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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Jan 21. 2024

미꾸라지 다섯 마리(1)

픽션 같은 논픽션. 조선시대 붕당정치 현실판 체험기

나란히 세 사람이 앉아 있는 책상에 가운데 자리만 쏙 빼고 양쪽 자리에 자두를 하나씩 두는 그 여자. 가운데 자리의 나는 괜히 바보가 된다.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내가 몸담고 있던 그곳엔 여자가 자그마치 스무 명이 넘었다. 수강생이 400명을 넘겼으니 지방치고 큰 학원으로 웬만한 학교와 규모가 비슷했다. 필연적으로 학교별, 수준별로 반이 나눠져 있었고 각 반은 담임제로 운영되었다. 종합학원이라 국,영,수,사,과 주요 다섯 과목의 강사들이 학교별로 따로 배정되었고, 영어와 수학 과목은 단과로도 운영하고 있어 강사가 추가로 더 있었다. 남자 강사들도 있었지만 기 쎈 여자들 틈에서 고개 한 번 편히 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교무실이라는 한 공간, 각자의 자리에 있다가 수업이 시작되면 우르르 교실로 갔다가 쉬는 시간이면 다시 모여들기를 하루에도 몇 차례씩 반복했다. 저녁 식사도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함께 하지만 교무실에서도 휴게실에서도 은근슬쩍 삼삼오오 뭉쳤다 흩어지는 분위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작은 뭉침들이 바로 붕당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쪽도 저쪽도 아닌 중립의 입장에서 1년이 흘렀고, 다시 1년이 지났을 때는 어느 한 팀에 발을 살짝 담그고 있었다. 그즈음 새로운 영어 강사가 들어왔다. 얼마간의 탐색 기간이 지나자 붕당 사이에서 재빠르게 새로 온 그 강사를 영입하려는 시도들이 보였다. 지금부터는 영어 강사 B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하려 한다.


 새로 간 학원의 교무실은 분주한 가운데 서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낯설고 조용한 그곳에서 아직 수업이 시작하기 전이면 사람들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몇 명의 강사들이 한 사람씩 차례로 나가 한참 동안 들어오지 않기도, 같은 카페의 음료를 손에 들고 하나 둘 들어오기도 했다. 저것들 뭐지? 나도 불러주면 나갈 수 있는데, 나도 커피 마실 줄 아는데.. 아직은 누구도 살갑게 다가와 먼저 말 걸어주지 않아 수업이 빌 때면 혼자 책상에 앉아 태생이 착실한 사람마냥 수업준비만 했다.


 어느 날인가 몇 명의 강사들이 내게 퇴근 후 맥주 한 잔 하자며 다가왔다. 오예~ 드디어 입질 와~쓰! 적응이 필요했던 나는 끼워주는 사람들이 고마워 두말없이 OK 하고 따라갔다. 가벼운 그 자리에서 분위기가 무르익자 하나 둘 학원 사람들이 거론되었다. 이건 무슨 상황? 잠시 물음표 가득한 마음이었지만, 내게 강사마다의 특징과 조심해야 할 부분 등을 알려주며 살뜰히 나를 챙겨주었다. 이렇게 친절할 수가. 그 선생님들과 몰려다니느라 한동안 먹고 마시며 웃었다. 그들의 보살핌 속에 학원의 시스템과 분위기에도 차츰 적응해 갔고, 이제야 내가 학원의 일원이 된 것 같았으며 자부심마저 들었다.


 그러던 중 언젠가부터 수업이 끝날 때가 되면 또다시 눈동자가 굴러다녔고 나를 아껴주던 그녀들은 두세 명씩 팔짱을 끼고 나가면서도 내겐 아무 말이 없었다. 전과는 다른 느낌에 상황을 파악해 보려 애를 썼다.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감이 없다고 살짝 곰탱이 같은 나는 그제야 팽당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내게 강사들에 대한 선입견을 심어주어 다가가지 못하게 만들었고 자신들과만 소통하도록 가스라이팅 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처럼 다시 혼자가 되었지만 달랐던 것은 이젠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관찰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관찰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게 다가와 주었던 무리들은 다른 강사들에게 자신들의 힘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나를 이용했을 뿐, 진정 나를 위함은 없었고, 쓸모 없어진 나를 버렸으며, 그들이 내게 했던 말들이 모두 거짓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건 무슨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도 아니고,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30대 중반으로 어느 정도 사회생활을 해오며 사람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대체 얼마나 당해야 어른이 된다는 말인가.. 이제부터 나는 흑화 할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입술을 잘근 씹게 되었다.

영화 Black Swan 중 나탈리 포트만

 혼자서만 지내는 나를 같은 과목의 한참 어린 S선생님이 조금씩 챙겨주기 시작했다. 가끔 휴게실에서 커피도 함께 마시고 저녁식사 때에도 말 걸어 주었다. 충전기에 연결된 휴대폰 배터리가 1%씩 차곡차곡 채워지듯 따뜻함과 용기가 충전되어 갔다. 하지만 급속 충전기에 꽂아졌는지 용기는 생각보다 빠르게 채워졌고 나를 부추겼다. 급기야 S선생님을 출발점으로 한 명 한 명 선생님들에게 내가 당한 사실을 알려가고 있었다. 폭로에 가까운 내 말에 자신들을 요상하게 포장하거나 그려놓았던 그들의 본모습을 알고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벌어진 턱이 쉽게 돌아오지 못했다. '헐~, 정말요? 진짜요?' 학원의 분위기는 점점 뒤숭숭해져 갔고 한편으로는 내가 망쳐놓은 것 같아 죄책감이 들었다.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애써 모른 척하며 지내던 며칠 동안 1학기 기말고사는 끝나갔다. 시험이 먼저 끝난 나는 마침 같은 학교를 담당하고 있던 S선생님과 퇴근 후 번화가의 호프집을 찾았다. 7월의 더위와 그동안의 마음찌꺼기를 씻어내어 주는 듯 맥주 한 잔은 시원했다. 두 번째 잔을 채우려는데 출입문 쪽에서 여자 한 무리가 검은 기운을 내뿜으며 디멘터*처럼 다가왔다. 돌아보니 그들이었다. 무조건 반사처럼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 호프집에 내가 있음을 앞에 있는 S선생님 외에 아는 이가 없었다. 우리를 미행했던 것이다. 짧은 생각들이 스치는데 순간 누군가 내 머리채를 잡았고 당황하여 힘을 쓸 수 없었다.

 "니가 우리를 개차반으로 만들었냐?"

 "난 없는 말은 안 해. 니들이 했던 행동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야. S쌤 나 이 사람들 고소할 거예요. 증인 좀 돼줘요"

 "하하, 친구는 증인이 안되걸랑요~.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너 가만 안 둬!"

무리 중 가장 어린것이 한다는 말이었다. 억울하고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뒤이어하는 말들은 자신들의 만행이 만천하에 공개되었음에 분노로 온몸을 떨던 그녀들이 서슬 퍼런 얼굴로 나와 S선생님을 싸잡아 천하의 일등 배신자로 만들고 있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 당해줄 수만은 없었다. 함께 뒤엉켜 말로 서로를 때리는데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매장이 엎어지는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었던 직원이 제지를 했다. 엉망이 된 호프집과 내 꼴을 보고 있던 S선생님은 혼자서는 수습이 어렵다고 판단했는지 중등부 원장을 불렀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계셨던 터라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하셨고, 덕분에 호프집 난리는 일단락되었다. 나로 인해 못 볼 꼴을 당한 S선생님과 헤어진 후 터덜터덜 걸어 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놀란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자 금방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처럼 다리에 힘이 빠졌다.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던 생각에 빠져있다 까무룩 잠이 들었었나 보다. 벌써 새벽 4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맥주 한 잔을 마시기는 했지만 시간도 지났고 늦은 시각이라 천천히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에 다가갈 즈음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지금 집에 오지 마. 자다가 소란스러운 소리에 깨서 보니 밖에 언니네 학원 사람들이 와 있는 것 같은데 언니 지금 오면 안 될 것 같아."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아까 그게 끝이 아니야? 하긴, 쉽게 넘어갈 인간들이 아니겠지. 분명 아직 분풀이를 다 못한 그들이 겨우 숨이 붙어 있는 내 영혼의 목숨을 기어이 끊어 놓으려 쫓아와 진을 치고 있던 것일 테다. 대체 언제부터 나를 미행한 것인가. 설마 부모님 댁까지 알고 있진 않겠지? 집을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고 멀찍이서 쳐다만 보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확인했지만 아직 아니란다. 그대로 언제까지 있을 수는 없어 C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글이 길어져 다음 편으로 넘어갑니다. 당사자의 얘기를 각색 없이 그대로 표현한 것이고 현장마다 함께 하지는 않았지만 이다음에 이어지는 일에는 통화로 함께 했음을 알립니다. 전 C선생님이고요.


덧붙임

*디멘터 : 책과 영화로 소개된 '해리포터' 속 캐릭터로 약 3미터를 웃도는 체구를 가졌으며, 걷지 않는 대신 소리 없이 날아다니고 사람들의 행복과 영혼을 빨아들이며 살아가는 생명체다. 때문에 디멘터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소름이 끼칠듯한 추위를 느끼며, 인생 최악의 순간들을 동반한 끔찍한 기억들을 강제로 떠올리게 된다고 한다.

- 출처 : jungbohugi.tistory.com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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