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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Jun 24. 2021

표백, 장강명

다섯 개의 비극적인 행성.

장강명 작가님의 책이라면 믿고 봐야지요. 나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수록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의심을 기울였다. 그렇지 않을 때에도 어쩌면 자주 그대를 맞잡았다고 하는 게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죽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리워하다니. 표백은 죽음이 여러 번 등장하는 책이면서 작위적이지만 작위적인 느낌이 들지 않아서 그래서 계속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책을 다양하게 골고루 많이 읽지는 않지만 (소설과 에세이 시 위주로 편식 중) 잘 읽히는 책은 하루 이틀 만에 다 읽어버리는 편이거나 아니면 일부러 야금야금 아껴읽기도 하는데 요즘은 읽히고 나서 내 안에서 잊히는 문장들이 아까워서 여러 번 읽으려 한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세 번을 읽었는데 작가님은 뭐라고 생각하시건 간에 내 맘대로 작가님의 0호 팬으로서 2011년에는 표지가 흰색이었던 표백의 개정판(2015)을 다시 읽어보는데 역시나 세연의 자살은 여전히 묵직한 한방이다.



재키. 루비. 적그리스도. 소크라테스. 재프루더. 하비. 메리. 소설 속 인물들에게 대한 작가님의 애정을 들여다보아요. 간결하게 빛나는 문체들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주인공들.

흐릿하게 살아가는 것과 잊히지 않고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정상에서 다른 세계로 탈출하는 젊은이들을. 그런데 정상은 커녕 산중턱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은 어떡하나요. 이제 젊은이가 아니지만 모순처럼 느껴지는 현실에 비굴하게 굴복해버린 젊은이 코스프레 중. 독자들은 책의 결말을 통해 이에 대한 출구 또는 비상구를 찾고 싶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스스로를
구원하라



작가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면이 조금 구겨진 채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사는 게 무엇이길래 이렇게 심각하게 애들을 쓰며 고달프게 살아가는 거냐고 그에 대한 역설처럼 느껴졌다면 제가 너무 급발진한 건가요. 다섯 명의 청년들이 나에게는 아슬아슬한 성냥개비 같다. 팔각형 모양의 상자에서 나오자마자 온몸을 불태우고 순식간에 사그라드는 심지가 약해 불 붙이기도 전에 부러져버리기도 하는. 청년들은 왜 기꺼이 죽음을 택하는지 삶의 의미를 찾다 보니 도달한 결말이라기엔 슬프고 잔혹하다.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걸까 그들에게. 어른들은 늘 새로운 세대들에게 무한하게 기대를 하곤 하고 어떤 기대들은 그들은 죽음으로 몬다. 작가님의 예언 같은 책은 초판 발행 후 10년이 지난 2021년 지금까지도 우리 곁에 가까이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는 사실에 태연한 표정을 짓는 일이 쉽지 않았다.



당신들도 나처럼
상처 받길 바라요



극적인 저항을 위해 주인공들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서서히 그리고 빠르게. 작가님은 항거조차 할 수 없는 인생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자들을 대변이라도 하는 듯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서 죽음을 택한 주인공들을 포함하여 결국 책을 통해 상처를 받으면서도 한편으로 무한하게 위안을 얻는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장난감 같은 세계를 향한 이성의 흔들림을 장 작가님은 이미 알고 계셨던 걸까. 틀림없이 인지하셨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국에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아마도 젊은 세대의 부조리를 누군가는 알고 있다고 온전하게는 아니더라도 심각하게 이해한다고 뭐든 괜찮다고 말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해석은 각자의 몫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다독이며 또 한발 앞으로 가끔은 뒤로 두 걸음 나아가고 나아가는 척하며 내일을 버리지는 말기로.


작가의 말을 읽은 뒤에 다시 덧붙이자면 위대한 일을 해내는 인생만이 의미 있는 삶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 작가님의 생각이라고 했다. 위대한 것들은 결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으며 작은 가치들이 우리를 살아내게 하는 힘이 된다고 거듭 강조하는 모습을 보며 외상센터의 이국종 교수님이 떠올랐다. 늘 아무도 없는 절벽 같은 곳에서 절박하게 우울증과 싸우셨다고 그때 가장 힘이 된 것은 직원식당의 반찬이 맛있는지와 같은 사소한 것들이 었다는 말이 와닿았었는데. 현인들은 어떤 면에서는 완벽할 만큼 닮아있다. 길을 가다 핀 작은 꽃이 너무 예쁘다던지와 같이 일상에서 조각같은 퍼즐같은 의미를 찾다 보면 그것들이 모여 어느새 덩어리가 되기도 하는 순간들이 분명히 찾아올 거라고 우리는 스스로의 가능성을 오늘도 믿어보기로 한다. 기회가 된다면 맥주 한 캔을 들고 양화대교를 걸으며 반짝이며 흐르는 한강물을 바라보며 물고기 모양의 별빛이 같이 떠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찾아봐야겠다.


혹시 의심이 많은 편이라면 표백과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열광 금지, 에바 로드]를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의아해 보이는 일들에 열정을 쏟아붓는 자들의 세계를 넘어다보며 약간의 희열을 느끼게 될지도 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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