.
최근에 친구에게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제대로 가는 것인지 몰라’ 라는 멋부리는 말을 했다. 사실 스스로 힘들 때마다 비겁한 마음을 감추며 되새기는 말이지만 남에게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술에 취한 탓도 있다.) 문장 자체는 지나치게 멋부린 것 같아 낯부끄럽지만 그 말 자체는 (현재까지는) 나도 단단히 믿고 있다. 어떤 것을 경험하고 성장하기 위해선 편안한 곳에 머물러서는 될 수가 없다. 무조건 힘들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최소한 육체적 고난 정도는 가장 단순한 레벨로 떨어트려야만 한다.
10월이 시작됐다. 단편소설을 두편이나 써야하는데 아직 제대로 손이 나가지 못하고 있다. 매번 닥쳐서 쓰는 편이긴 하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이번에도 그럴까봐 걱정된다. 이번달에는 큰 제안도 하나 있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업무들도 있고, 가족의 생일도 있고 아! 삿포로 여행도 있다. 날씨가 좋다. 최대한 느리게 즐기고 싶지만 빠르게 지나갈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