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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사람 Sep 25. 2021

영원한 유산, 심윤경

추하고 아름다운 과거로부터.

일제강점기의 잔재인 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벽수산장을 둘러싼 이야기로 윤덕영의 막내딸을 등장시켜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뤘다. 소설이기에 어느 정도 허구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회고하고 청산하는 일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하기에 아무리 반복해도 부족한 듯하다. 읽어나가는 동안에 왠지 모르게 숨을 참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만큼 몰입하게 되는 책이었다.



일반적이지 않은 전개지만 초반부에는 친일을 한 사람은 모두 나쁘다는 전제를 가지고 쓰인 느낌이 아니었다. 원래 앞으로 날아오는 주먹보다 무심하게 뒤통수를 공격당하는 일이 더 아픈 법이니까. 최선을 다해서 객관적으로 담대하게 쓰인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아파서 눈을 더 똑바로 뜨고 활자를 노려봐야만 했는데 심윤경 작가님은 정말이지 스스로에게 현재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묘하게 우아하며 고귀하기까지 한 힘을 가진 이야기꾼 같았다. 억지로 먹으려 하면 뭐든 배탈이 나기 쉬운 법이지만 관점을 다르게 둠으로서 독자로 하여금 질문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아무 쓸모없는 것들에
언제나 매혹되네.




우리의 과거가 어떻게 이루어져서 현재에 도달했는지 그릇된 부분을 가감 없이 보여줌으로써 과거를 다지고 살피는 일이 어째서 중요한 일인지 책을 통해서 조곤조곤하게 알려준다. 참혹하고 배반적인 역사적 사실에 씁쓸해지면서도 조국을 지켜내려 애쓴 이들의 희생을 생각하면 먹먹해졌다. 작가님이 인간은 추하지만 물건은 아름답다고 하셨는데 추악한 인간 덕분에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이제는 그 과거의 존재 여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이며 홍만자회의 흔적까지 남아있는 벽수산장이 더 기괴하게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솔직히 벽수산장은 지리멸렬하게 아름답지만 반대급부로 저속하기도 한 물건 중의 물건이었다.

친일로 자작의 지위까지 얻었던 윤덕영 그리고 그의 딸인 윤원섭의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질게 지켜낼 수밖에 없는 것들을 소름 끼치게 묵살하고 우리는 맹렬하게 부아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영혼의 저편까지 느끼고 만다.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비였던 순정효황후의 치마 안에 곧 빼앗기게 될 옥새를 숨겼던 찰나의 순간에는 이미 알고 있던 이야기지만 눈이 화끈거리는 것은 그 장면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지금 눈앞에서 벌어진 일처럼 생생하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라 믿는다.



먼 훗날 그는 그날 그가 고향에 가서
위태롭게 부서지려 하는 어떤 것,
굳건하지 않았던 신념 같은 것을
보강하기 위한 구호활동을
벌였다고 해석하게 되었다.


언커크에서 통역일을 하는 이해동은 친일에 대항하여 작은 힘이나마 끈질기고 거세게 저항하고자 하는 우리 민족을 대변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작은 불꽃이 일어나고 휘몰아치는 바람에도 꺼질 듯 꺼지지 않고 버티어내는 보통의 국민 역할을 진심을 다해서 거침없이 충실하게 해내기 때문에 그에게 유독 감정이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럽혀진 것, 모욕받은 것,
그렇게 쉽게 조롱받은 것.

그런 것들이 해동의 푸른 새벽에
끝도 없이 파문을 일으켰다.



어쩌면 인생을 우리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겨우 그런 것들로 사소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내세우거나 대충 거부할 수도 없는 진리였다. 미미한 것들로 촘촘히 채워지는 생은 우리가 떨쳐내려 해도 끝까지 달라붙어 떼어지지 않는 각인이 되어 곁을 맴돈다. 거기에 깊고 낮게 울리는 작가님의 목소리 같은 글이 더해져 우리의 한결같이 어지러운 인생에 해답을 제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과오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일이야 말로 올바른 미래로 다가가기 위한 시발점 역할을 제대로 해준다. 이해동에게 있어 손진형 같은 우리들의 일상을 모아서 제대로 된 방향으로 견인해 줄 단 한 사람만 있다면 흔들리고 치이다 모서리가 낡아가는 하루하루를 실선처럼 이어나가는 게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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