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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Feb 04. 2024

아등바등 살아봐야 뭐가 중헌디!

지금, 존재하는 내가 제일. 

Present : 현재의(형), 선물(명)


"너 이렇게 할 거면 그냥 때려치워!"

"할 거야, 한다고!"

 방학 시작 때는 늘 그렇듯 야무지게 계획을 세운다.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인증 시스템에도 발을 들여놓고 주말에는 무얼 할지 호기롭게 가득 찬 스케줄을 짠다. 하지만 여러 좋은 습관이 한꺼번에 만들어지기는 쉽지 않은 일. 처음 며칠은 어찌어찌 끌고 나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핑계 저 핑계로 흐트러지고 그런 날들이 이어질수록 내게도 아이에게도 실망을 하게 된다. 그 실패감과 실망감을 결국 아이에게 퍼붓는 날은 자는 아이 옆에서 부족한 엄마가 미안하다며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한다. 아직은 자는 모습에서 어렸던 아이가 보이면 내가 이 아이에게 무얼 보여주고 들려준 건지 깊은 후회가 되기에. 지금이 제일 예쁠 때고, 내 눈앞에 있는 하나뿐인 내 아이인데 하며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모두 기억하고 싶어진다. 나보다 먼저 가버린 그들을 떠올리며.




 "저기.. 건강 괜찮으신 거죠?"

푹 패인 두 볼에 거무스름한 눈가. 고작 두 번째 만남에 소심한 나도 대뜸 묻게 되는 별명이 해골인 남자.


 탕평책이 절실했던 대형 학원의 중등부 원장이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던 말 그대로 많은 학생들과 강사들을 이끄느라 잠은 늘 부족했고 스트레스는 가득이었을 터. 자리가 그러하니 그러는 것이 당연한 듯 여기는 강사들에 싸여 있다가 오는 관심이 따뜻했는지 어떻게 보면 무례한 내 질문에 감사해했다. 함께 했던 3년여의 시간 동안 피곤해 보이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예민해 보이는 얼굴과 달리 미소와 유머를 잃지 않으려 애쓰던 모습이 더 안쓰럽던 그였다. 잦은 술자리와 부실한 식사, 긴장을 늦추지 않으려는 몸짓으로 자주 들이붓는 카페인과 니코틴의 총합은 간암 말기였다. 서울의 큰 병원에서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집에서 편안하게 보내시라며 입원도 시켜주지 않았다고 했다. 결국 집 근처 병원에서 지냈고 같은 하늘 아래 사는 것이 병을 알고 딱 한 달 허락되었었다. 건강검진에도 소홀했고 스스로를 챙기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사람처럼 산 결과였지만, 이제 8살 4살이었던 두 아이에게는 하나의 세계였던 사람이라 안타까웠다. 고작 40대 초반의 아빠를 보내던 화장터에서 해맑게 뛰어다니는 4살 아이를 보고 있자니, 내겐 아직 아이도 조카조차도 없던 때였지만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아이의 미래가 어떨까 심장이 아려왔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느라 고립된 채 살았고 연속 3차 시험에서 떨어진 조카를 중등부 원장 자리에 앉혔던 총원장은 자신의 탓이라 여겼다.


 시기와 질투가 난무하는 곳에서 얻은 귀한 인연.


 힘을 갖기 위해 모인 이들이 물을 흐리던 그곳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이었다. 각자 결혼을 하고 전국으로 퍼져 살다 보니 10년 넘는 기간 내내 명절에만 겨우 얼굴을 보아 왔었다. 몇 시간 뒤에 있을 추석 모임을 기다리던 중 장소 변경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으로. 갑작스러운 소식에 어리둥절한 채로 급히 달려갔다. 추석날 저녁을 가족들과 즐겁게 보내고 잠이 든 지 세 시간 후 새벽, "소연아, 나 가슴이 너무 아파. 나 좀 병원에 데려다줘!". 이 말을 끝으로 소연쌤의 남편은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 버렸단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심정지가 왔고 심폐소생술과 제세동기를 이용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남편 옆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도 할 수도 없었다며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듯 말하는 소연쌤. 현실을 인지하기 어려웠던 그녀였으리라. 잠옷바람에 외투만 입고 나왔었는데 검은색 상복으로 갈아입는 동안에도 꿈같았고, 여전히 꿈 속인 듯 싶다는 그녀 앞에서 어떤 위로의 말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지병 하나 없이 건강했던 사람이라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다며 뭐 이런 경우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소연쌤 옆에는 두 딸아이가 이모가 사다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웃고 있었다. "소연쌤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해. 맨날 남편이 다 챙겨줬었는데 이제 어째 우리 소연쌤.." 모임 안에서도 소연쌤과 더 친했던 동료가 하는 말을 들으며 소연쌤 남편의 영정 앞에서 그곳에서도 당신의 아내와 두 아이들을 잘 지켜달라고, 꼭 그렇게 해 달라고 빌며 장례식장을 나오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주소록엔 여전히 그대로인 그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깜깜함 속에서 새어 나오는 휴대폰 불빛에 뭐가 왔나 싶어 열어 본 나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버렸다. 설 뒷 날 가족과 영화관 나들이 중이던 내게 누군가 잘못 보냈을 거라 생각한 메시지가 왔었고 방해받고 싶지 않았었다. 낯익은 이름이 아니었기에. 휴대폰 옆구리에 있는 버튼을 길게 누르고 휴대폰이 꺼지던 그 순간, 조금 전에 보았던 이름이 번뜩 떠올랐다. 다시 급하게 켠 화면을 뒤져 메시지를 끝까지 올려 보니 너무도 익숙한 이름이 쓰여 있었고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풀렸다. 익숙한 그 이름은 하얀 피부에 눈,코,입 그리고 말투와 마음까지, 어느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던 그녀였다. 함께 일하는 동안 이 사람과 친하다는 것이 자랑스러울 만큼 감동이었던 그녀는 누구보다 건강하고 밝았었다. 아이가 어려 집안에서 육아만 하고 있는 우울한 내게 말동무가 되어주고 내 편의를 모두 봐주며 콧바람을 쐬게 해 주던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아이를 가졌을 때 알게 된 유방암을 이유로 한동안 만나지 못했었다. 다행히도 수술 후 금세 좋아졌고 아이도 건강하게 태어나, 만나지 못했지만 잘 지내리라 안심하고 지내던 중이었다. 잠시의 생각 뒤에 그녀의 남편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다시 보고 또다시 보고 더 이상 눈앞의 영화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아 밖으로 나왔다. 함께 어울리던 다른 동료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더니 최근 뇌종양이 생겼었고 항암치료를 받고 있었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뵌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하루에 겨우 포도 2알 정도만 먹을 수 있었고 바닥난 체력과 통증 때문에 투여한 주사약으로 온종일 잠만 자는 공주였다고 하셨다. 자던 그녀 옆에서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시며 "우리 공주는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하며 혼잣말을 하시는 것을 잠시 깬 그녀가 눈도 뜨지 않은 채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하고 따라 했던 말이 마지막이었다고. 아빠 품에 안긴 7살 딸아이는 엄마 사진이 왜 저기에 있냐고 맑은 얼굴로 영정 사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은 결국 죽을 것을 알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 죽음이라는 것은 내게는 언젠가는 오겠지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오늘을 살아간다. 그 일은 나중에, 조금 더 안정되면, 조금 더 부자가 되면,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이라며.. 오늘만 살 것처럼 모든 일에 후회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처럼 지나온 삶을 다시 돌아가 살 수는 없음에도 가끔은 과거의 한 때를 지나는 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고 하지 못했던 말을 하며 후회로 남았던 부분을 수정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제대로 인지하고 꽉꽉 채워 산 날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인정하지 않아도 나이는 먹어 벌써 마흔 중반을 달려가고 있는 내 나이가 어색하다. 그런데 며칠 있으면 떡국 한 그릇에 한 살을 더 먹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은 대체 누가 한 것인지. 동안이던 내 얼굴에 주름이 얼마이고, 바란 적 없지만 체력은 해마다 떨어짐을 느낀다. 노력도 세월은 이기지 못하더라. 이만큼 살아오다 보니 주변에서 먼저 가는 사람들이 생겼고 그럴 때마다 한동안 인생무상을 느끼며 일상이 허무해졌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당장은 여러 이유로 원하는 그것을 하지 못하고 미래의 나에게 미루며 버티듯 살아내지만 그래도 한 번씩은 더 늦기 전에 지금, 존재하는 나 자신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 가득 담은 표현을 하는 것으로 미래의 내가 이 시간들로 돌아와 수정하고 싶은 후회가 남지 않게 살아내고 싶다. 





* 본문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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