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었지만 한여름으로 달려가는 길목이었음에도 입김이 나오는 계절처럼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부드러운 따뜻함이 고팠다. 그대로 계속 길에 있을 수는 없어 학원 사람들을 한 사람씩 떠올려보았다. 그래 C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해야겠어!
"선생님 자는데 깨워서 미안해요. 근데 나 좀 도와줘요. 지금 집에도 못 들어가고 주변만 계속 돌고 있어요."
"네?? 이 새벽에 무슨 일이세요?"
B영어 강사는 담당하는 과목도 학교도 달라 나와 몇 마디 말도 나눠보지 않았던 사이였다. 4시가 넘은 새벽 시간에 전화는 더더욱 생각하기 어려운 사이였는데 얼마나 급박한 상황이었을까 같이 긴장이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중등부 원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는 사이 몇 번의 전화가 오간 후 상황이 일단 마무리되었다는 연락을 받고서야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쉽게 이루지 못했던 잠으로 오전을 날리고 출근을 했다. 평소보다 더 조용했지만 눈빛과 눈총이 오가는 교무실은 소리 없는 전쟁터처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과 사람들의 가면을 마주하느라 수업준비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몇몇의 수업을 겨우 해내고 공강시간이 있어 가만히 앉아 생각을 더듬었다. 한참 전부터 들려오던 P강사가 나를 싫어한다던 말, 오해겠지 해왔었다. 과목도 학교도 달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던 사람이었고 낯가림 있는 소심한 20대 중반의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폐를 끼칠 일도 오해를 살만한 일도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사실이라면 억울할 일이었었지만 아무리 떠올려 봐도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 데다, 뭐 또 그렇게 아쉬울 것도 없어 그냥 그렇게 지냈었다. 그 해 7월 초에도 세 사람이 나란히 앉는 긴 책상에 가운데 내 자리만 빼고 자두를 놓던 여자. 괜스레 가만히 있는 사람 바보 만들어 버린 그 여자는 새벽에 막장 드라마를 찍었던 여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의 한 해 전 일 년 동안 내 생각을 전 뒤집듯 이리저리 뒤집게 하고 서운함과 배신감 속에 살게 한 여자도 그 무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사람들과의 갈등이 어려운 나는 웬만하면 부딪히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오해받는 상황이 몇 가지가 이어지니 가만히 있다간 정말 가마니 취급 당하게 생겼다는 결론이 났다. 나를 싫어한다던 P강사와 따로 만나자고 했다.
"P쌤,날 왜 싫어하는데요?"
"뭐라고요? 내가 쌤을 싫어한다고요? 난 쌤이 날 싫어한다고 들었는데요?"
누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는지 서로 대답을 하고 또 듣고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간질. 한 사람이었다. 나와 같은 과목 강사로 가끔 도움을 주면 어린아이처럼 맑게 웃던 그 여자. 행여라도 몇몇의 강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다른 이의 험담을 하면 그러지 말자던 천사 같던 사람. 사람이 무서워졌다. 이대로는 정말 이상한 나라가 될 것 같은 분위기에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중등부 원장에게 시간을 내어달라 청했다. 학원에 들어간 지 2년이 넘는 동안 한 번도 불만을 말한 적 없던 내가 어두운 얼굴로 퇴근 후 드릴 말씀이 있다는 말만으로 놀란 눈치였다. 모두가 퇴근한 10시. 원장실에 들어가 앉자마자 얘기를 시작하려다 말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다. 그동안 마음 한 구석에 숨겨 놓고 무시한 채 지내왔던 억울함과 서운함이 다정하게 무슨 일이냐고 묻는 원장의 말에 터져버렸었나 보다. 겨우 진정하고 조곤조곤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음 날 조회 시간이 되자 화가 난 얼굴로 교무실에 들어온 원장은 책꽂이에 꽂혀 있던 20개가 넘는 출석부를 내던지며 소리쳤다.
"미꾸라지 몇 마리 때문에 학원 분위기가 이게 뭡니까? 나 가만히 있지 않아요. 각오들 하세요!"
그 뒤 미꾸라지 붕당의 결론은 당연하게도 차례차례 모두 해고였다. 그 다섯 여자들은 간도 참 크지. 이간질과 따돌림, 험담 등 내가 아는 이야기 외에 중고등부 원장의 외삼촌으로 6개의 학원을 가지고 있었던 나이 든 총원장과 한 여자 강사를 엮는 말을 만들어 그의 아내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를 당하느니 마느니 하기도 했었다. 아직 사회 경험이 많지 않던 나이에 보고 들었던 일들로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가 들었었다. 나보다 세 살 어린 여자부터 10살 이상 많던 여자까지 여자 많은 곳에서 지내며 그들의 시기 질투하는 모습에 질렸고, 그 속에서 숨죽이며 지내던 남자 강사들의 꼴불견스러운 모습에 사람이 싫어졌었다. 때마침 3년 동안 결혼을 종용하던 남자친구가 도피처로 느껴졌고 결혼을 핑계로 학원을 그만두던 날 물갈이 해놓고 왜 가냐던 우스갯소리도 들었었다.
사랑받고 환영받고 대접받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겠냐만은 그렇다고 그것들을 위해 남을 이간질하고 따돌리고 없는 말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자신의 사람을 만들고 그들의 영향력을 넓히는 행동이 이해받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비난받기 싫어서 알면서도 쉬쉬하던 분위기를 이어가는 꼴이 보기 싫었고, 무엇보다 억울한 일을 견디는 것에 한계가 와 터트렸었다. 나의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내 말을 시작으로 한동안 여러 사람이 돌아가며 불려 갔고 누군가는 녹취도 당했었고피바람이 불었었다. 물갈이해놓고 왜 가냐던 말은 분명 나를 아껴주던 사람의 농담이었지만 그 또한 듣고 속으로 놀랐었다. 내가 총대를 메었고 모두를 처단한 것처럼 들렸고 누군가는 그간의 힘들었던 분위기를 내 탓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괴로웠으니. 내가 없는 그곳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그려질지 남아 있던 사람들은 혹은 내가 아는 사람들은 진정 그 속내가 다들 어떠한지. 정작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인지. 결국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항변한 것이고 그들의 행적을 보고 들은 그대로 밝혔다지만 결론적으로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아 버린 것 같아 한동안 마음이 복잡했었다. 어느 날은 미꾸라지 붕당원들에게 복수당하는 악몽을 꿀만큼.
한참이 지난 뒤 그 다섯 여자들은 각자 다른 학원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다시 같은 행동을 하여 또다시 해고당했다는 말을 듣고는 그나마 마음이 가벼워졌었다. 역시 사람은 변하지 않는구나. 내가 그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서였으리라. 나를 포함한 보통의 사람들이 채우고 싶은 자신들의 욕구를 위해 한다는 행동이 누군가를 빠져 나오기 힘든 늪과 같은 트라우마에 빠트리기도 혹은 평생 없어지지 않는 흉터가 남는 상처를 내기도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여전히 나는 말로써 혹은 마음속으로 매일 죄를 짓고 또 반성을 한다. 진짜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만, 최소한 미꾸라지 붕당원이 되고 싶지는 않기에 날마다 나아지기를 노력해 보는 중이다.
길고 황당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붕당간의 일들은 더 많이 있지만 (결국 시기 질투이고요 ) 특별히 기억에 남는 한 팀의 이야기를 꺼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