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게 나름 대기업에 취업을 했건만, 녹록지 않았던 신입 직장인의 모드로 2년 하고도 6개월을 꽉 채우고 시원 섭섭하게 퇴사를 했다. 결혼 후 이주를 해야 했기에라고 하지만 실상 많은 직장인들이 마음에 품고 다니는 '이놈의 직장 내가 언젠가는 떠난다'는 그런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의 부족함도 있었겠지만, 전 상사의 까탈스러움 속에서 매일같이 쌓여가는 스트레스로 인해 정말 살은 쪽쪽 빠졌고, 내 자존감도 바닥을 치기도 했고, 20대 초반 사회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환상의 나라가 아니었다. 물론 쉬운 일 어디 있겠냐 마는 그 당시 내 눈에 전 남자 친구(현 남편)의 본인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그 모습은 약간 우주에서 온 신비한 존재로 보였던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그 옆에선 난 아직도 내 열정을 어디로 쏟아야 하나를 찾고 있는 중...
그렇게 떠나온 새로운 나라에서 나의 인생의 첫 2막을 풀어나가는 길이 결코 쉽지는 않았던 것 같다. 늘 어느 조직에 속해있었는데 갑자기 공중으로 붕 떠올라 있는 그 느낌, 이. 방. 인.
나 빼고는 다들 바쁜 것 같고 나만 한량인 거 같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아무것도 하지 않지는 않았지만, 여기선 경제활동)것 같은 여유로운 나의 생활이 첫 몇 달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 스위스 친구들과 만날 때마다 내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게.. 그들의 눈엔 결혼하고 일을 그만두고 또 일을 구하지 않고 그냥 있는 내가 너무나도 신기해 보이나 보다. 게을러보였나? 그냥 궁금한 거였을 수도 있겠지만, 자존감 바닥 쳐 가는 그때쯤은 자기들만의 언어로 얘기하는 것도 못 마땅했고, 직장에서 일어나는 일 얘기하면 난 무슨 장단을 맞춰야 하나(알아듣지도 못하겠음) 그런 일도 부지기수. 그런 날은 향수병도 같이 오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인가라는 자존감 떨어지는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중 그의 권유로 호주로 단기 어학연수를 떠났고, 결혼한 지 일 년도 안 된 나는 다시 싱글의 신분으로 새로운 곳에서 나의 자아를 찾기 위해 떠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gap year라고 대학교를 시작하기 전 세계 일주나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온 친구들도 있었고, 한국에서 졸업 전에 워킹 홀리데이로 온 친구들도 많았고, 먼 브라질에서 영어를 배우기 위해 날아온 친구들도 있었고 너무 오랜만에 아무 이해관계도 얽히지 않은 순수한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 소중하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지내야 했고, 늦깎이 학생이라 친구들이랑 공통점도 달랐지만 혼자서 보냈던 세 달간의 시간은 혼자서도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작은 변화에는 내 마음이 요지부동하지 않는 단단함이 생겼으며,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훈련이 되었고 so what이라는 작은 반격을 할 수 있는 깡이 생기게 되었다.