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를 지키는 방어기제

무의식이 선택한 나의 방패

by Reflector

하기 싫은 선택을 두고 “이건 전략적인 판단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한 적이 있다.

사실은 두려워서 피한 건데, 그렇게 말하면 마음이 덜 불편해진다.

혹은 화가 나서 폭발할 것 같을 때, 대신 음악을 크게 틀고 따라 부른 적도 있다.


왜 우리는 이런 행동을 할까?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방어기제라고 부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만든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듯, 사용하는 방식도 다르다. 상처가 많으면 그만큼 방어도 많아진다. 하지만 방어기제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내가 그만큼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나는 어떤 방어기제를 자주 쓸까?

돌아보면, 나에게 익숙한 방식은 합리화와 승화다.


합리화는 하고 싶지 않은 선택을 “꼭 필요한 일”처럼 바꿔 설명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기회를 놓쳤을 때, 사실은 겁이 나서 시도하지 못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라고 이유를 붙였다. 그렇게 말하면 당장은 편해진다.

하지만 정말로 전략적 판단이었을까, 아니면 두려움의 변장일까?


승화는 부정적인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 곧장 누군가에게 쏟아내면 관계가 무너진다. 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찾는다. 음악을 크게 틀고 따라 부르거나, 몸이 지칠 때까지 운동을 한다. 그렇게 감정을 바꿔 흘려보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렇다면 이건 단순한 회피일까, 아니면 나를 살리는 기술일까?


이 과정은 단순한 기분 전환이 아니다. 몸속 호르몬이 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불안이 쌓일 때 분비되는 코르티솔은 산책으로 낮출 수 있고, 슬플 때 필요한 세로토닌은 음악이나 과일이 도와준다. 분노가 가득할 땐 음악이, 무기력할 땐 짧은 운동이 아드레날린을 깨운다. 불면에는 햇빛이 멜라토닌을 활성화한다. 몸과 마음은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방어기제를 알게 되면 내 행동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내가 왜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는지, 왜 공격적으로 말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단순히 “내가 예민하다”가 아니라, 무의식이 스스로를 지키려 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방어기제는 앞서 말한 메타인지와도 이어진다. 나를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무의식의 그림자를 의식 위로 끌어올린다.


돌아보면 합리화와 승화는 내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버티게 해준 방패였다.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상처를 견디는 방식이었고 다시 일어서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keyword
이전 05화에니어그램과 발달 단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