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투병기

7년의 시간들

by 한승훈

2016.04.15


몸이 이상했다. 7년 전 항암을 하고 치료를 끝낸 부위가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설마 이제 와서 그러진 않을 것이라고, 불안감을 애써 지우며 시간이 지나 괜찮아지기를 기다렸다. 2015년 11월이었다.


한구석에 불안감을 쌓아놓고 멀쩡히 생활을 했다. 종종 크나큰 폭우가 몰아치긴 했지만 4월에 정기검진을 바라보며 제출기한이 남은 과제마냥 불안을 대했다. 하지만 가끔 몰아치던 폭우가 잦아짐에 따라 정상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해 나가기 힘이 부쳤다. 그리하여 정기검진을 당기기 전, 다른 질환의 가능성을 보기위해 병원진료를 받았고, 다른 병명을 받아 약을 먹어 치료를 받아보았다. 하지만 역시 치료가 되지 않았다.


그때쯤에는 이미 몸의 면역이 거의 다 망가져있었다. 열이 계속 나며, 몸이 항시 무겁고 입안이 온통 헐어 제대로 말하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질환이 원인인지, 스트레스가 원인인지는 아직도 알 수 없으나 최근 몇 년 간 가장 안 좋은 몸 상태를 보이고 있었다. 오죽하면 일을 그만두고 몇 달 정도 집에서의 요양을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바로 병원에 가지 않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사실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2014년에 한 번의 완치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손목에 완치날짜의 타투를 새기기도 했다. 그는 투병이라는 것이 완치의 기쁨과 무관하게 나에게 큰 의미를 던져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다른 큰 통증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많이 전이되었을 확률도 적고, 수술을 비롯한 일 년여의 시간이면 또 다시 치료가 끝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가장 두려웠다. 7년 전의 나는 어렸고, 또 약했다. 준비하지 않은 고통의 시간을 감내하기에는 마음의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나와 타인의 약해짐과 악해짐, 무관심과 잊혀짐을 깨달아 무던하게 넘기기에는 나의 고통과 비슷한 정도의 사랑과 관심을 원했었다. 당연히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고 소화해내기까지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치료가 끝난 후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지 않게 되었다. 나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관계를 만들지 않았고, 시간도 보내지 않았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행동과 말에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무엇이든 애착이 있으면 힘들어지기 마련이니 많은 것에 애착을 버렸다. 그러한 모습이 괴물 같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나도 사랑을 받고 상처를 받고 슬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도 어렵고 많은 과정과 사고가 필요했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을 쌓아왔다. 그 시간동안의 나를 후회하거나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7년의 시간을 켜켜이 쌓으며 나를 만들었고, 나는 7년의 시간이 되었다.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름의 의미를 갖고 지금의 나, 그리고 항시의 나를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죽는 것은 크게 두렵지 않았다. 항시의 나를 보이고 죽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수 있다 생각했다. 또 다시 치료과정을 겪는다면 내가 쌓아놓은 7년은 곧 사라지고 말터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는 부서진 논리를 버리고 또 다른 세월을 찾아야 할 것이었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


나는 좀 더 무사히 살고 싶었다. 한 번과 두 번이 가지는 의미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는 부분에서의 고민도 당연히 가지고 있고, 그 뿐 아니라 두 번의 투병이라면 명확하게 인생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크게 나빠지는 것이 사실이니까 누군가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도 소중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아마 힘들 것이다. 삶을 살 목표를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나는 그렇게 되기도 어렵고 그 자체가 누군가에게 반드시 폐가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던질 수 없다.


그래서 나는 70%의 완치율보다 30%의 완치율을 원했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무서웠다. 길게 남은 많은 시간을 무엇을 잡아 살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러한 고민을 안은 채 병원진료를 앞당겨 한 달 일찍 검사와 진료를 받았다. CT와 피검사를 본 의사는 의외로 깨끗하고 아무것도 없다고 평소와 같은 표정을 지었다. 불안에 떨던 나는 약간의 안도감을 되찾았으나 환부가 이상함을 의사에게 알렸다. CT를 살펴보던 의사는 아마 이상이 없을 것이니 안심하라는 말을 덧붙이며 환부의 MRI를 촬영해보자고 했다. 그러한 괴로움을 만들어가는 와중에도 새로 오신 관장 수녀님의 눈치를 보고 “재발하더라도 센터는 바로 그만두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검사와 진료를 받았고, 이후 MRI 촬영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갔다. 그리고 나의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슬펐다. 슬프고 괴로운 와중에도 다행이라 생각한 것은 병원에 혼자 갔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나 가족과 함께 병원에 있었다면 그만큼 슬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나마 온전한 슬픔을 찾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작은 위안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많이 역시 많이 달랐다. 7년 전에는 화도 많이 나고 누구를 원망해야 되는지도 모른 채 원망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원망할 사람도 탓할 사람도 없으니 마음속에 남는 것이 없어져 버렸다. 텅 빈 마음을 지켜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처음 아팠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


그 후 일주일동안 나는 제정신을 찾지 못할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매일 울었고 매일 슬퍼했으며 매일 괜찮다 말하고 매일 아무렇지 않아했다. 3월 31일 치료과정을 들으러 가기 전 센터에서 한 수녀가 나에게 의미 없는 위로의 말을 던진 후 말했다. “표정관리 좀 해,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선생님한테 안 좋아” 살면서 들은 이야기 중에 가장 황당한 이야기였다. 나는 내가 그런 것을 신경을 때가 아니니 그런 말을 하지 마시라고 대답했다. 이후 진료를 받고 관장 수녀님과 치료과정과 이후의 상황 및 근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나에게 말씀하셨다. “선생님 감정조절 좀 잘 하셨으면 좋겠어요”


아까 그 수녀였다. 그 수녀가 자신이 나에게 한 “표정관리를 하라”라는 말은 하지도 않은 채 내가 그러한 이야기를 했다며 관장수녀님께 불쾌감을 표시한 것이었다. 내가 죽어가고 삶에서 가장 괴로운 시간을 보내던 그 때에도 그 수녀는 너무나 이기적인 말을 진심으로 한 것이다. 그 수녀는 더 이상 사람이라기보다 소시오패스에 더 가까운 짐승이었다. 세상에는 그러한 금수의 모습을 한 사람도 있다. 관장수녀님께 그 수녀가 나에게 한 말을 다시 전하고 그 전에 있었던 일들도 모두 말한 후 명확하게 불쾌감을 표시했다. 다음날에는 장문의 메시지와 함께 명확한 조치를 해달라는 요구를 하기도 했다. 이에 관장님은 나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했지만 사실 그분이라도 달라봐야 얼마나 다르겠는가, 대부분의 수도자들이란 부족하고 이기적이며 그들끼리의 삶에 만족하며 서로를 칭찬해주기에 바쁘다. 그들은 스스로를 반성하기보다 타인의 반성을 바라는 경우가 더 많다. 또한 잘못한 타인에게 사과하지 않고 하느님께 사과를 드린다. 그들은 그것이 비정상적인 사과과정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진료를 받으며 수술을 하고 치료가 끝날 것이라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은 후 기쁨의 아이러니를 느끼며 나의 심리상태는 많이 호전되었다. 수술을 하고 치료가 끝나니 마음의 무너짐도 약간 줄일 수 있다 생각했다. 물론 나에게는 아직 많고 중요한 과제들이 남아있지만 모르는 것에 대한 답을 찾지 않고, 모르는 것을 모르는 채로 놔두며 시간을 보내보기로 했다. 시간을 두며 답을 찾으면 좋은 답이 나도 모르게 끼워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4월 3일에는 삼성병원에 입원을 했다. 수술하기로 한 누군가가 취소를 해서 빈자리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의 공기를 씹으며 다시 돌아왔다는 실감을 했다. 삼성병원 암병동 6층 병실은 수술병동으로 대부분의 환자가 경증이었고 머리카락도 다 있었다. 가장 어린 나만 재발환자로 가장 오래된 환자였다. 불안감을 잊고 일상의 만족을 높이기 위해 병실에서는 계속 책을 읽었다. 병실에서 5일 내내 책을 본 사람은 나뿐이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주었고 그에 큰 고마움과 감사를 느꼈다,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위로와 엄마를 위로해주어야 한다는 말을 번갈아들으며 나는 더 괴롭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어떠한 말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지도, 어떠한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그러한 대화를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할 자신도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생각보다 괜찮아 보인다며 안심하지만 내가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쓸 때에는 어느 정도 괜찮아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한다. 사람들은 홀로 이겨내는 괴로움의 과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너가 괜찮으니 다행이라 말한다. 나는 당연히 괜찮지 않다.


5일에는 수술을 했다. 척추마취로 하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을 마친 후 병실로 돌아오니 생각보다 더 훨씬 더 아팠다. 그렇게 내 생애 꼽을 정도의 통증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 다행히 이틀이 지나 퇴원을 하고 글을 쓰는 오늘, 일주일 후의 밤은 통증이 많이 가셨고 일상생활도 가능해졌다.


이번 주부터 출근을 하고 있지만 다음 주 중으로 퇴사를 예정에 두고 있다. 이 와중에도 평가 때문에 매일 일을 하고 평가준비를 하고, 평가를 받게 되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하게 하고 그만두고 싶다. 나올 땐 나오더라도 깨끗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나와야 나도 만족스러울 테니까. 나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람이다.


이번 치료기간동안 힘들었던 것은 나의 감정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나의 슬픔과 괴로움, 고통, 힘듦을 온전하게 느낄 수 없고, 나의 상태와 모습으로 인해 타인에게 괴로움을 공유하게 되는 것에 큰 미안함을 느껴 항상 나의 모습을 조절했다. 나의 가치관이 나를 옥죄어 괴롭혔다. 그러다보니 내가 어떻게, 얼마나 힘들지 알기 어려웠다. 조금 더 이기적이 되어보고 싶다. 내가 쌓은 7년은 결코 무너지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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