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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너 Jun 14. 2020

“자립과 고립 사이의 어느 지점에 선 사람들”

신간 <나는, 나와 산다 / 김민아 > 후기


“완전한 자립은 경제적 독립이야.”


군에서 막 제대한 아들에게 약간의 용돈을 주며 한 말치고는 너무 냉정했던걸까. 녀석은 유럽여행을 갈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이유로 아르바이트를 두 개나 시작하더니 코로나가 비행기 항로를 막아선 늦겨울 즈음해서야 여행의 꿈을 포기했다. 그래도 아르바이트 돈벌이는 멈추지 않았다. 정말 독립할 생각인가? 덜컥 걱정이 돼서 물어보았지만 원래 아들이라는 종류의 인간은 대답을 잘 하지 않으니까. 그저 아버지에게 손을 벌리는게 민망해진 나이가 되었을 뿐이라고 미루어 짐작하기로 한다.


독립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기특했지만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언젠가 둥지를 벗어나 저 만의 세상을 가지게 될테지만 아직은 이제 막 군대를 제대했을 뿐인, 준비 안된 미성년 아닌가. 녀석의 심지를 굳게 해주기 위해 일부러 냉정한 말을 했지만 사실, 이십대 청년이 독립해 나가 혼자만의 경제생활(자립)을 시작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는 바 아니다. 게다가 서울의 하늘 같은 주거비용을 생각할 때 정말 녀석의 ‘자립’은 요원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독립을 한다면 어디서 살게?” 지나가는 소리로 물어봤을 뿐인데 아들의 대답은 단호했다. “고시원도 좋아”


어느 부모가 멀쩡한 빈방을 놔두고 자식을 고시원으로 내보내고 싶겠는가. 나는 태세를 전환해 독립생활의 어려움을 줄줄이 늘어놓다 말고 생각한다. ‘혹시 그건 자립(自立)이 아니라 고립(孤立) 아닐까.’


1인가구가 늘었다는 뉴스를 들은지 꽤 오래된거 같다. 식당에서 혼밥이나 혼술을 하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뜨일 무렵, 나는 마트에서 1인용으로 포장된 두부 반모를 보고서야 1인가구의 실체를 실감했다.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던 산아제한의 시대를 관통하여 늘 4인가족을 가족의 기본 단위로 생각하던 습관 때문에 혼자 사는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 혼자 산다>나 <미운우리새끼>와 같은 티비 프로그램에서 혼자 사는 연예인들의 코믹하고 발랄한 모습을 못 본건 아니지만 그들의 유쾌함과 자유로움은 경제적 풍요함이 전제된 결과일 뿐이고, 결혼을 못해(?) 궁상맞게(?) 사는 컨셉으로 시청자의 웃음을 낚는 도구일 뿐이다. 티비는 혼자 사는 현실의 삶을 판타지로 왜곡하고 있었다.


우리사회에서 혼자 산다는 건 불편과 편견과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고행이다. 법적 혼인으로 구성된 가정이 모든 사회ㆍ복지 정책의 기본단위인데 혼자 산다는 건 좀 무모하거나 어리숙한 선택이 아닐까. 왜 그들은 혼자 사는 삶을 택했을까.


김민아의 신간 <나는, 나와 산다>는 “나와(with me) 사는”, 혹은 “나와서(out of family) 사는” 사람의 내밀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우리 사회에서 혼자 산다는 건, 작가의 말을 빌어 설명하자면 “1인용 구명보트에 몸을 실은 채 망망대해를 떠다니는”(책 24p 인용) 삶이다.


“솔직히 그다지 외롭지 않다”(115p)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그들은 커플들로 가득한 이케아 매장에서 외로의 실체와 마주하고(22p),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죽음을 걱정하고(65p), 쉬운여자로 오해받고(92p), 국가로부터 무임승차자로 낙인찍히고(135p),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을 전전하고(154p), 병원에 가면 보호자를 데려오라고 종용받는다(198p).


어쩌면 혼자 사는 삶이라는건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피치 못할 현실을 맨몸뚱이 하나로 묵묵히 감내하는 상황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사는 삶의 문제가 심각했던지 영국은 ‘외로움 담당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두고 국민들의 ‘외로움’을 사회문제로 다룬 다고 한다. 경제적인 문제든, 건강상의 문제든 고립된 개인이 손을 벌릴 수 있는 곳은 가족 아니면 잘해봐야 친구라고 생각하던 우리 입장에서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국가는 사회보장·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헌법 제34조)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모든 국민이 쾌적한 주거생활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헌법 제35조)




책을 읽는 동안 별 의미없이 읽었던 헌법 조항들이 어렴풋이 스쳐갔다. 정말 국가는 인간다운 생활을 할 국민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간다는건 개별적 권리주체들의 삶의 양태가 변하고 있다는 사회적 메시지다. 자립(自立)은 경제적인 의미 뿐만이 아니라 개인들이 가족을 소단위로 한 가족주의적, 국가주의적 굴레를 벗어나 비로소 독립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 진화한다는 의미다.


이들이 끈끈한 연대와 탄탄한 사회안전망 안에서 자립(自立)할지 혹은 고독과 무기력과 빈곤 떄문에 고립(孤立)될지는 우리 공동체의 건강성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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